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날리는 아침이었다.

샘들이 먼저 부스스 일어나 가마솥방에 들어서서 김밥을 싼다. 샘들 해건지기 대신.

멸치와 묵은지와 양파를 볶아 만든 속.

아이들이 더러 집에 돌아가 물꼬 김밥을 싸 달라 한다는데,

근영샘도 집에서 그렇게 해먹었다는데,

그 맛이 날 리가 없다. 그건 엄청 고된 산오름 뒤 산 위에서

제대로 앉지도 못하고 엉거주춤 먹을 때야 그 맛이 나는.

마치 산 아래서 거들떠도 보지 않던 초코파이를

산에서 가장 맛난 간식으로 먹는 것과 같은.

부엌에서는 다시 아침밥상을 준비했다; 조랭이떡국.

 

수행방에서는 아이들끼리 해건지기.

명상할 때 종도 써도 돼요?”

싱잉볼이나 띵샤를 써도 되냐는 말. 그럼, 그럼.

운동장 걷기는 어떻게 해요?”

그건 산을 오를 것이니 따로 할 것 없이 빼고

몸풀기와 호흡명상만 하기로

간밤에 있었던 반짝 한데모임에서 가닥은 잡아놓았던 바.

그동안 본 게 있었고, 익혀진 게 있으니 그걸 따라 하기로.

현준을 중심으로 아이들이 진행, 의논해가며.

지인샘이 참관자로 들어갔다.

간단한 스트레칭으로 머리에서 발끝까지 풀어가는데 현준이 구령을 붙이고,

명상은 1분을 하기로 하는데, 1분이 길어 정후는 계속 언제 끝나냐 물었다네.

그래도 해건지기가 끝나고 이렇게 진행된 적이 없어 특별했다 정후가 말했고.

서윤이도 이렇게 진행한 게 재밌다 했단다.

 

산오름 준비모임.

이야기가 풍성한 물꼬라.

물꼬가 깃든 멧골 이야기부터.

이 깊은 산마을 이름이 대해리(大海里큰 바다 마을)라니.

이바구 때바구 강때바구,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이곳에는 바다처럼 보이는 너른 호수가 있었다.

거기 해마다 11월이면 청둥오리들이 겨울을 나러 왔는데,

자고 일어났더니 생전 얼지 않던 호수가 꽝꽝 얼어버렸다.

놀란 청둥오리들이 날아오르려는데아쿠얼음 때문에...

호수의 모든 오리들이 여러 차례 같이 용을 쓴 것에야 날아오를 수 있었고,

더 남쪽으로 날아가는 그들 발목에서 얼음조각들이 툭 떨어져

대해저수지가 만들어졌나니.

그 호수의 흔적을 오늘 혹시 볼 수 있을까?

 

다니엘 살미에리의 그림책도 읽었다; <산책>

“169계자를 위해 안에 있는 어른들 말고도

밖에서 여러 어른들이 우리에게 사랑을 보내주셔요.

펑펑 내리는 저 눈을 보낸 하늘처럼!”

이 책은 여기 다른 샘들과 같은 품앗이샘이면서 논두렁(후원회원)인 아리샘이

우리를 위해 보내주셨다 전하다.

 

넓은 들에 다다르자 눈이 잦아들었습니다.

곰과 늑대는 여기 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땐 여름이었지요.

숲은 온통 초록이었고 온갖 소리와 향기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곳은 넓고 푸른 호수였습니다.

지금은 넓은 얼음 들판이 되었습니다.’

- <산책>(다니엘 살미에리 글·그림가운데서

 

눈이 내린 고요한 겨울밤 산책을 나간 꼬마 곰과 꼬마 늑대가 나눈 우정의 따뜻함이

우리에게도 전해졌다.

오늘 우리는 그 호수에 이를 수 있을까?

물꼬에 모인 곰과 늑대들이 떠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각자 집에 돌아가 봄을 맞이하는 모습이라니

벌써부터 뭉클했다.’(휘령샘의 날적이에서)

 

골이 깊고 그런 만큼 품은 이야기도 많은 이곳,

오늘은 손님산으로 간다. 옛적 화전민이 일군 마을,

늙은이도 아이도 아픈 사람도 온 마을이 돌봐주던 그런 마을 이야기가 담긴

손님산은 어디메 있을까?

우리가 오늘 그곳을 찾을 수는 있을까?

이 모험의 여정은 어떻게 그려질까?

우리는 길도 없는 겨울산으로 들어간다.

그 마을에 어느 날 ’, 그러니까 나그네가 하나 찾아들었습니다.”

