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좋았다.

해건지기’,

수련하고 수행하는 대신 어른 아이 모두 요와 이불을 털고 베개를 정리키로.

아침 8시 일어나자고들 했지만, 벌써 책방에 들어간 남자애들도 여럿이었다.

평상부터 닦고 이불을 죄 끌고 나왔다가

군대를 갔다 온 이는 없었어도 군대처럼 이불을 각 맞춰 이불방에 쌓았다,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아직 남은 2월 일정까지 하고 이번 학년도가 끝나서야 봄 빨래를 할 이불들이다.

 

시와 노래가 있는 한솥엣밥’.

지율이의 공연이 예정되었으나 취소되었다.

아직 부끄러움을 극복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다음 계자에서 또 시도하게 될 게다.

밥상은 국밥에 달걀말이로 하트를 만들어주었다. 사랑을 전한다.

이 계절에 남도에서 올라온 파래를 무와 무쳐냈다.

애들이 그리 즐길 찬은 아니나 한 끼 하나쯤은 계절 음식을 내고파 했다.

땅에 묻은 배추김치 무김치도 꺼내왔다.

, 국밥과 같이 내는 오징어젓갈은 빠졌네.

어머님들 보내주신 반찬이 넉넉해서

밥과 국이나 찌개에 한 끼 한 가지만 부엌에서 찬을 준비해도 되었다.

하려고 준비해두었던 찬거리를 다 쓰지 않아도 되었던.

다시 고맙다. 그래서 또 수월했던 부엌이었다.

일부러 더 눌인 누렁지를 또 다 긁어먹은 아이들이다.

김이 포르르 오르는 갓 긁어놓은 누룽지는 얼마나 고솜한가.

 

먼지풀풀’.

우리가 지냈던 곳을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정리해야 함은 물론이겠다.

우리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내 것을 넘어 타인을 향하는 마음 키우기.

우리가 오기 전 누군가 우리를 맞기 위해 이곳을 청소했듯

우리 역시 다음에 이곳을 쓸 사람들을 위해 공간에 윤을 낸다.

하하, 게을러질 마음을 위해 은근 협박도 한다.

(청소 제대로 안 되면)안 보내고 말겠다, 뭐 그런.

샘들이 또 나를 팔린다. 옥샘이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라는 둥.

청소는 하는 이들 중심으로 하기 쉬운.

무슨 일이나 그렇더라.

하지만 한다고 억울한 게 아니다.

그런 것은 다 내게 붙어 나를 살리는 일이니까, 내가 이익인.

하다샘은 밖에서 대문께를 정돈했다.

소나무 아래 마른풀도 더 검고, 대문도 쓸고,

아이들 보내고서야 해도 될 바깥해우소 청소이겠지만

부모님 가운데 쓰실 일도 있지 않겠냐고 물걸레를 들고 나간 그라.

쳐 놓은 천막과 소나무 사이 환영의 다루촉도 걸고, 0169 창작물도 전시하며

대문 앞에 책상에 손소독제며 놓고, QR체크인이 가능토록 설치도 하다.

천막 안엔 큰 주전자에 달여 낸 모과유자꿀차가 놓여있었다.

물꼬에서 만든 것으로 아이들도 몇 차례 먹었던.

아이들 데리러온 부모님들 드십사.

아직 찾아가지 않은 아이들의 물건 바구니도 놓일 것이다.

 

물꼬장터갈무리’.

아이들이 가방을 꾸린다.

가방과 반찬통을 모아둔 커다란 바구니와

남겨진 양말이며 옷가지들 역시 담은 바구니를 가져다 놓고 모두 모여 찾아가기.

11시가 좀 지나 모둠방에 아이들이 다들 앉다.

갈무리 글을 쓰는 시간.

계자의 지난 시간 돞아보기.

이 역시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의 한 장면.

그제야 샘들은 씻으러 가고.

 

정오께 마친보람이 책방 앞 복도에서 있었다.

다들 애썼다.

아이들은 글집을 들고 한 줄로 서서 교장샘 앞에서 지난 시간을 한 사람 한 사람 정리하고,

샘들이 손으로 높이 서로 맞잡아 만든 축하터널을 지나다.

