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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바람!

땅가죽 어디에 붙잡을 주름 하나

나무 하나 덩굴 하나 풀포기 하나

경전(經典)의 글귀 하나 없이

미시령에서 흔들렸다.

 

풍경 전체가 바람 속에

바람이 되어 흔들리고

설악산이 흔들리고

내 등뼈가 흔들리고

나는 나를 놓칠까봐

나를 품에 안고 마냥 허덕였다.

 

- 황동규의 '미시령 큰바람' 가운데서

 

90년대 중반 황동규의 미시령 큰바람’(같은 제목의 시집 표제시)을 읽었고,

한 세대 지나 미시령을 지났다.

시인이 자신을 품에 안고 흔들렸던 미시령에서

나 역시 나를 안고 흔들렸다.

 

비 내리는 상도문 돌담길을 걷고,

수행하고,

느지막한 아침에 미시령(해발 826미터) 옛길을 가다.

2006년 미시령터널이 뚫린 후 차가 드문 길이다.

운무로 덮여있었다.

백두에서 한라까지 1400km 백두대간은 영서와 영동을 가르며 풍속과 문화 말씨를 가른 경계.

설악산은 대간의 남한구간 최북단.

미시령은 백두대간 설악구간에서도 북부로 신선봉의 바로 아래쪽.

진부령과 한계령과 함께 영동(속초, 고성)과 영서(인제)를 넘었던 주요 고개 하나이다.

당연 이런 는개에서는 어림없다.

미시령 정상에서 북쪽으로 신선봉-대관령-진부령이 이어지고,

남쪽으로 설악 주능인 황철봉-마등령 공룡능선을 이어두는 안부이다.

영동 쪽에서 고개 정상으로 오르는 방향에서는 설악산 울산바위를 정면에서 볼 수 있고,

고개 정상 휴게소(옛 휴게소는 현재 미시령탐방지원센터)에서는 속초와 동해 조망으로 유명하다.

여기서 용대리(인제군 북면)까지 16km.

미시령은 이 용대리와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를 잇는 11km.

다음 설악산행 3회차에서는 이 길을 걷기로 마음먹는다.

공룡능선과 미시령길이 중심일 일정이겠네.

 

한계령으로 길을 잡는다. 백두대간 오색령이다.

일제강점기에 오색령이 한계령으로 바뀌었다고 고개 양쪽 지자체끼리 이름 다툼을 했다는데

대체로 양양에서는 오색령, 인제에서는 한계령으로 정리된 듯.

휴게소 건물은 김수근이 설계했다.

일행들과 차를 마셨고,

필례약수터로 향했다.

황동규의 시집 <미시령 큰바람>이 나오고 이태쯤 지나서인가

이순원의 소설 <은비령>이 나왔다.

죽은 친구의 아내를 사랑했지만

그를 만나기로 한 날 길을 꺾어 이곳으로 왔던 소설의 주인공.

소설의 무대가 이곳이었다. 이후 더러 은비령으로도 불린다.

필례는 지형이 베 짜는 여자, 즉 필녀를 닮아 그리 불렀다는데,

필례는 피란간다는 피래에서 온 말이라고도.

그만큼 꼭꼭 숨은 곳이니까.

이곳 작은 계곡에서 비로소 단풍을 보네.

단풍 터널이 어디보다도 좋아 가을이면 여기를 꼭 다녀간다는 산꾼들이 있었다.

필례는 해발 1,200~1,500의 주걱봉, 가리봉, 삼형제봉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고,

귀둔리(필례 역시 귀둔리에 속함)는 곰배령, 점봉산 등산로가 이어져있다.

 

우산을 쓸 만큼이지는 않으나 는개에 잠겼더니

다시 이슬비가 되었다.

오색 가마터에 들리다.

물어 물어 거기 정원을 잘 가꾼 이가 있다 하여 들렀는데,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나지막히 앉은 집은 좋았으나

찾아들 만큼의 정원은 아니어 아쉬웠다.

하지만 빗속에서 일행들이 그곳을 찾아가는 여정 그 자체가 즐거웠더라.

 

일행 하나가 떠나고,

남은 이들은 속초 중앙시장에 들러 해산물을 안고 돌아왔네.

오늘 합류하기로 했던 한 사람이

회사에 큰일을 겪어 주저앉았다는 소식.

한 사람이 설악에 자리를 잡고 여러 사람들이 오가기로 한 일정이다.

설악행은 연중기획으로 잡혔고, 또 다른 기회가 있으리.

부디 사고가 잘 수습되셨으면.

 

학교에는,

아침뜨락 아고라의 바위틈새 풀을 학교아저씨한테 뽑아 달라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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