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에 톱질소리 높았다.

아고라의 말씀의 자리뒤로 병풍처럼(여러 그루 펼쳐진 건 아니고 한 그루) 측백이 서 있다.

기대도 될 것만 같은.

뒤로 허전한 공간을 채워주는.

말씀의 자리 너럭바위에 앉으면 오른편에 커다란 층층나무가, 왼편에 역시 높은 뽕나무가 있다.

늘어진 뽕나무가지가 측백 머리를 덮었다.

측백을 손보든 뽕나무(열리는 오디가 잘디 잘아서 작은알뽕이라 구분함)를 손보든 뭔가를 해야 했다.

오늘 준한샘이 작은알뽕 가지를 쳤다.

그 곁으로 있는 뽕나무(오디가 굵어 굴뽕)도 아고라를 둘러친 측백 몇 그루를 건드리고 있다.

늦은 가을에 까치발을 하며 잘라는 주었는데,

역시 사다리를 타거나, 나무에 올라야 일이 되겠다.

그건 다른 날을 엿보기로.


겨울이 되면 벌레들도 자기 방식으로 동토의 계절을 건넌다. 당연하겠지.

무당벌레처럼 낙엽에 모여 겨울잠을 자기도 하고나무 아래 돌틈에 숨기도 하며,

나무를 타고 내려와 흙속으로 이동하기도 하고,

사슴벌레처럼 나무줄기에 들어가 추위를 이기기도 한다.

이 이동을 이용해 해충을 잡는 방법이

나무에 볏짚이나 헝겊으로 을 입히는 것.

추위에 강한 은행나무나 소나무 가로수에도 왜 옷을 입히나 했더니 바로 그 까닭.

봄이 되면 벗겨 불에 태운단다.

이 살충포집기를 잠복소(潛伏所; 잠길 잠, 엎드릴 복, 바 소)라 하더라.

처음 들은 낱말이었다.

(요즘은 제설작업에 쓰이는 염화칼슘이 주는 피해를 막기 위해서도

가로수와 도로 사이에 방풍막으로 거적을 대기도 한다고.)

 

동해를 막기 위해 옷을 입히는 나무들도 있다.

겨울이 되면 나무도 물론 저들의 방식으로 추운 날씨를 견뎌낼 준비를 한다.

가지에 달려있던 잎을 모두 떨어트려 앙상한 가지로 성장을 멈추기도 하고,

세포와 세포 사이에 얼음결정을 만들어 바람을 막는 용도로 쓰기도 한다.

하지만 남도 태생에게 이 골짝 겨울은 쉽지 않다.

달못 가에 심은 배롱나무 가지에 옷을 입혀주었다.

작년에 심고 겨울을 지났다.

꽃이 피지 않아 마음 졸였다.

다행히 늦게 꽃을 달았고, 대신 빨리 졌다. 안쓰러웠다.

올해는 꼭 옷을 입히리라 단단히 마음 먹고 있었다.

지표면, 그러니까 발목이 가장 시려울 것이라 아래부터 중간치까지 꼼꼼하게.

그 역시 준한샘이 작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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