가마솥방에는 마지막 밥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지막 때건지기’.

아침에 달걀을 먹었지만 하지 않을 수 없는 달걀후라이였다.

현준이가 먹고 싶다고 첫날부터 주문했고,

정인이와 지율이가 김치도 볶아주면 안 되냐 여러 날 전 부탁했다.

왜 안 되겠는가.

그런데 밥과 어울리게 놓자니 그것들이 있을 자리가 없었다.

가기 전에는 해내야지.

마지막까지 우린 최선을 다한다, 우리 (그대들의 바람을) 잊지 않았다, 뭐 그런 의미로다가.

하여 마지막 끼니에 나오게 된.

내가 아이들 갈무리 모임을 들어가는 동안

지인샘이 들어와 달걀 서른 개를 부쳤네.

마지막까지 싹싹 솥단지를 비우고 떠난 아이들.

저들 입에 밥 들어가는 게 밥 하는 이의 가장 커다란 기쁨이지.

이번엔 샘들이 어찌나 배식을 잘하는지(정작 생산이 아니라 분배가 문제인 법)

끼니마다 거의 모두가 만족스럽게, 그리고 완벽하게 냄비를 비웠더라니.

 

1시 직전 모두 교문으로 향하다.

한 줄로 서서 혹여 아직 찾지 못한 내 짐이 있을까 천막 아래 물꼬장터를 다시 하고,

길게 늘어서서 마지막 노래를 부르다.

자유학교 노래만 부르기에 아쉽다고 저들 즐거워하는 노래 하나 더 하자고.

군밤타령을 하겠다데.

뭐 대문 앞에서의 공연이라기보다 우리끼리 한 끝인사.

 

아이들을 보내고,

밥 두어 그릇을 뚝딱 해서 아직 낮밥을 못 먹었던 샘들이 먹고,

차를 한 잔 마신 뒤 둘러앉아 갈무리모임’.

아이들 갈무리 글을 읽고, 전체 계자 평가를 하는.

휘령샘 아니어도 태희샘의 빈자리를 우리는 자주 크게 느꼈지.

물꼬가 삼국지를 쓰고 있는 줄 나만 몰랐네.

계획형 인간 관우는 태희샘, 유비는 휘령샘, 장비는 하다샘이라나.

몇 년간 계자 교감 일을 보는 휘령샘이 진두지휘한 계자였다.

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특수교사 일을 올해 쉬고 있는 휘령샘.

잊어서, 몰라서 놓치고, 눈에 보이는데 놓치고, 머리에 있으나 설명하지 않은 것도 많더라며

샘들이 원활하게 움직이지 못하는 지점이 있을 때 안에서 화가 올라올 때도 있었는데,

예전엔 할 말을 삼키기만 할 때도 많았는데,

이제 화가 아니라 대화할 수 있는 자신이 되더란다.

발목을 접질려 고생하고, 덕분에 모두 산에 보내고 혼자 남아

학교를 청소한 뒤 어묵탕을 끓여 우리를 맞은 희지샘은

그 시간이 온전히 자신과 마주한 선물이 되었다고도.

깊숙이 계자에 들어와 품앗이가 제대로 된 듯하다던 윤호샘은

이틀의 밤 불을 살폈다.

나는 또 한 번 그를 얼마나 신뢰하는가를 알았네.

겨울 아궁이가 중하기도 중하고, 관계의 거리가 가까워야 맡길 수 있는 일.

생각보다 일이 많아, 나 어릴 때 샘들이 이렇게 힘들게 했구나 싶더라는 새끼일꾼 민교형님.

여기 있는 동안 뉴스도 모르고 모바일폰도 안 보고 내 현실도 멀고 그렇더라고.

그런데 세상은 굴러간다. 그걸 몰라도 큰 일 안 난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막 휩쓸려 산다. 정신차리기!

어쩌면 그럴 시간을 우리가 가졌던 셈.

그리고

마음을 붙이기까지 시간이 걸렸다는 홍주샘의 고백을 들었다.

 

와보지 못하면 모르잖아요!”

이 학교에 대해서 의심했다 한다.

