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냥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겠는 거다.

마구 기쁜 거다.

팬데믹 아래 지난 이태였다.

마치 해방구에서 코로나19가 어디 먼 곳의 이야기인 양 우리 아이들이

잠옷 바람에 내복바람에 마당에 쏟아져 돌아다닌다, 그것도 이 시베리아 같은 멧골에서.

나무를 오르고 공을 차고 술래잡기를 하고 진돗개 습이와 가습이를 기웃거리고...

눈시울이 붉어진다.

어른들이야 어른들이라지만 아이들이 참 못할 짓이었다, 비대면 시절이.

우리 사는 것같이 살고 있다, 지금!

그들을 바라지하면서 기껍고 느껍다.

 

샘들 해건지기’.

오늘 하루를 모실 준비, 아이들 앞에 설 준비로

샘들이 먼저 일어나 난방도 되지 않는 고래방에서 수행을 한다.

우리 전통무예 일부로 북방요가를 하고 간절한 마음을 담아 티벳대배 백배,

그리고 호흡명상을 하며 지금 우리가 있는 이곳 삶의 평안과 평화를 기원했다.

정말 따뜻한 방에서 잘 자서인지 맑은 정신으로 백배했다.’(휘령샘의 날적이에서)

 

샘들이 본관으로 돌아왔더니, 아이들은 벌써 일어나 복도와 책방을 누비고 있었다.

남자방 이불이 다 개어져 있었다.

큰 도윤이가 나서서 한 일이었다.

아이들 해건지기는 수행방에서 이루어졌다.

첫째마당으로 자연을 닮은 동작으로 멈춤과 호흡과 몸 살피기를 했다.

다음은 호흡명상,

그리고 셋째마당으로 옷을 여며 학교 마당을 걸었다.

 

시와 노래가 있는 한솥엣밥’.

정후가 밥만 먹었다, 좋아하는 게 없다고.

후식으로 나온 귤을 계속 까먹다.

괜찮다. 한 끼쯤이야.

더구나, 이곳에선 먹을 수밖에. 움직임이 많아 다 맛있으니까.

간식을 거의 주지 않고 삼시세끼를 충실하게 먹으려.

 

설거지.

아이들도 같이 한다.

예전엔 집안에서 이루어지던 일상 교육이 최근엔 학원이 생기기까지 하는.

설거지도 과외를 받을 판.

물꼬에서는 일상 자립기술을 아이들이 익히기를 바란다.

작은 도윤이가 설거지 할 아이들 틈에서 설거지와 청소 가운데

가위바위보로 청소를 맡았다.

, 그는 1모둠, 지금은 2모둠인데, 그제야 알아차린 근영샘,

도윤이는 그네 모둠 설거지할 때 하라 하니,

그냥 도와줄래요, 하고 계속했다.

현준이가 설거지 손으로 차출당하다.

대체로 물꼬의 많은 일은 기꺼이 마음을 내서 하실 분이 계신가요?’하고 묻지만

때로 해야겠는 아이를 부르는.

어렸을 때 같으면 끝까지 안한다고 했을 텐데,

싫어하면서도 30개의 접시를 열심히 닦아주었다. 뭔가 감동 있는 순간이었다.’(휘령샘)

일곱 살 현준이는 벌써 열세 살이 되었다.

그의 엄마가 물꼬의 품앗이로 대학시절을 보냈고,

결혼 전 아빠도 물꼬 품앗이였던.

(물꼬가) 현준이가 오래 형님이 될 때를 기다렸고,

지난계자부터 연습해왔다. 성큼 또 자란 그다.

어른은 기다리면 된다. 애 키우는 게 이렇게 쉽다. 아이들은 결국 자란다!

 

손풀기를 준비하려고 샘들이 미처 못 깎았던 4B연필을 지난 달력을 펴놓고 깎고 있을 적,

채원 정윤 서윤 은서 현준 윤수 지윤 작은소윤 들이 구경하고 있다가

달력에 그림을 그렸다.

