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24.물날. 흐림

조회 수 327 추천 수 0 2021.12.29 00:30:15


 

지금은 지난 1115일부터 겨울90일수행의 날들.

그래도 멧골살이 일상은 계속되고.

 

이런! 정신없이 교무실 일에 묻혀있다 부랴부랴 면소재지를 나갔는데,

농협 문이 닫혔다. 5시까지구나.

서류를 직접 전할 일이 있는데.

하나는 못 했고,

번호 붙인, 해야 할 일 목록을 본다.

품앗이샘 둘이 요청한 상담 건 답메일,

교육청에 보낼 서류,

고교생 위탁 건 한 건도 겨울 지나 해보자 답을 해야 하네,

계자 공지도 해야는데,

자폐아 아이의 기록물들도 살펴야 하는군.

 

계자를 위한 메모들도 사이사이 생각나는 대로;

지난여름과 겨울은 퍽 수월했다.

사람이 많지 않아 그렇기도 했겠지만

내 개인으로는 왜 그랬던가 살피자면,

겨울밤 매우 따뜻하게 잤고, 여름밤도 잠을 좀 잤다.

계자 때면 집을 떠나온 아이들이 있으니 일종의 숙직자이기도 하여 두어 시간 겨우 눈붙일 때도 흔했고,

기록을 하거나 일정을 챙기느라 늦도록 불을 켜야 해서

바닥 난방이 되지 않는 교무실의 난로 곁에서 침낭을 깔고 잤는데,

지난겨울은 여자방으로 건너가 잤다. 역대 가장 따뜻하다던 구들이지 않았던가.

계자 때면 꼭 두통을 심하게 앓았다. 모자라는 잠이 첫째 까닭일 테지.

밤에 일을 좀 밀쳐두고 잠을 잤고,

계자 때면 오랜만에 얼굴보는 품앗이샘들이 상담을 위해 찾아오는 시간을

지난겨울은 다른 날들로 잡자 하고 또한 잠을 좀 잘 수 있었다.

사람이 자야지, 겨울에는 따뜻하게 자야지.

샘들도 얼마나 힘이 들었을 것인가,

잠을 확보하고, 모둠방을 최대한 데우기!

언제라고 노력을 아니 했으랴만 이번에는 전체 일정을 부디 그리 해보기로.

 

젊은 친구의 고민을 듣는다.

이 공부를 계속해야 하는가 하는.

지금 다니는 대학을 그만 다녀야 할까 하는.

자신의 가치관대로 살려면 지금 멈춰야 한다고.

하면서 힘을 내라고 했다!

때로 칼같이 끊어서 다음으로 넘어갈 일도 있지만

다음을 준비하면서 현재 일을 정리해나가는 것도 방법.

그건 양다리가 아니라 지혜일.

그러는 사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고.

지금 최선이 내일 최선인 건 아니니까.

결국 시간을 좀 버는 것일.

생각이란 것도 몸을 움직이면서 해야 더 견실하지 않을지.

무심하게 책 사이를 좀 걸어도 보렴.”

거기 내게 줄 답이 기다리고 있을 수도.

<기계공 시모다>(리처드 바크)에는 그런 구절이 있었지.

왜 그런 경험 없어요? 무슨 문제를 마음속에 품고 있을 때, 아무 책이나 손 닿는 대로 펼쳐 들었는데, 거기에 바로 

나를 위한 글이 딱 적혀 있는 경험 말이에요. 

 

어렸을 때 할머니한테 물어본 적 있어요, 책 어디가 그렇게 재미있냐고. 그랬더니 무슨 소릴 하냐는 얼굴로 

저를 보시고는 그저 펼치는 것만으로 어디든 데려다주는 건 책밖에 없지 않니하시더라구요. 이 마을에서 

태어나 도코 한 번 가보지 못한 할머니한테 책은 세상으로 통하는문이었을지도 모르겠어요.

- <이 책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가쿠다 미쓰요) 가운데서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의 화자의 할아버지, 마을을 한 번도 떠나본 적 없던 할아버지는 

크레타섬에서 나그네랑 나그네는 다 불러들여 밥을 먹이고 잠을 재웠다.

왜 그 먼 곳까지 가? 이곳을 지나가는 칸디아나 카네아 사람이 있어서 칸디아나 케네아가 내게 오는 셈인데

내 뭣하러 거기까지 가?

 

그런 의미에서 책과 여행은 동일하다.

책이 좋은 여행지가 될 수도.

 

그리고 사키 아타루의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에서 밑줄 그은 부분을 읽었다.

p.299

언젠가 이 세계에 변혁을 초래할 인간이 찾아올 것이다. 그 인간에게도 방황하는 밤이 있을 것이다. 그 밤에 

문득 펼쳐본 책 한 줄의 미미한 도움으로 변혁이 가능해질지도 모른다. 그 하룻밤, 그 책 한 권, 그 한 줄로 

혁명이 가능해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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