다음 이야기는 다음 쉼터에서.

이야기가 우리 걸음에 동행하기도 할.

샘들은 아이들이 잘 볼 수 있도록 형광조끼들을 입고,

모두 운동장에 모여 마지막 복장을 점검하고, 사람 수를 확인한 뒤 출발!

신비하여라길을 나설 땐 눈이 멎었다.

방에 불을 지펴둘 젊은 할아버지와 발목을 다친 희지샘이 남아 학교를 지키고

이번 계자 구성원 모두가 길을 떠나다.

이 멧골은 한파주의보 한가운데였다.

바람이 몰아치는 우듬지였으나 아래는 바람이 수굿했다. 볕도 좋았다

절묘한 물꼬 날씨는 169계자에도 어김없었으니.

 

마을을 지나고, 나무를 잘라 내린 산판지대에 이른다.

벌써 패인 길을 만나 오롯이 경사지에 몸을 붙여 한 사람씩 지나야할 아슬한 길을 만났네.

오늘 산오름이 뭔가 쉽지 않을 것 같은 예감.

깎아지른 지대를 지그재그로 오른다.

예린이는 아주 네 발로 기어올랐다.

정인이와 지율이가 아이들 손을 잡아준다.

현준이와 큰도가 아이들을 끌어주었다.

정후가 무섭다고 내내 울었다. 그것도 걸음이 보태질 때마다 줄어들고.

능선 아래 볕 두텁고 바람 잠잠한 곳 1지점에서 목을 축이고,

능선에 올라 산등성마루를 넘어 다음 산등성이 시작되는 골짝까지 타고 내려갔는데,

 

, 뒤가 이어지지 않는다. 아차! 꼬리를 놓쳤다. 아찔하다.

이 바람에, 이 언 날에!

볕 아래 모두 서 있으라 이르고 오던 길을 되돌아 달리기 시작한다.

경사지를 평지 같은 속도로 달려 오른다,

잘린 꼬리들이 제발 어디로 더 가지 말고 멈춰서 있기를 바라며.

그제야 전화기를 생각했네.

언젠가 민주지산의 여름 날, 비 내리는 어둠 속을 그리 달린 적이 있었다.

두 갈래 길에서 다른 길로 아주 멀리 나머지 아이들이 갔던.

그 산이 훤했던 덕분에 빨리 상황을 파악하고 대처할 수 있었던.

이곳은... 다행히 마을이랑 아주 멀지는 않다. 고개를 몇 개씩 넘어야 하긴 하나

능선 양쪽으로 마을이 있는.

어이!”

몇 차례 불러도 대답 없더니 전화기와 대답이 동시에 울렸다.

있었다, 거기! 윤수 태양 준형 세미 휘령샘 하다샘 지인샘.

어떻게든 구하러 올 줄 알고,

우리한테 김밥이랑 물이랑 다 있어, 큰소리치면서.

얼마쯤 잘못 가다 다시 되돌아 그 지점에서 기다리고 있었더란다. 고마워라.

 

모두 다시들 만나 대열을 정비하고,

앞과 뒤가 연결되도록 지침을 다시 안내하고,

우리는 또 나아갔다.

예린이는 뒤에 오는 친구들을 위해 낙엽도 치워주고,

길 잃지 말라 나뭇가지도 들고 있었다.

징징대는 줄만 알았는데 은근 멋있음.’(홍주샘)

홍주샘 손을 1초만 놓아도 무섭다고 울던 정후,

나중에는 줄의 앞쪽에서 씩씩하게 걸었다.

세미가 몇 번을 넘어져도 툭툭 털고 일어선다.

준형이는 장갑이 잘 벗겨져 장갑을 벗고 주머니에 손을 넣길래

샘들이 목장갑을 꺼내주다.

서윤이는 장갑을 내내 아주 벗고 산을 걸었다.

예린이와 같이 나뭇가지를 들고 아이들을 이끌기도.

이전 계자 산오름에서 울면서 가던 태양이도 이제 울지 않는다. 쓰러지기는 할지라도.

우리는 가파른 내리막에서는 아주 엉덩이를 붙이고 미끄럼을 탔고,

다시 오르막에서는 나무를 붙잡고 서로가 서로를 당기고 밀고.

, 저기 좀 봐!”

키가 큰 나무들이 너울너울 춤을 추고 있는데,

아래는 바람이 닿지 않았다.

 

볕 좋은 3지점에서 다시 쉼.

이제 다음은 낮밥을 먹을 곳에서 자리를 잡겠다.

기어오르고 내리고 오르고 내리고.