그때 은서가 말했다,

샘들은 돈도 안 받고 일하는데 안 힘들어요?”, 하고.

그래서 안 힘든 거다, 즐거운 거다.

이걸 밥벌이로 하자면

이 강도 높은 노동을 하려드는 이가 드물 것.

정후 수범이가 또 부딪혔다. 뭐 금세 또 논다.

우리 어른들이란 얼마나 오래오래 앙금을 갖는지.

 

크게 그립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립니다. 말없이 그립니다.”

손풀기가 시작된다.

명상이고 손훈련이다. 교사로서는 그림을 통해 아이들 마음 안을 들여다보기도.

복도 신발장 앞, 마친보람을 하는 자리 곁 창 선반에

이전 계자 아이들의 손풀기 결과물들이 있다. 아이들이 그것을 보고 고무된 바가 있을 수도.

사뭇들 진지했다.

연필을 내려놓고 자기가 벽이 되어 전시회를 했다.

수범이가 나는 그림 못 그린다 생각했지만 계자를 다니며 생각이 달라졌다,

잘 보고 그렸더니 이제 보지 않고도 잘 그린다했고.

작은 도윤이는 친구들 잘 그린 걸 보며 더 열심히 그리고 싶다,

다른 사람들이 정말 그림을 잘 그린다했다,

 

‘0169’

, 이번계자 구성원이 아니면 못 알아볼 숫자다.

우리 계자에 들어오려면 비번이 생겼다. 어제 우리끼리 정한.

열린교실, 만들기, 그림이며 다 어우러진.

거기 물꼬가 사는 방식도 담긴.

우리는 이번 계자 사람들이 다 같이 뭔가 작업을 해보기로. 공동창작이다.

밖에 꽃이 없는 계절, 우리는 꽃밭을 만들었다.

투명 패트병과 옷걸이와 병뚜껑으로.

모둠끼리 방 하나 차지하고 하기로.

낮밥을 먹고 또 이어갔네.

펼쳐보이기에 초대 받아 갔더니, 감동의 물결이 파도로 밀렸다.

한 아이들도, 다른 모둠이 한 것을 보는 아이들도 뿌듯해했다.

 

아이들은 섬세하다.

꽃잎의 크기도 얼 만큼 원하는지 명확하게 자르는 걸 돕는 이에게 알려준다.

작은 소윤이는 꽃과 벌을 만들었다. 엄지손톱만한 벌을 세심하게.

소윤이는 누군가 챙겨주어야 원하는 것을 말하더라. 필요한 게 있어도 한참 기다리고.

1모둠 작품의 거의 절반은 작은 도윤이의 부지런함과 성실함에 기댔다.

원하는 것이 명확하니 손도 빨랐네.

토끼, , 선풍기들이며 종이상자로 집을 만들고 칼로 잘라내 문도 만들고.

홍주샘, 지인샘, 하다샘, 민교형님, 어른 넷이 한 아이를 돕고 있다. 아이 하나 키우는 데 한 마을이 필요하다잖던가.

작품을 자랑스러워하며 집을 껴안고 앉았는 작은 도윤.

동우는 참여할까 말까 재료를 만지작거리다 결국 자유를 찾아 떠났다.

많은 무기를 제작하는 중. 깊은 산중에서 전쟁을 준비 중이신가.

0169를 지나면 관계들이 발전한다.

태양이는 혼자서도 장갑을 끼고 글루건을 잘 다루고,

지율이는 덤덤한 표정으로, 때로 무심한 듯, 소심한 듯,

그러나 0169에서 가장 적극적인 아이 하나.

필요한 게 있냐 물으면 바로바로 기다렸다는 듯 요구하는.

예린이는 세 장의 노란 꽃잎을 칠하며 병뚜껑 바깥도 놓치지 않았다.

빨간색 통에 초록 꽃잎 셋은 수범이 꽃,

서윤은 자주색꽃에 노란 받침을 둔 서윤의 꽃,

여러 개의 집도 그의 것이다.