선배들로부터 들리는 이야기는 열악하다, 힘들다, 그런 것.

해서 군대 가는 느낌으로 잠도 깊게 못자고 각오하고 왔다고.

뭐 하는 애들이지? 이 시국에 하는 구나. 무모하다... 뭐 믿고 저러지? ...”

마음을 붙이기까지 시간이 걸렸다고.

시간이 지날수록 뜻 깊은 가치관을 담고 있음을 알았고,

옥샘이 우리 집에 와서 우리 엄마 아빠도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교육시켜줬으면 좋겠다 싶기까지 하더라나.

장애아가 여럿이었는데, 한 아이만 발달장애인 줄 알았다고.

자신이 참 편협하더라는.

내 부족함을 느끼고, 교사를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그대 같은 이가 교사를 해야지. 괜찮은 사람들이 교사를 해야지.

교사는 영향력이 큰 사람이니까. 아이들이 그들을 보며 보고 배우니까.

세상을 위해서 그러셔야지!”

현택형(맞다, 우리 현택샘을 말한다. 현택샘은 임용 1차 합격하고 2차 준비 중)이 올 수 있으면 같이 오고 싶다 했다.

그런데 청소하면서 또 마음이 뒤집어지더란다. 내가 다시 오나 보자 하고. 여기 일이 퍽 힘들거든.

헌데 또 다시, 가는 애들 보며 찡해져서는 , 이래서 왔구나, 기억이 미화되는구나싶더라고.

근영(맞다, 근영샘을 말한다) 누나가 그래서 오고 또 왔구나 했다고.

그에게 화답했네,

저도 계자 때마다 아, 내가 왜 이걸 또 한다고 했나 합니다.”

화목샘, 그의 먼 선배이기도 하네,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학기 중에 물꼬를 퍽 그리워하다가

버스에서 내려 걸어오며 자유학교 물꼬 현판을 보는 순간,

, 내가 왜 여길 또 왔지 한다는.

우리의 성장이 있고,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아이들이 있어서지.

그렇지 않다면 이 짓을 왜 하겠는가.

이 노동을 누가 값을 쳐줄 수 있겠는가, 도대체 얼마나 값을 칠 수 있겠는가.

나쁜 짓하자고 모인 것도 아니고 선한 일을 함께한다는데,

그것도 한 영혼의 성장에 동행하는 어마어마한 일을 한다는데!

첫걸음한 샘들이 워낙 잘 움직여 휘령샘이 전체를 잘 볼 수 있게 여유를 주었고,

부엌 역시 그래서 순조로왔다.

내가 밥상 준비를 해두면 말하지 않아도 10여 분 전에 나타나 타다다닥 배식대를 준비하고,

때때마다 감자를 깎고 양파를 벗기고 파를 다듬고.

아이들의 성장을 도우러 왔지만 결국 우리 자신의 성장을 보는 시간.

그러니 또 이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니겠는지!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아이들이 하고 나간 청소를 샘들이 또 곳곳에서 한다.

모둠방에서 나갔던 물건들이 창고에서, 또 교무실에서 다시 들어오고,

샘들의 마지막 밥상은 스파게티와 빵 한 조각.

마을을 나가는 저녁 버스에 샘들이 오르다.

그리고 상주하는 이가 마지막 3차 청소에 들어간다.

산더미 같은 빨래를 하고,

부엌 세간을 평소 구조로 바꾸고, 냉장고를 정리하고,

모둠방 물건들을 학기 중 구조로 돌리고.

 

샘들 열 가운데 넷이 떠났으니 여섯이 남았다.

지난겨울은 아이들이 그리 또 남았더니.

또래 청년들이 하룻밤을 쉬고 간다 남은; 윤호샘 지인샘 희지샘 하다샘

머잖은 곳 한 상담학회에서 참관자로 와 주십사 하였는데,

우리 청년들이 여기서 하룻밤을 보낸다 하는데 굳이 넘의 동네까지 가서 그럴 것까지야.

책임지고 진행해야 할 상황이 아니라 거기서 슬쩍 몸을 빼고 물꼬에 남다.

남은 이들은 저들 알아 밥도 먹고 하겠다지만

밥 하나는 든든하게 멕이고 싶지.

