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30.나무날. 눈과 바람

조회 수 361 추천 수 0 2022.01.11 02:20:26


 

눈이 내렸다. 펑펑 내렸다. 눈같이 내렸다.

도시도 덮고 기찻길도 덮고 고속도로도 덮었다.

어느 큰 도시를 지나가는 고속도로 곁,

그 마을 사람들만 아는 장소가 있었다.

경사지인 그곳은 아예 눈썰매가 두 대 있다 한다.

그 자리에서 겨울을 나고 누군가 한쪽에 잘 세워 다음 겨울을 기다린다고.

그야말로 마을 사람들의 사회적 자본.

그 동네 사는 청년이 눈썰매를 실컷 타고 보내온 소식이었다.

어디나 우리 마을 자본이 있다.

물꼬만 해도 공간이 학교 울타리를 넘어 둘러친 환경으로 확대된다.

저 건너 수로는 우리들의 눈썰매장,

마을 앞 계곡 커다란 바위미끄럼틀있는 수영장(거인폭포)은 우리들의 워터파크,

심지어 우린 아이스링크도 있다, 대해저수지.

작년 여름부터는 학교 뒤란 동쪽개울을 쳐내고 수영장을 곁에 두었다니까.

 

해가 간다.

메일을 연다.

엊그제 선생님께서 보내 주신 메일을 읽다 보니

선생님과 따뜻한 차 한 잔 앞에 놓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 느낌이 듭니다.

항상 따뜻한 기운을 주시는 선생님께 저는 늘 감사할 뿐이에요.

팬데믹 2년 상황에도 한 번도 그 일정을 취소하지 않고 운영하신

계자를 찾은 아이들 또한 물꼬에서 세상 밖으로 나갈 때

메일을 읽어 내려가던 제 마음 같겠지요.

선생님의 마음이 아이들 마음에 닿아 따뜻한 기운으로 덥혀질 듯합니다.’

정말 지난 2년 물꼬는 코로나19 때문에 취소한 일정이 없었다.

무모하기까지 했던.

난리통에도 삶은 계속되고, 아이들은 자란다,

우리는 우리 할 바를 다한다,

그런 생각이었다.

다행히 무사했다. 그야말로 운이 좋았다. 늘 그런 운에 기대서만 지낼 수 없겠지.

지난여름과 올겨울은 코로나19검사를 하고 음성 반응을 받은 이만 모이기로 했다.

좀 더 안전하다는 근거를 가지고 진행하는 일정.

샘들도 대단했다. 특히 계자는 품앗이샘들 없이 할 수 없는 일이니. 모다 애쓰셨다.

올 겨울에도 그렇게 손발들이 모인다.

존재를 걸고 또 살기로 한다.

살거나 죽거나.

 

나이를 제법 먹었다.

그 절반 이상을 물꼬에서 보냈다.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혁명이란 말에 가슴 떨렸던 20대들이 넘쳤던 시절이 내가 보낸 시대였다.

책꽂이 앞에서 <러시아혁명>이라 적힌 책등을 봤다.

10월 혁명이 그것이었다.

뜨거운 역사였지만, ‘목표는 사회주의적이라고 불릴 수 있다 해도 그것을 획득하기 위해

사용된 수단은 종종 사회주의의 부정 바로 그 자체였다.‘(E.H.)

볼세비키 독재체제가 비판받았다고 그 혁명의 성과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다.

가혹한 전제주의와 전쟁의 궁핍에서 인민을 해방시킨 러시아 혁명이었다.

서구에 견주면 여전히 뒤처졌지만, 의료 교육 생활서비스는 소련 전역에 확산되었으니까.

하지만 현실사회주의의 진보는 멈췄고, 소련은 해체되었다.

볼세비키들은... 무능했다.

볼세비키들이 따랐던 맑스-레닌주의의 급격한 몰락은

90년대 초반 역시 그들을 따르던 한국의 운동 세대도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그러나 볼세비키들의 실패가

그들이 나아가고자 했던 정의와 평등과 자유의 깃발이 찢어져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 깃발은 그들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이었고, 지금도 유효하므로.

 

눈이 내린 밖을 보면서 낮 잠깐 뜨개질을 했다.

찻잔받침 하나 더했다.

눈도 몰아낸 바람이 가지들을 건드렸다.

학교 마당 큰 나무들 아래서 떨어진 가지들을 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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