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 벌써 어르신이 일어나 옴작거리는 소리에 깨다.

간이 맞춤하다며 배추 씻을 물을 받고 계셨다.

새벽 3시가 다 돼 잔 잠인데

배추를 씻고 나자 마당에 비 내리기 시작하다.

짚을 깔고 배추를 척척 기울여놓고 덮어두고 집안으로 들어왔다.

김장 이틀째.

올해는 따뜻한 남도에서 김장을 해보면 어떨까들 했고,

외려 번거롭지 않을까 망설일 때 배추 양이 많지 않아 가능하게 되었다.

어제 배추를 실어 왔고, 오늘 아침에 시작하자 했는데

섰는 걸음으로 마당에 불 밝히고 배추를 다듬게 되었더라.

자정에 뒤집으며 간이 덜 됐다 싶은 배추들에 소금을 좀 더 켜켜이 집어 넣다.

 

저녁에 하자.”

집안 어르신 한 분과 남도에서 하는 김장.

올해는 정말 조금만, 50포기만 할 거야, 그래도 60포기에 이르렀네.

이른 저녁밥상을 물리고 거실에서 절인 배추의 꼬랑지를 자르고 양념을 버무르기 시작.

배추 양을 보고 자꾸 웃었네, 그런 양을 해본 적이 없던 김장이라,

밭에 뒤늦게 심은 우리 배추로 600포기를 했던 적도 있었고,

100포기는 기본이다 싶은 물꼬 김장,

안 한다 안 한다 해도 70포기를 했던.

그런데 달랑 이 양이나 귀여운 절임배추인.

어르신이 이웃 사람도 양념을 넣는데 부르려는 걸 말리다.

아구, 이건 혼자서도 다 해요. 서두를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혼자 찬찬히 하면 힘들 것도 없구요. 빨리 하려니 힘들지.”

사람이 붙으면 재미도 있지만, 또 누군가는 그를 대접하기 위한 손을 빼야 하는.

배추의 물이 빠지는 동안 양념들을 챙기고.

하나도 힘이 안 드네.”

날은 또 어찌나 푹한지 밖에서도 수돗물에 맨손을 담가도 차지 않은.

여기는 다 가깝잖아요.

한 발 앞에 수돗가, 한 발 앞에 마당, 한 발 앞에 거실, 한 발 앞에 거실 싱크대,

물꼬에선 부엌도 저어기, 바깥수돗가도 저어기, 부엌 안에서도 여기부터 저기까지 한참,

동선이 짧은 데다 양도 적고 따순 거실에서 엉덩이를 붙이고,

게다 날이 푹해서 등에 힘줄 일이 없잖아요. 제가 찬찬히 혼자 할게요.”

여기저기 양념 묻힐 것 없이 고구장갑 하나로만 일하겠다 하고,

두 어르신들이 곁에 앉았는데,

저기 김장 비닐 좀요.”

하면 비닐을 주시고,

, 이건 저기로 밀어주시고!”

이거 벌려주시고!”

저기 대야에 비닐봉투 펼쳐주시고!”

이건 현관 문 앞 계단에 내다 주시고!”

앉았는 사람은 일어설 것 없이 일이 되고,

그러니 힘들게 하나도 없는.

알타리 대신 무김치도 담갔다.

김장봉투며 컨테이너며 김치통이며들을 물꼬에서 다 실어왔더랬다.

담은 김치며들을 잘 여며 밖으로 꺼내놓고,

대야며들은 내일 날 밝을 때 하면 되지. 그 역시 마당으로 밀어놓고.

간물 버리지 않고 내일은 갓과 쪽파 두어 단 다듬어 마저 담아야겠다.

우째 이리 날이 푹하노!”

물꼬 날씨의 기적에 대한 감탄처럼 물꼬일 한다 그런지 여기서도 날이 신기한.

거실을 다 닦고 나자 밖이 매서워졌다. 바람도 거칠었다.

없이 사는 사람들은 그런 거에라도 복을 끌어다댄다.

 

고단할 것도 없는 김장이었네.

이 정도 규모이면 혼자서도 일도 아닐. 날씨가 좀 도와준다면 더욱.

아랫목에서 바느질거리를 꺼내 든다.

며칠 전부터 코바늘로 도일리를 하루 하나씩 뜨고 있다.

있는 실이니. 실 한타래를 사서 내리 하지 않으면 다시 잡는 게 쉽잖더라.

실 있을 때 내친김에, 물꼬에서 안 쓰여도 누가 써도 잘 쓸.

바느질이란, 그게 퀼트이든 대바늘뜨기든

꼼짝도 않고 손을 움직이며 망부석이라도 될 기세가 되는 특질이 있다.

이 밤도 새벽으로 가고 다시 아침이 머잖다.

같은 걸 네 개 내리 떴더니 그래도 해본 거라고 맨 나중에 한 게 가장 번듯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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