 

계자의 고단함은 바깥 음식들을 그립게 하기도,

젊은샘들이 나가서 치킨이며들을 사오다.

혹 감자튀김은 없어? 나도 계자 한 사람이야, 같이 계자 해놓고...”

우리는 엄마나 아빠, 혹은 어른들을 잊는다.

그들은 맛난 게 없는 줄 알거나,

그들은 당연히 밥을 하고 청소를 하고 밥벌이를 하는 줄 알거나.

내가 너무 힘들면 다른 사람이 힘든 게 보이지 않기도 하고.

다행히 학교아저씨인 젊은할아버지 몫을 사들고 왔네. 고마워라.

 

그리고 달골의 밤.

살포시 잠이 들었는가 싶은데 새벽 1시에 냉장고 여는 소리에 잠을 깨고,

수선스럽다 싶더니 새벽 5시께 학교를 다녀오는 소리가 또 잠결에 들렸다.

청년들이 밤새 뽀시락거렸네.

옛적 처음 계자를 하던 1994년의 여름이며 그 몇 해를 생각했네.

우리는 서울의 밤거리에서 날밤을 새고 아침 지하철에 올라타고는 했지.

고맙다, 아직 청춘인 물꼬일세.

 

아이들은 잘들 가시었는가.

감기가 더러 걸렸다. 준형이도 코가 막혀서 고생했는데.

하기야 엄마 품에 갔는데 무슨 걱정일까.

따뜻한 곳에서 하는 샤워는 얼마나 달콤할까.

아이들의 한때에 동행해서 영혼 한 자락에 얹히는 행운을 누리다.

고맙다, 고맙다, 고맙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
5882 2022. 1.31.달날. 맑은 낮이었으나 밤 눈 옥영경 2022-02-24 347
5881 2022. 1.30.해날. 맑음 옥영경 2022-02-24 344
5880 2022. 1.29.흙날. 흐리다 맑음 / 대중 경제서 두 권 옥영경 2022-02-24 370
5879 2022. 1.28.쇠날. 맑음 옥영경 2022-02-24 1443
5878 2022. 1.27.나무날. 맑음 / 전복 옥영경 2022-02-24 371
5877 2022. 1.26.물날. 맑음 / 교육재정을 들여다보다; 풍요는 낭비가 아니다! 옥영경 2022-01-31 581
5876 2022. 1.25.불날. 가랑비 옥영경 2022-01-31 469
5875 2022. 1.24.달날. 흐림 옥영경 2022-01-31 451
5874 2022. 1.23.해날. 흐림 옥영경 2022-01-31 452
5873 2022. 1.22.흙날. 흐리다 한 방울 비 지난 저녁 / 페미니즘을 말하는 책 두 권 옥영경 2022-01-30 469
5872 2022. 1.21.쇠날. 맑음 옥영경 2022-01-30 433
5871 2022. 1.20.나무날. 대한(大寒), 흐린 하늘 / 아, 두부 하나에 상자 하나 옥영경 2022-01-28 428
5870 2022. 1.19.물날. 흐리다 잠깐 눈발 / 잭 머니건과 의기투합한 걸로 옥영경 2022-01-28 426
5869 2022. 1.18.불날. 흐리다 해 / 학습의 밑절미 옥영경 2022-01-27 502
5868 2022. 1.17.달날. 밤 눈발 옥영경 2022-01-27 418
5867 2022. 1.16.해날. 흐리다 맑음 / 드르륵 문 여는 소리 옥영경 2022-01-26 491
5866 2022. 1.15.흙날. 맑음 옥영경 2022-01-26 403
5865 2021학년도 겨울, 169계자(1.9~14) 갈무리글 옥영경 2022-01-16 625
» 169계자 닫는 날, 2022. 1.14.쇠날. 맑음 / 잊지 않았다 [1] 옥영경 2022-01-15 593
5863 169계자 닷샛날, 2022. 1.13.나무날. 눈 내린 아침, 그리고 볕 좋은 오후 / ‘재밌게 어려웠다’, 손님들의 나라 [1] 옥영경 2022-01-15 600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