가위질을 어려워해서 천천히 해보게 희지샘이 도왔네.

정윤의 열린 창문을 가진 하늘색 집은

창에서 고양이와 토끼가 창밖을 보고 있었다.

정후는 초록 꽃받침에 하늘색 튤립을,

윤수는 투명 오징어 꽃(오징어 눈도 붙이고)을 만들었다.

그 틈에 자신을 위한 작품(다이너마이트, 로봇, 백신... )도 따로 만들고,

큰 지윤은 자색고구마 나비를,

현준은 꽃잎 5장이 달린 하늘색 꽃을,

준형은 지구를 닮은 꽃이다.

꽃 위의 나비를 덧붙인 채원이는

언제나 친절하게 부탁하고 주변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채원 은서 큰 소윤이 비질을 했다,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수범 서윤 정후가 놀이를 하고 있었네.

수범이 시작하자마다 실수해서 서윤이가 바로 지적을 했더라.

수범이 가뿐하게 쏘리! 잘 몰랐으니까 한 번만 봐줘. 벌칙은 뭐로 해?” 그랬다.

절대 벌칙을 받아들일 수 없다던 지난계자의 수범이었다.

, 그 아이도 또 성큼 자라있다.

3학년 정인이는 5학년 현준과 2학년 수범이가 서로 티격대면(서로 친한 사이)

누나처럼 그런 말은 하지 마, 기분 나쁘잖아.” 야단을 치기도 했다.

작은 세미를 챙기고 양보하고, 이전의 계자들처럼 정인이는 여전히 고운 아이였다.

그걸 남에게 잘 보이려 하는 게 아니다.

그 아이는 그렇다.

 

밥상머리공연이 있었다.

연주자의 개인사정으로 황급히 공연일정이 바뀌다.

나무를 타러 간다던가.

저녁에 무대에 오른다더니 점심에 하면 안 되냐고.

안될 게 무엇이겠는가.

서윤이의 피아노 연주였다.

 

낮밥을 물린 아이들이 나무를 오르려 나서자

오전에는 근영샘이, 오후에는 휘령샘이 그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보았다.

새끼일꾼이 되어 나무 오르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던 큰 도윤이가

태양이와 서윤에게 시범을 보이는 시간이 길었다.

이미 새끼일꾼 같은 도윤.

동우는 팔이 까이면서도 그예 성공.

작은 도윤이는 지인샘 홍주샘 근영샘이랑 알까기를 하다가

소나무에 올라가는 윤수 도윤 동우 수범을 구경했다.

아이들은 축구도 하고.

준형이가 윤호샘과 체스 하는데 관심은 옆 책상의 희지샘과 작은 도윤의 알까지

작은 도윤은 윤호샘 희지샘 홍주샘, 지인샘들 모두 데리고 알까기.

 

다시 오후의 ‘0169’.

각자 만든 것을 한 데 모으는, 합체 조립의 과정이었다.

땅은 얼어서 파지 못하니 대신 커다란 상자를 땅 삼고 거기 꽂아두기로.

2모둠은 땅을 칠하고, 모든 면에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작품들을 배치했다.

수범 서윤 현준은 옆 모둠의 낮에 하는 작은 대동놀이(아이들이 노래 부르던 피구를 그예 하다)를 하러

홍주샘 지인샘 하다샘을 앞세우고 고래방으로 떠나버린

교환학생이라고 하자.

정인 지윤 예린이가 샘들을 버리고 않고 작품 마감에 붙어 의리를 지켜주었네.

 

일정 사이와 사이의 시간들에도 우리들의 역사는 계속되리니.

지윤 정윤 예린 채원 작은소윤 은서 정인 들이 골판지로 팔찌 머리띠들을 만들고,
찍찍이로 풀고 매기 좋도록 해서 두루 나누었는데,

애들이 작업하고 남겨놓은 것들을 지윤이가 정리를 하고 있었다.