한 고개를 넘자 관목지대가 나오고, 볕도 좋았다. 모두가 들어설 만했다.

한쪽에 윤호샘과 땅을 좀 파서 안전하게 불을 피울 자리를 잡고

물을 끓여 핫초코를 만들다.

코로아를 먹을 긴 줄에서 지윤이는 샘들 먼저 마시라고 자리를 내주었네.

밥노래도 부르고 자유학교 노래도 부르고.

, 다사로와지는 마음이라.

저 위 나무들 위로 바람이 저리 씽씽 내달리는데,

우리 있는 아래는 평온하였더라니.

 

이제 돌아가 보자.

너덜바위가 이어지고 그 위로 가시밭길이었다.

앞에서 지팡이로 쳐내가며,

아이들은 뒤에 오는 이들을 위해 가시덩굴을 다른 데로 걸쳐놓으며 나아가다.

태양이가 자꾸 엎어진다. 예린이와 큰도가 기다란 막대기로 가지들을 헤쳐준다.

휘령샘이 가지를 다른 나무에 걸쳐주는 걸 보며

세미도 따라하고 있었다.

, 정말 아이들은 어른을 보고 배우는 구나, 다시 한 번 몸소 느낀 순간이었다.’(지인샘)

그 세미를 준형이가 또 따라하다. 뒤에 오는 하다샘을 위해.

우리 키에서도 겨우 겨우 나아가는데, 세미에겐 가시들이 얼굴께라

지인샘이 세미를 안아 올려 나아오다.

너무 가벼워 남자샘을 부르지 않아도 되었더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길이 나왔다.

산판했던 길이 남아 우리에게 등산로를 제공하였네.

알겠다, 정확하게, 여기가 어디인지.

길 어디쯤에서 멈춰서서 모두를 기다렸다.

 

열심히 걸어온 여러분을 위한 선물 개봉박두!”

뒤를 돌아보시라 했네.

작은 호수가 하얗게 펼쳐졌다.

, 곰과 늑대가 우정을 나누던 호수가,

대해리 이야기 속에 나오는 호수가 거기 있었다.

날이 차서 힘들었으나 그리 찼기 때문에 안전한 얼음이었다.

(사실은 가물 때 그 바닥을 치며 깊이를 알았다.

혹 얼음이 깨져도 아이를 구해낼 수 있는 깊이.)

모두 들어갔다.

태양이는 곰과 늑대가 얼음 아래를 보며 물고기를 보았듯 엎드려

언 호수 바닥을 내내 들여다보느라 여념 없었네. 저 아름다운 친구!

샘들이 온몸을 던져 얼음을 지치다.

현준과 큰도는 컸다고, 윤호샘이 좀 세게 눈을 던졌는데도 그걸 잘 받았다.

손이 따뜻한 하다샘을

지율 채원 세미 정윤 안소가 인간핫팩 손이라며 잡고들 다니기도.

지윤이가 진심으로 홍주샘한테 눈을 던졌다. 홍주샘도 지지 않고 그리 던지더라.

홍주샘이 수범에게도 눈을 뿌렸는데, 한 번 했는데 바로 울어버린 수범.

윤호샘한테 이미 호되게 당하던 참이었던 걸.

하다샘이 아이들을 끌고 미끄럼을 태워주다.

지율이와 정인가 눈밭을 구른다.

작도가 눈사람을 만든다.

아이들이 참 열심히도 뛰어다닌다.

, 천국이다, 정토다, 극락이다!

휘령샘과 나는 가장자리에서 혹여 누군가 다치면 달려갈 수 있도록 섰었네.

 

한 친구가 화장실을 오래 썼다. 두 차례나 가기도.

몸을 움직여주니 그간 화장실을 잘 못갔던 아이들도 볼일을 보는.

그럴 줄 알고 샘들이 화장지를 넉넉하게들 가방마다 넣었다지.

산에서는 우리가 모두 등을 돌리면 화장실,

바위 뒤 언덕 뒤 모든 곳이 또한.

마을에 와서는 이 멧골에도 있는 교회 화장실을 교회의 기능에 맞게 잘 써주었네.

 

비로소 산을 나왔다. 수범이가 그랬던가, 재밌게 어려웠다고.

어묵탕이 기다리고 있었다. 희지샘이 마련해주었다.

아이들이 없는 게 너무 허전했다고,

어묵탕을 20인분 이상을 끓이는 게 처음이라 물양이 어려웠다고,

간을 하도 봐서 나중에는 이게 짠 건지 싱거운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했다.

오늘 혼자 있으면서 내 감정을 들여다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던 것 같다.’(희지샘)

희지샘은 또 그런 귀한 시간을 맞았더랬네.

