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볕 같았다.

설악행으로 오래 비웠던 달골을 돌아보다.

그 사이 준한샘이 다녀가기도 했고,

학교아저씨도 하루 올라 아침뜨락 일을 살피고 갔다.

온전했다. 아직 풀의 기세는 수그러들 줄 모르지만.

사이집 툇마루며 햇발동 데크 공사를 하고 떠난 현장도 둘러보며

널린 나뭇조각들과 톱밥을 쓸어 담았다.

하느라고 하고들 떠났겠지만

그래도 주인이 챙겨야 할 일은 남게 마련이라.

 

사이집 툇마루에 접이창을 달기 위해 업체 사람들이 왔다.

아침을 먹었냐 했더니 못 먹었다 넙죽 대답했다.

일을 마칠께 벌써 정오가 다 되었다.

아침밥이라고 내준 음식을 낮밥 삼아 먹고들 갔다.

 

작업을 마친 현장을 정리해야겠다 하고 돌아보는데,

실리콘 마개를 자른 꼭지까지도 다 치우고 간 그들이었다.

뒤처리를 깔끔하게 하는 개인의 성격 문제라 할 수도 있겠지만

그 회사를 다시 보게 되더라.

그런 과정을 잘 훈련시켰기에 그런 게 아니겠는지.

 

견적을 내기 위해 이 회사에서 현장 답사를 왔던 이도 좋은 인상을 남겼더랬다.

단순히 영업을 잘 한다는 게 아니었다.

자사 상품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이 깊이 배어 있었다.

상품을 파는 사람이라면 그 상품이 좋아야지 그런 태도가 나올 것이다.

그러니 그 상품에 대한 신뢰가 갈 밖에.

그리고 그 상품을 만들고 파는 자기 회사에

자신 또한 뭔가 기여를 한다고 생각할 때 긍지와 자부심이 생기지 않겠는지.

 

당장 나만 해도 물꼬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건 내가 중심에 있기 때문이 아니다.

이곳의 선의를 믿고, 이곳에 선의를 가진 이들이 모여 그 선의를 더욱 강화하는.

그러나 좋은 뜻만 있어서 되는 게 아니라

거기 바로 움직이는 손발이 있다.

그리고 그 온기를 받은 아이들이 더욱 자유로워지고 환해지는 걸 확인하며,

또한 어른들은 그 온기를 만들면서 자신을 치유해나가는.

좋은 사람이 되려는 의지가 있고

좋은 사람이 되어가는 그 현장에 나 역시 기여하고 있다는 기쁨,

그것이 물꼬를 끌고 간다.

물꼬인들이 물꼬사람이라고 일컫는 말에는 단지 물꼬와 연이 닿은 이들

나아가 물꼬에서 같이 일해본 사람이라는 말을 넘어

신뢰가 간다는 뜻이고 적어도 선하다거나 자신을 닦아간다는 뜻이 담겨있다.

우리 모자라지만 그런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는.

 

학교에 가서는 냉장고와 부엌곳간을 치웠다.

사람이 쓰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아무래도 안주인 없는 살림은 표가 난다.

비워진 반찬통들이 밖으로 나와 쌓여있었다.

다시 반찬을 채우고 밥상을 차려 나갈 테지.

저녁 밥상에는 속초에서 온 생선이 올려졌다.

 

교무실에서는, 물론 세상이 좋아 굳이 교무실 책상에서 해야 하는 일은 아니었지만,

상담 메일에 답을 하고,

우편물들을 정리하고,

교무실 한 부분을 정리하고 나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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