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무덤을 바라보았다. 그는 청춘 시절에 흘려야 할 마지막 눈물을 그곳에 묻었다이 눈물은 순결한 마음의 

성스러운 감동에서 흘러나왔다.(...)

  혼자 남은 라스티냐크는 묘지 꼭대기를 향해 몇 걸음 옮겼다. 그리고 그는 센 강의 두 기슭을 따라서 꾸불꾸불 

누워있는, 등불들이 빛나기 시작하는 파리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두 눈은 방돔 광장의 기둥과 불치병자 병원의 

둥근 지붕 사이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그가 들어가고 싶었던 아름다운 사교계가 있었다. 벌들이 

윙윙거리는 벌집에서 꿀을 미리 빨아먹은 것 같은 시선을 던지며 우렁차게 말했다.

  “이제부터 파리와 나와의 대결이야.”

  사회에 도전하려는 첫 행동으로, 라스티냐크는 뉘싱겐 부인 집으로 저녁 식사를 하러 갔다.

 

<고리오영감>(오노레 드 발자크)의 마지막 문단을 생각했다.

그래, ‘대결이다.

12학년 아이들은 수능을 치기 위해 입실했다.

해건지기; 몸을 풀고 대배를 하고 좌선한 뒤 한참을 자비명상에 들었다.

아이들이 시험을 치는 동안 시간마다 대배를 했다.

애썼다, 그대들이여.

설혹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해도 그대가 애쓴 시간 어디 안 간다.

우리에게 붙어 우리 생을 풍성하게 하고, 나아가 그것이 어떤 힘으로 발휘되는 시간이 온다,

오고야 만다.

 

품앗이샘 하나가 보내달라는 서류를 챙겨보내고,

어제 메일을 보낸 한 출판사의 답을 읽었다.

20년 전에 낸 시집을 절판 처리해 달라 했더랬다.

당시 편집장이 지금도 일을 하고 있었다.

상황을 확인한 뒤 연락하겠다는 답이었다.

한 시절을 또 그리 정리하련다.

 

허리 위쪽 등에 담이 왔고, 파스를 붙이고 있었다.

때는 바야흐로 겨울90일수행기, 사람을 맞지않겠다 선언한 때,

그러나 당장 날 하나 잡혔다. 그가 아니었다면 오라 하지 않았겠지.

지난 1월부터 엿보던 만남이라 서로 짬이 된다 싶을 때 물꼬에서 보기로 되었다.

낼 낮밥으로 국수를 내기로.

30년 전에 만난 인연이다.

만나려면 또 이리 쉬 만나진다.

우리는 그때로부터 어찌 흘러 지금에 이르렀나.

지금도 같이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을까?

그런데 또,

자폐가 있는 아이의 부모가 또한 방문을 할 수 있겠냐 물어왔다.

어렵겠지...

아이를 키우는 건 장기전이라. 하니 천천히 날 좋을 때 만나면 되리.

 

40년 유기농을 해온 어르신이 수년을 배추를 나눠주셨는데,

두어 해는 그렇지 못했다.

더러 손을 보태기도 했는데, 그 역시 못하고 몇 해가 흘렀다.

무만 심어 배추는 사서 김장을 하겠다 하고 있었다.

오늘 어르신이 전화를 해왔다. 배추를 나눠주시겠단다.

보관해두겠으니 김장께 가지러 오라셨다.

배추가 무려 한 포기 몇 천원을 하고 있다는 시장이었다.

그렇게 또 힘을 덜여신다.

간다기도 오라기도 쉽잖았던 팬데믹의 2,

얼굴 못 본지도 그리 흘렀네.

잊히지 않아 더욱 고마웠다.

 

습이들 산책을 시켰다.

가습이가 절쭉거렸다. 앞다리에 상처가 있었다. 이 추운 날 아릴 것을.

아플 텐데 안 간다고 하지 않고 얼른 따라 나섰다.

마을길에서는 뛰기까지 했다.

누가 우울증을 고양이 때문에 견뎠다더니

, 나는 저들에게 위로받고 겨울이다!

내게 겨울이란 우울과 동일한 색깔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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