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서둘러라(Festina Lente).'
로마의 역사가 수에토니우스(Suetonius)의 책 ‘De vita Caesarum’에 따르면

이 말은 카이사르가 암살된 이후 벌어진 피비린내 나는 내란을 종식시킨 아우구스투스가 한 말이라고.
달팽이 껍질 안에 있는 토끼처럼, 닻을 달고 있는 돌고래처럼

출판을 통해 르네상스 시대를 열어젖힌 이탈리아 편집자 알두스 마누티우스는

이 정신을 이어받아 '닻과 돌고래'가 어우러진 문양을 출판사 로고로 삼았단다.

그리고 그는 로마의 수많은 고전을 오늘날 문고본 크기의 책으로 값싸게 보급했는데

당시로는 파격적 물량인 1000부나 되는 책을 한 번에 인쇄해내 인문주의자들의 지적토양을 마련했다고.

'호랑이의 눈으로 보면서 소처럼 걸어간다'라는 호시우행虎視牛行이 같은 말이리라.

 

아침밥을 먹은 대처 식구들이 나간 07,

절인 배추를 씻었다. 아직 김장 아니고 대처 식구들이 아파트에서 먹을 배추 세 포기.

남자 둘이 하는 살림집이고 김치를 담글 만치 살림을 하는 집은 또 아니라

대해리에서 큰 대야며 소쿠리며 작은 대야 하나를 챙기고 왔던 터였다.

그래보아야 배추 세 포기 든 망 하나 사 들고 하는 김치라

김치 담근다 소문도 안 날 김치지만.

도시의 공기 속이어서 뿌연 하늘이었는지 날이 그런 건지는 모르겠다.

백년의 시차를 둔 라흐마니노프와 모차르트의 삶과 음악이 흘렀고,

나는 랩탑을 켜둔 채 책을 읽다가

뭔가 생각이 떠오르면 몇 줄 쓰기도 하는,

도시의 한낮이었다.

치과를 다닐 일이 생겼고 한 주 말미를 받아 대처에 나왔다.

 

학교에서는 마늘을 심었단다.

오전에 풀뿌리들을 정리하고 오후에 씨마늘을 놓았다.

내일도 할 것인데, 이틀을 마늘 심는다 누가 들으면 꽤 많은 양인 줄.

그렇지는 않다. 한 뙈기 밭에 몇 고랑. 찬찬히 학교아저씨가 소일하시는.

김장을 빼고 계자 때까지 먹는.

그 다음부터 마늘 수확기까지는 사서 먹는.

 

오늘 메모장 구석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젊은 한 친구에게 보낼 말이었다:

욕먹는다고 죽지 않는다!

속 탈 일에 내 일을 넘의 일로 보기.

일에서는 넘의 일을 내 일로 보며 마음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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