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을 싼다.
길을 떠나지 않아도 가방 하나의 무게로 살자 하는데,
언제나 단촐하지 못하다.
나이 들며 가난해지는 기억의 나라처럼 가진 것도 그럴 수 있기로.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그것이 물꼬 안에서의 모토이기만 하겠는가.
누가 와도 바로 쓸 수 있도록,
이불을 빠는 것 말고는 주인장이 굳이 돌아보지 않아도 되도록 돌아보기.
살면서 내가 가장 많이 하는 일이 청소 아닐까 싶다.
마을의 형님이 얼린 고로쇠 수액 두 통과 스티로폼 상자를 올려주었다.
바다로 가서 낚았던 열기며 생선들을 거기 담아
택배로 보내거나 실어가거나 하라는.
그 편에 고로쇠 채취 도구도 나눠주시다.
한 벌만 있으면 되겠다 했는데 두 벌이나.
그런 걸 다 기억하는 형님.
오가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 것을.
마을 엄마들이(죄 일흔도 넘으신) 국수를 먹자고 불렀다.
온 마을을 다 쳐도 객이라고는 달랑 혼자여
하하, 마을 사랑을 다 받고 간다.
둘러앉아 쪽파도 다듬고, 우리들은 노래 한 자락도 하고.
이런 순간들이면 꼭 스미는 생각; 사는 일이 무에 별 게 있을까, 이런 게 재미다 싶은.
낮 4시가 넘어 외설악으로 떠나오다.
설악산으로 물꼬 인연 두엇 들어오다.
물꼬의 오랜 시간은 전국 어디를 가나 함께 일한 동료들을 남겼다.
낙산사 아래 바닷가에서 밥 한끼를 하고 걸었다.
산도 좋지만 바다도 좋다.
양양 속초의 큰 매력이 바로 그것일. 산도 있고 바다도 있고.
이번 길의 큰 수확은 설악산에 깃들 때마다 베이스캠프로 삼을 만한 곳을 점찍은 것.
대청봉 아래 오목골, 거기 빈집 하나 있다.
상황이 어찌 될지야 더 두고 보아야 할 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