 

이제 좀 씻어줄까.

지율이는 씩씩하다. 호들갑을 떨지 않는다. 샤워만 해도 얼마나 추울 텐데,

웃으면서 참을 만하다는 아이.

그 아이는 뭔가 마음에 두툼한 무게추를 달고 있는 듯하다.

산을 다녀오고 한 번에 대대적으로 물을 쓰자 마지막에 따뜻한 물이 모자랐다.

온수통이 데려지려면 시간이 걸리겠다.

홍주샘이 들어갔을 때 마지막 따뜻한 물이 멈췄다.

여자샘들도 아직 못 씻었네.

 

그 정도 산오름 쯤으로는 힘이 빠지지 않는 아이들이 뛰어다닌다.

방에서 정윤 채원 지윤 윤호샘이 손병호게임도 한창.

모두 한 손가락씩 남았는데, 서로 안 죽이려고 배려하는 모습들이라.

김밥을 남김없이 먹고 내려와 어묵탕을 다 먹고, 저녁도 싹싹.

채원이, 자기는 큰 그릇에 받고 싶다고, 두 번 받으러 가기 부끄럽다 했다.

가마솥방에서 자리 잡은 정인 지율 현준이며들은 아주 서너 차례가 예사였음.

지율, 정인은 5차까지 7차까지 먹는다고 하더니 3차까지 밖에 못감 ㅋㅋ

지율 정인은 참 따뜻하고 귀여운 아이들.

지율은 조용하면서도 적극적이고 유머도 있는 아이.

정인이는 작은 일에도 사과를 잘하고 다른 친구 마음을 배려할 줄 아는 아이‘(홍주샘)

 

저녁 때건지기를 하고 아이들은 여전히 뛰어다닌다.

준형이가 도윤이에게 윤수가 나를 자꾸 놀려, 다른 사람들이 나를 계속 놀리면 네가 나서서 그만 하라고 해줘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민교형님)

준형이는 제 뜻을 잘 말한다.

은서는 말이 좀 세다. 솔직해서 그런 갑다.

은서와 안소는 남자샘 중 윤호샘이 제일 좋단다. 제일 착해서란다.

희지샘과 채원 정윤이가 병뚜껑을 투호처럼 던지며 논다.

멀리 날리기, 선에 가장 가까이 던지기 놀이.

차츰 아이들이 늘어났다.

정윤이는 희지샘이랑 밤에 읽을 책을 고르러 책방으로 갔다.

자신이 골랐음을 알려 달라 하여 희지샘이 책을 읽기 전에 그리 알렸다고.

예린이가 물꼬 노래가 좋다며 수첩에 적었다. 민교형님이 뭉클했다 했다.

 

한데모임’.

손님들의 나라 이야기는 이 시간에 와서야 마무리가 되었다.

손이 팔았던 가죽신발, 그리고 손의 횡포,

노인의 지혜로 손을 몰아내고

모두가 서로에게 귀한 손님이 된 손님들의 나라.

다시는 못된 손이 넘보지 않게 돌을 깎아 기둥을 세우고 자신들의 마을을 지켰다는.

큰도가, 우리가 지나쳐온 숲길 가에 비슷한 돌기둥이 있었노라 했다.

모르지, 그곳이 손님들의 나라였는지도.

우리는 왜 온 하루를 들여 산으로 갔는가 물었다.

모두가 돌아가며 다 한 마디씩 답했다. 아이들은 답을 알고 있었다.

살다보면 어려운 일을 만날 때, 오늘 우리가 가시밭길과 돌무덤과 가파른 골짜기를 건넜듯

그리 설컹 건너시라 하였다.

 

강강술래’.

고래방으로 건너갔다.

신명이라. 우리는 오늘을 위해 한데모임에서 노래 부를 적 강강술래도 빼놓지 않았다.

태희샘이 그리웠다. 계자의 큰 축.

이제 곧 간호사가 되면 더욱 계자 합류가 어려워지겠지.

어릴 때 계자로 시작한 그인데 아직도 강강술래의 감동이 크다고 말하는 그.

고단한 세미와 코가 많이 막힌 준형이와 민교형님은 방에 남았다.

다음에는 강강술래 안에서 만날 수 있길.

이소가 이제야 마음이 좀 열린 듯하더라.

 

마당에 장작불을 피웠다.

모두 둘러서서 마지막 밤을 갈무리하다.

어떤 마음들이신가 물었다.

아쉽다, 정말 특별했다, 시간이 잘 갔다. 다시 올 거다고들 했다.

