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4.18.달날. 흐린 오후

조회 수 423 추천 수 0 2022.05.16 10:09:57


집은 물이 없어서도 낡아갔다.

물이 없으니 물 쓸 일이 없고

생활에서 물을 쓸 수 없다는 것은 일상이 이루어지기 힘들다는 것.

불을 때지 않은지도 오래되었다.

그건 겨울에 쓰지 않는다는 거였고, 잠을 자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그렇게 간장집이 비어있었다.

구들이 내려앉았을 때부터 달골로 사택 중심 살림을 옮기기도 했고,

겨울이라도 간장집 고추장집으로 모여서 자게 되면서

간장집은 사람 드나들 일이 거의 없었다.

먼지는 둘째치고 거미들이 자리를 차지했고,

거실 유리창도 깨져 있었다.

하지만 마당으로 바로 연결된 부엌은 달랐다.

사택 앞 남새밭에서 부지런히 채소를 길러 먹으니,

또 진돗개 제습이와 가습이에게 물을 주기 위해서도 수도를 썼다.

바로 그게 지난 한 해 내내 닫혀있었는데,

 

지나간 겨울도 아니고 거거년 겨울을 지나며

마을 본류 수도관 말고 옛 지류 수도관이 터졌고,

그것을 쓰는 학교 앞 두어 가구가 물난리였다.

고치는 과정에서 학교 사택 간장집만 물을 못 쓰게 되었다.

다른 사택인 된장집이 있었고

(고추장집이야 방으로만 썼는데 그마저도 전기가 문제 있어 요새는 닫아두었다)

학교에도 물이 있으니 아주 못 살 것은 아니었는데,

사람이 사는 데 물이 있어야지 않겠냐 서너 차례 말을 넣었지만

마을에서 자꾸 다른 일에 밀렸다.

 

드디어 저녁답에 굴착기가 들어왔다.

전문가는 아니고, 농기계를 임대해 마을 사람이 하기로.

허니 쉽지는 않을 테다.

너른 밭에서 연습하고 계신 걸 보았는데...

바깥수도만 나와도 되겠냐 물어왔는데,

안되지, 부엌 안이 나와야지, 겨울에 어찌 감당하라고!

 

5월 말까지 바깥 교육일정 하나 잡혔다.

풀이 무섭게 오르기 시작하는데, 바깥까지 오가자면 손발도 눈도 쉽지 않겠다.

교육청과 지난 3월 한 협의 건에 대해 6월까지 입장을 정리해야는데,

머리 안은 복잡한 속에 발 앞에 일들은 널렸다.

사람의 일이 늘 그리 흐르지.

시험 본다고 어디 시험만 보던가.

날이 간다. 생이 간다.

무정한 세상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는 어떤 처방을 각자가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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