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많았다. 낙엽들도 바람 따라 많았다. 날리는 쓰레기도 솔찮았다.
행정 일을 좀 챙기다.
면소재지에 보낼 것, 군청에 낼 것.
그리고 부모 하나가 보내온 메일을 여러 날 머금고 있다가
오늘 답을 했다.
아이들 일로 만나 이제는 어른들의 삶에 대해 말을 보태는 날이 적잖다.
더덕을 몇 캤다.
검지손가락보다 조금 굵은, 아니면 가늘거나.
흙 묻은 더덕을 처음 만났던 시간을 생각했다.
껍질을 칼로 깎았더라지, 칼집 넣고 찢듯이 벗긴 게 아니라.
요즘 그러듯 이것도 요리 책대로? 그러자.
그저 자연스레 부엌에서 해왔던 일이지 굳이 배울 일은 없었던 요리였다.
껍질을 벗기고 소금물에 절여 유연하게 만들고,
편 썰어서 밀대로 밀었다.
길이도 책에서 말하는 대로 따라해 본다. 적당히 말고 cm대로 말이다.
거기 고추장 양념 발라 석쇠로 구웠다, 가 아니라
그러자면 석쇠 꺼내, 달궈서 기름칠해, 괜히 번잡한 듯해
그냥 프라이팬에 구웠다.
마지막에 남은 양념을 한 번 더 칠해 훈김 쐬듯 살짝 기름에 구워내다.
옆 장에 탕평채도 사진도 보인다.
정작 청포묵이 없는데?
그럼 뭐 있는 것만.
미나리도 있고, 달걀지단에, 숙주 없으니 거두절미한 콩나물,
소고기야 물꼬 밥상에 오르기 드문 일이고,
채소들 다 썰어 데치고 소금 참기름으로 밑간하고,
대파와 마늘 다지고 간장 설탕 식초로 초간장 만들어 모두 섞은 뒤
버무린 재료만 건져서 넓은 접시에 담고
김을 찢어 고명으로 올리고 그 위에 황백 달걀지단을 올렸더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