거기 샘들도 보탰다.

처음 온 홍주샘이 다시 오겠다 했고, 휘령샘 역시 또 계자에서 만나자고 했다.

사람들이 모이면 먹는 거 자는 게 전부다 싶지.

샘들이 부지런히 잘 멕였고, 학교아저씨와 윤호샘이 불을 잘 지켰다.

무엇이 아이들을 물꼬로 다시 부르는가,

샘들의 헌신이 거기 있었던 까닭이다.

빛나는 기억이 우리 삶을 밀고 가더라.

모두에게 이곳의 시간이 그리되기를.

 

모둠 하루재기’.

예림이가 자기 글집에 쓴 글을 보여주는데,

멀리서 준형이가 보지 못하자 정인이가 글집을 가져가 보여주며 소리 내어 읽어주었다.

수범이가 하고 싶은 말로 마무리 인사를 하다.

이번 계자에서 나날이 목소리가 누그러워져간 수범이다.

그 아이가 이곳에서 허용을 경험하고 사랑을 받는 것을 스스로 안다.

그리고 마음을 순순하게 한다. 고마워라.

아이들에게 정말 무엇이 필요한지 온몸으로 말해줘서 우리에게 듣게 하는 아이.

아이들은 글집에 샘들 연락처를 물으러다녔다.

번호 땄다고 하며 서로 알려주기도 하더라.

 

샘들 하루재기’.

아이 하나하나 면면을 공유하고,

거기 자신의 변화도 말한다.

교사가 되려는 홍주샘은 여기 와서 참말 많이 배우고 있다고.

성질 까칠한 자신이 어떻게 해방되고 있는지 말했네.

너무 힘들어 마지막 밤 나누는 곡주 한 잔도 사양한 샘들이다.

그래도 골뱅이소면은 먹자고들.

휘령샘의 어머니가 보내주신 밤참거리 골뱅이였다.

이 계자를 위해 안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샘들 말고도 얼마나 많은 이들이 마음을 보태셨던가.

그러니 안 좋을 수가 없는 거다.

내일 먹을 아침거리 재료를 다듬어놓는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밤이다.

 

아직 하루가 남았으나 오늘밤 나는 샘들을 한 명 한 명 호명한다.

13년차 물꼬 품앗이이자 논두렁인 휘령샘,

그로부터 나는 즐거운 맘을 내는 법과 너른 마음을 배우네.

나날이 좋아지는 사람의 전형을 그에게서 봐왔던.

하다샘, 이곳 상황을 잘 알아 급박한 일이 생기더라도 일단 마음이 턱 놓이는.

더구나 예비의사이기도 해서 아이들의 상처나 사고에도 마음이 든든했다.

잠이 많은 사람인데 몸과 마음을 극대치로 내준 계자였네. 고마워라.

어릴 때 받았던 이곳에서의 좋은 경험을 아이들에게 잘 나눠주셨다.

몇 해째 교무행정일도 돕고 있는 그이네. 이제 누가 그 일을 할 것인가...

근영샘, 늘 우리에게 성실과 따뜻함을 보여주는 그는

그의 순한 결로 아이들을 또 그리 만들어준다.

섬세하고 온전하게 자신을 바친 홍주샘,

나날이 열어준 마음이 얼마나 보탬이었는지,

실제 남자 어른의 손이 얼마나 또 필요했던지 적절하게 와서 쓰여주셨네.

홍주샘이 아니었으면 윤호샘이 아궁이에 불을 때는 역으로 보내지 못했을.

물꼬에서 불을 때는 건 온전히 한 사람을 믿고 신뢰한다는 상징이 있는.

윤호샘과 진한 연대감을 느낀 시간이었더라.

내가 저 아이를 얼마나 아끼나 새삼 생각했네.

지인샘, 마음을 낸 만큼 움직임으로 보여주던 사람이었고,

10년 지나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날 수 있어 고마웠다.

지희샘, 나날이 더 더 더 자신을 내어주던 사람,

낯선 부엌에서 큰 규모의 음식 하나를 내는 일은 얼마나 어렵던가. 다시 고마워라.

새끼일꾼 대표 민교형님은,

부엌이면 부엌, 방이면 방, 자기 자리를 넓히고 마음을 다하던 이였다.

이런 사람들이 계자를 꾸렸네, 어찌 아이들이 아니 좋을까.

눈부신 아름다운 청년들이 물꼬를 채웠더라. 그 힘으로 또 물꼬는 이어지나니.

 

오늘밤은 윤호샘이 아궁이를 지키기로.

학교아저씨도 마지막 밤이라고 같이 지키신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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