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이 다녀갔다. 자정부터 05시께까지.

가끔 문을 열고 내다봤다.

달골에서 겨울을 나려면 눈에 민감해야 한다.

얼기 전에 두어 곳을 쓸어야 차가 다닐 수 있는.

농사일 아니어도 삶 자체가 날씨에 귀를 기울이는.

둘러친 자연도 자연이지만 그 자연과 생활이 아주 밀착된.

서울에 살 적 바로 옆집에서 건너오던 소리를

이곳에서는 나뭇가지 부러지는, 눈이 툭 떨어지는, 새가 우짖는,

숲을 지나는 고라니의 발자국소리로 듣는다.

눈은, 낮에 볕에 좀 녹기를 기다렸다

4시께 나가 아직 남은 달골 길 깔끄막의 눈을 쓸었다.

 

169계자 못다 썼던 기록을 이어가는 중.

아이들이 문을 드르륵 열고,

복도를 누군가 걸어오고,

바람이 흔드는 본관 창문 소리가 들린다.

아이들이 자꾸 불러 두리번거리기도.

아이들도 아이들이지만 샘들이 유난히 눈에 밟힌다.

합이 좋았다고들 했다.

아이들이 그토록 자유롭다 느끼려면 그것을 지켜주기 위해 어른들이 얼마나 움직였을 것인가.

특히 이런 불편하고 낡은 곳이라면 더욱.

휘령샘, 그가 일에서 좀 더 빠져 교감 일을 잘 수행했네.

하다샘이 그랬다지, 저희가 샘 손발 할 테니까 휘령샘은 전체를 보십사.

샘들은 모두 제 몫을 해냈네.

소리없이 온 마음으로 온 몸으로 움직이는 근영샘,

사력을 다했다 할 만했던 하다샘,

비로소 품앗이일꾼으로 안으로 훅 들어온 윤호샘,

묵직하고 따뜻하게 움직인 홍주샘,

새로 손을 보태되 익숙하게 더한 지인샘과 희지샘,

새끼일꾼 대표로 빗자루뿐 아니라 감자칼이며 행주도 놓지 않은 민교형님까지

잘 이룬 합()!

수학에서 그것은 여럿을 한데 모은 수이기도 하고,

헤겔의 변증법에서 논리 전개의 3단계 종합이기도 하며,

천문에서는 행성(行星)과 태양이 황경(黃經)을 같이하게 되는 상태를 그리 말하고,

칼이나 창으로 싸울 때, 칼이나 창이 서로 마주치는 횟수를 세는 단위.

아름다운 청년들이었다, 눈부신 젊은이들이었다!

오랜 꿈이기도 했다, 내가 밥을 하며 젊은 샘들을 받쳐주고,

언제든 빈자리라도 생기면 채울 수 있도록 예비역으로 존재하는.

이번 일정이 정말 그러하였네.

물꼬의 가치관을 담지한 

가장 힘을 주어야 할 해건지기와 손풀기와, 한데모임과 대동놀이 견본은 아직 내 힘에 기댈지라도

대개 샘들이 일정을 꾸려갔다.

그 뒤로 부모님들이 계셨지.

묵묵히 우리를 기다려주고,

밥상을 위해 넉넉하게 보내준 찬들이 있어 수월했다.

그 너머로 역시 날씨가 있었다. 하늘!

날이 더 푹했으면 싶었지만 차서 저수지에 안전하게 들어갈 수 있었고,

다닐 만큼만 눈이 쌓여 산오름을 보다 알차게 꾸릴 수 있었고(고생은 덜하고 고생 느낌은 큰?),

한파주의보에도 허공의 거친 바람과 달리 아래는 잠잠했던 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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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자판을 계속 누르다 퍼뜩 잠을 깬다.

더는 졸음을 이기기 힘들겠네. 시계는 2시를 넘고 있다.

내일 저녁부터 사흘의 밤 동안 부모님들께 계자 사후 통화를 하자 전하였다.

그전까지 기록을 다 올릴 수 있기를.

, 드르륵 모둠방 문을 여는 소리에 또 돌아본다.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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