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비가 다녀갔으나 동쪽하늘 붉었다.

곧 해가 나왔다. 하지만 불과 몇 발 걷지 않아 구름에 가렸다.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에 잠이 깬 아침이었다.

소리는 다락의 침대 머리맡으로부터 왔다.

얼마 전 툇마루를 냈고, 지붕을 덮었다. 그 지붕에서 나는 소리다.

혹 벽에 뚫린 구멍으로 비가 스며 고였다 떨어지기라도 하는가.

나가서 지붕을 살폈다.

해가 났으나 아직 지붕에 고인 물방울들이 떨어지고 있었다.

물방울 소리를 내는 곳이 어디인지 육안으로는 알 수 없었다.

툇마루 지붕이 보이는 언덕으로 가서 살폈다. 알 수 없었다.

같은 때 작업한, 북쪽 창문 위에 낸 눈썹처마 위엔 실리콘 처리를 했다.

툇마루 지붕 끝선과 벽이 만나는 곳에는 실리콘이 보이지 않는다.

그 까닭인가?

벽에 기대 물방울 소리를 잡아보려 했다.

양쪽 두 곳에서 한 박자씩 돌아가며 소리가 난다.

, 또 한 곳이 귀에 잡힌다.

작업을 했던 이에게 짚이는 게 있는가 저녁에 통화를 하자고 문자 넣어놓았다.

 

이전에 없던 문제가 새로운 상황에서 일어나고는 한다.

저녁에 목수샘과 통화를 하기로 했으나 원인이 찾아진 듯하다.

유심히 보자니 본채 빗물받이 통 연결 부위가 세 곳,

그곳에서 방울이 떨어진다.

왜 실리콘 처리를 안 했다니!”

왜냐하면 그때는 그냥 마당으로 떨어지는 것이니 문제가 안 됐던.

그렇더라도 했어야 하는 게 옳았겠지만.

이제는 툇마루 지붕이 생겼고, 그 위로 떨어지는.

벽에서 이어지는 툇마루 지붕만 해도 상단에 실리콘 처리를 해야.

그 아랫단에 했다 하더라도

여러 해 흘러가며 상단과 하단 사이 습이 벽을 시커멓게 만들 테니.

지붕 오를 때 그것까지 실리콘을 쏘면 되겠다.

언제? 그건 또 짬을 봐야지.

긴 사다리만으로 해결이 될 것 같으면 그렇게,

하지만 비계를 설치해야 할 수도.

멀리 있는, 작업했던 목수들을 다시 부르지는 않아도 되겠다는 결론.

그러고도 안 잡히는 다른 문제라면 나중에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겠습니다.’

문제 있으면 연락 달라는 답문자가 왔네.

 

낮시간에 잠깐 치과를 다녀왔다.

틈을 알았던가 비 한 차례 지났다.

비 왔지만 흡족할 만큼인지 몰라 어제 아침뜨락에 옮겨 심었던 모종들에 물을 주었다.

남설악 오색의 한 농장에서 왔던 에키네시아, 라벤더들이었다.

들어간 김에

옴자에서 걸어 나온 샤스타 데이지 모종들을 옴자 안 빈 곳으로 얼마쯤 옮겨다 주고,

달못 둑 위 잔디 사이 씨앗을 단 풀들을 매기 시작했다.

 

퇴근 무렵인가 하고 한 연락이셨을 게다.
인근 도시에서 전화가 들어왔다, 오늘 건너올 수 있냐고.

나무뿌리로 만든 다탁을 보고 실어갈 만하면 가라는 말이 두어 달 전부터 들어왔고,

그쪽도 여기도 오늘 사정이 될 만.

더하여 실어낼 이의 형편도 되어야.

일이 되려고 셋이 다 가능하였네.

농기구를 던지듯 씻어놓고 달려나가다.

일흔도 훌쩍 넘은,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남아 작은 정원으로 소일하는 이의 정원에서

꺼내놓은 다탁이며 가꾼 꽃과 나무들과 골동품들의 역사를 듣다.

물건 하나하나 그 댁에 이른 사연들,
사람의 역사는 그런 사연들이 또한 얹혀 쌓이는 것일 테지.

그 가운데 한 물건이 내일이면 물꼬로 온다.

바로 들일 수는 없겠지만 손을 좀 봐서 한 공간 다탁으로 잘 쓰일.

아니더라도 밖에서 한 자리 차지할.

 

, 한때 공동체를 꿈꾸었던 이와 사업을 하는 이의 열띤 토론 사이에 있었다.

한 삶은 공동체 전체적으로는 수익사업을 하지만 내부적으로 돈이 필요 없는 삶을 꿈꾸었고,

다른 한 삶은 사업을 하며 차곡차곡 사업을 확장해왔고 더한 번창을 목표로 나아왔다.

전자는 결국 실패했고,

후자는 늘 위태로우나 한편 자본주의 안에서 필요한 것들을 향유하며 삶이 이어지고 있는 현재.

실패는 정말 실패일까?

필요한 것들을 누리는 삶은 또한 정말 삶을 누려서 가지는 것일까?

그때는 맞았으나 지금 틀릴 수도 있고,

그때 틀렸으나 지금 그때의 의미가 맞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너는 너의 뜻대로 나는 내 뜻대로 살면 될 일 아니겠는지.
모든 삶은 수고롭고,

각자 제 생각대로 정말 살아가고 있는가가 중요한 문제일.

 

조금씩 더뎌지고 있던 출근시간이었다.

다시 고삐를 잡았다.

상급자가 있는 것도 가게문을 열어야 하는 것도 아니지만

여기에도 질서가 있다. 교무실 전화가 9시부터 작동한다.

사람의 일이 그렇다. 아니 사람의 마음이 그렇다. 유지하기 쉽지 않다.

그러면 또 널부러졌다가 주섬주섬 챙기는 옷처럼 몸을 일으키면 될.

그 시간이 짧을 수 있도록 자신을 훈련시켜 나가야 할 테지.

며칠 만에 다시 호흡을 잡고 나아간다.

 

그런데, 참 조용하기 어려운 물꼬이다.

여러 사람들이 얽혀있으니 당연할.

오랜 품앗이샘 하나가 작은 사고를 당했네.

부모가 멀리 있고 살갑지 않아

때로 물꼬가 더 가깝고는 하니 연락이 여기 먼저 닿는다.

돈 문제 같은 걸로는 물꼬 안 찾지요.”

그의 말이었네. 그렇구나. 예 형편은 안다는 말일 테지.

, 어떻게 해결할지 같이 머리 맞대 봅시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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