형님은 물꼬의 새끼일꾼으로 그리 길러지고 있었다.

세미는 언니들과 여자방에 있는 티피로 호텔놀이 중.

정인이와 전단지까지 만들어 나눠주고 다녔네.

서비스 라고도 써 있더라.

 

준형이는 한 끼마다 꼭 두 차례씩 밥을 먹는다.
참치김치찌개를 아주 좋아하는 아이.

작은 도윤이는 김치부침개를 엄청 사랑한다며 가지러 오고 또 왔다.

서윤이는 밥을 남긴 대신 김치부침개 네 장을 먹고도

아직 입맛을 다시자

예린이가 마지막 남은 김치전을 가져다 서윤에게 건네주었다.

 

저녁 때건지기.

정후랑 작은 도윤이 공기놀이.

민교형님이 큰도윤을 데리고 밥상을 깔았던 남자방 청소하러.

새끼일꾼은 손에서 빗자루를 놓지 않는다.

물꼬의 새끼일꾼 전통이다.

아람 연규 윤지들이 세웠고, 전승되는.

말이 넘치는 동우가, 공기놀이 할 때는 조용하게.

동우는 공기를 해야겠다, 한데모임할 때도 한 곳에 전을 벌여주어야겠네.

태양이 공기 못 한다 속상해하면서도 계속 애쓰다.

 

한데모임’.

물꼬 노래집 <메아리>를 놓고 목청껏 노래를 부르고.

지율이가 약간 가라앉아보여 마음이 쓰였는데,

노래를 열심히 불렀다.

어어어어어, 노래 버렸네, 뭔 일이래?”

들어가서 다시 노래를 받으라 했네.

아이들은 손가락 지휘만으로도 음을 찾는다.

아이들은 그 어려운 노래를 금세 배운다.

악기에 맞춘 것도 아닌데.

신아외소리와 강강술래에 학교에 흘러갈 정도였더라.

 

대동놀이 가기 전, 예린이가 이런 학교면 맨날 다니고 싶어요. 맨날 놀잖아요.”

아이들은 놀아도 놀아도 놂이 부족하다.

아이들은 놀면서 배운다.

작은 도윤이는 마스크 안 쓰는 학교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그래, 그래서 계자를 연 거지, 그러라고.

1학년 세미가 서럽게 울었다.

무서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으니 그게 촉발점이 되었을 수도.

대동놀이가 시작되고도 한참을 울어

따뜻한 차라도 먹인다 가마솥방에 데려갔더니

이내 대동놀이 하는 방에 간다고.

엄마도 네가 보고 싶은 데 꾹 참고 계실 거야.

씩씩한 마음 배우고 오라고 보내셨으니까.

엄마 어디 안 가는 거 알지?”

지난계자도 잘 지내다 갔더니 엄마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으니까.

 

대동놀이’.

내 컵 지키기 놀이에서

어제는 졸려하던 지율, 오늘은 잠을 깨고 3명이 치룬 결승전에 진출해 승자가 되었다.

신문지놀이로도 학교가 떠나갔네.

민교형님이 새끼일꾼 대표로 빗자루를 놓지 않고,

부엌일을 어찌나 야물게 잘 거드는지,

그가 또 내게 배움이 된다.

어린 나이에 저리 잘해낸다.

 

모둠 하루재기, 서윤이 어제는 삐쳐 글집 표지를 못 만든 걸 후회하더니

오늘 글집을 받아서 그림을 그렸고, 자랑도 잊지 않았다.

씻을 때 정후 정강이에 살이 터서 홍주샘이 바셀린을 발라주었다.

샘들이 정후 교정기도 밤마다 풀어주고 있다.

동우 머리 말리는 게 가장 힘들었다는 홍주샘,

머리를 감고 수건으로 닦지 조차 않은 듯이 나온.

동우스런 머리였네.

 

아이들도 예쁘지만 샘들도 못지않다.

이들이 내 동료여서 고맙다.

나는 이들로 또 물꼬를, 계자를 지켜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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