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친구가 과음했던 모양이다.

모두 호흡을 맞추느라 천천히 움직이다.

늦게 오면 대배 안 할 줄 알고...”

제시간에 버스에 못 타는 한이 있어도 절은 하고 가셔야지!”

농에 농이다.

할 만하니 또 하는 수행이겠다.

수행방에서 해건지기 먼저.

특히 대배를 할 때 오늘은 천천히 하며 제 몸의 반응에 집중해보기로.

몸의 약한 부분부터 반응할 테고, 그곳을 알아차리고 바라보는 건 또한 치유이기도 하니.

몸풀기와 대배 백배와 호흡 명상을 마치고 나눔을 하는데, 이심전심이라,

늘 신비하다. 같이 수행을 하면 그 결이 서로를 엮는다.

(깔개의 길이가 짧아 대배를 할 때면 키 큰 이들이 불편하였기,

올해는 장만해보겠다 했는데... 우선 물꼬에 있는 것부터 확인해보고!)

 

전복죽이 있는 아침 밥상.

전복이 헤엄쳐간 죽 말고 전복이 우걱우걱 씹히는 죽, 하하.

내장을 넣으면 색의 윤기는 덜하나 그것까지 넣으면 좋다 하기 그렇게.

이렇게 여럿이 넉넉하게 먹게 쉬 준비하는 재료는 아닐.

달 초던가 커다란 전복이 한가득 와서 손질해서 오늘을 위해 얼려놓았던.

싹싹 먹었다.

이번 일정은 끼니마다 그랬기도.

하기야 물꼬의 많은 일정이 그렇기도 하네.

굶는 사람 없다는 시대지만 밥보다 더 중한 게 있겠는지.

 

엊그제 러시아가 침공한 우크라이나 사태에 아주 작게라도 우리도 뭔가를 해야 했다.

손팻말이라도 만들고, 들고 찍은 사진을 sns에 공유도 하기로.

이번 일정의 공동창작 세 번째 시간도 되었다.

간단하게 하라고 안내하고

낮밥을 준비하고 제법 기다렸는데도 소식들이 없었다.

2시가 넘어 서울길에 오르면 서울 가까이 가서 막히는 길로 고생들을 하던데.

아쿠, 진행자의 마음이 바빠서는...

모둠방에 좇아가보니 손들이 더디다.

너덜너덜한 전쟁의 참상을 상징하느라 종이테이프를 찢어 글자를 만드는 중이었다.

그냥 슥슥 하면 되지, 하며 굵은 펜을 들고 바삐 글자 한 자 칠하는데,

인교샘과 하다샘이 말렸다.

아차! 부족한 헤아림이라, 섬세하지 못한 살핌이라. 아이들의 작품에 제 뜻대로 손대는 어른 같이...

얼른 마무리에 손을 보태다.

우크라이나 국기인 하늘색과 노랑색 바탕에

‘NO WAR in UKRAINE / 우리는 전쟁을 반대합니다. 우크라이나에 평화를!’이 적힌 팻말을 들고

운동장에서 사진 찰칵!

수전 손택의 <타인의 고통>을 생각했다.

전쟁으로부터 멀리 서서 우리도 영상을 통해 그것을 소비하고 있는 것에 불과한 건 아닌지.

그가 말했다, 먼저 이 세계를 거짓된 이미지를 통해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보자고,

제 아무리 이 세계를 변화시키려는 행동이더라도 세계를 재현하는 이미지의 방식 자체를 문제삼아 보자고,

이미지를 통해서 본 재현된 현실과 실제 현실의 참담한 사이에 얼마나 큰 거리가 있는지 똑바로 보라고.

타인의 고통을 염려한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그것만으로는 분명 부족하다.

우리 같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찾기로!

 

낮밥.

토스터에 굽기도 하고 달걀을 입혀 후라이팬에 굽기도 하고,

빵을 중심으로 귤잼과 샐러드와 커피와 주스와...

이 빵은 지인샘이 마련해준...”

품앗이샘인 지인샘이 일반참가자로 등록비를 더 보내왔던.

환불계좌를 알려달라 하자 이미 자신의 손을 떠난 것이니 물꼬에서 잘 쓰십사 하던가.

그래서 오늘 낮밥을 그의 이름으로 먹었더라지.

재훈샘과 윤호샘은 사람들의 가방을 가지러 달골을 다녀왔더라.

 

건호는 건조하면 갈라지는 발꿈치로 고생인데 돌아가면 좀 나으려나.

알러지도 있어 공기가 바뀌는 이곳에 오면 으레 호흡기 앓이를 하던데,

인교샘도 목이 매캐하다고 마스크를 여몄다.

가벼운 감기 기운으로 지나야 할 텐데.

지인샘은 새로 준비하려는 수험생활에 힘을 좀 얻으셨는가.

윤호샘은 5월 입영이라지.

...

 

밤새 옅은 진눈깨비 날렸다.

물꼬의 날씨는 어른의 학교에도 여전히 고마웠다.

개인적으로는, 사람이 아프면 여리고 작은 것에 더욱 관심이 가는데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도 예민하게 바라보는 시간이 된.

고마웠다, 모두들.

우리 아프지 맙시다려.

 

부엌을 여며놓고 햇발동 뒷정리를 하고 사이집을 둘러보고

일주일 합숙을 위해 대처로 나서다.

아들과 함께 쓰는 책 하나가 진척이 없는. 이제 한 주를 남긴 마감이라.

마감해야 새 학년도 준비와 함께 다음 책 집필이 순조로울.

말이 합숙이지 아들은 병원실습을 하는 가운데 밤마다,

나 역시 다른 일정을 진행하며 밤에 할 작업.

영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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