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5.12.나무날. 살짝 구름

조회 수 314 추천 수 0 2022.06.16 23:55:33


좋다.

다저녁에 아침뜨락의 밥못 가 바위에 앉아 소리를 듣는다.

참나무 잎과 솔잎 사이를 헤집으며 골을 타고 내려오는 바람,

아래 계곡에서 들리는 돌돌거리는 물소리,

그리고 새들.

호오호록 휘이이리익, 저이는 휘파람새.

우리는 새 소리를 '울음'이라 하지만 휘파람새는 '웃음'이라 말해야만 할 만큼 경쾌하다.

호롱호롱찌리찌리찌리리링, 되지빠귀인가.

청딱다구리도 운다. 삐이삐이 삑삑삑.

개개비도 캐캐거린다. 개개개개개캐캐.

호랑지빠귀 울음은 잊힐 수가 없다.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밤의 귀신새.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자 목청이 더 높은 건 개구리다.

이 골짝 매서운 날들을 이기고 돌아온 어미 개구리가 낳았던 알들은

봄이 와도 여전히 겨울 같은 한기를 머금은 바람을 견디고 저렇게 태어나

살아있다 외친다.

저녁이 내리고 사물들은 경계가 희미해지지만 소리는 더욱 선명해진다.

, 좋다.

이런 것을 누리는 것에 견주면 멧골살이의 고단함이란 개미 허리에 불과하다.

 

보은취회에 몇 해 동행했다.

동학농민혁명은 그 결말이 서럽기도 하나

오늘에 우리를 일으키는 도저한 힘이 또한 거기 있다.

곳곳의 동학농민군의 자리마다 그 뜻을 오늘에 지키는 이들이 있다. 고맙다.

보은취회를 이어가는 달한샘과 올해의 움직임을 의논하다.

 

'물꼬에선 요새'의 지난 기록 하나를 여기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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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3.29.쇠날. 밤비 / 종로 전옥서 터 전봉준 동상

 

서울로 압송되던 전봉준이 앉아있다.

사진 속에서 나와 종로네거리에 앉아있다.

1894년 겨울의 그를 2019년 서울, 옛 전옥서 터에서 본다.

그의 굽은 등을 타고 흘러내린 비가 종로 바닥에 떨어진다.

그의 시선은 어디로 떨어지는가,

구걸을 위한 엎드린 자의 등에, 밥벌이를 끝낸 지친 발들에 전봉준의 눈이 가 있다.

 

1854년생.

키가 작아 다행이었다.

녹두장군 아니라 강낭콩장군이었으면 일제가 어찌 당해냈을까.

고부군수 조병갑의 모친상에 부조금을 못 거둬 곤장 맞았던 아버지만이 이유는 아니었다.

외세는 밀물처럼 밀려왔고

나라가 망한다 흉흉한 소문,

탐관오리 아닌 벼슬아치가 없었다.

1890년 서른여섯에 동학에 입문한 그였다.

 

전봉준의 이름은 남루한 옷으로 죽창을 든 동학군 모두의 이름이고

우리를 지키는 모든 아비들의 이름.

제국주의 아래 목숨을 걸었던 건 지키고 싶었던 것이 있어서였다.

아버지였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1년여 연인원 30만 명의 농민대중이 참여한

세계사에서도 유례가 없는 뛰어난 사상적 운동·투쟁이라 했다.

 

우금치전투 다음 금성산성 전투가 최후의 격전지였다.

담양 광주 장수 순창의 1천여 명의 동학농민들이

20여 일간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벌이다 일군에 흩어졌다.

그 선봉에 있었던 전봉준은 옛 친구의 밀고로

1984122일 순창에서 관군에 잡힌다.

 

124일 경성으로 압송된 전봉준에게

26일 일본군 사령관 미나미가 묻는다,

백성을 선동하고 난을 도모한 이유가 무엇이냐고.

네가 경성에 쳐들어온 후 도대체 누구를 추대할 생각이었느냐.

병을 물러나게 한 뒤 부패한 관리를 쫓아내어 임금의 곁을 깨끗이 한 연후에 몇 사람 주석柱石의 선배를 내세워 

정치를 하게 하고, 우리들은 곧장 시골로 돌아가 상직인 농업에 종사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국사를 들어 한 사람의 

세력가에게 맡기는 것은 그 폐해가 크다는 것을 알기에 몇 사람의 명사들이 합의한 법에 의해 정치를 담담하게 할 생각이었다.”

서구의 입헌군주제를 일찌기 그는 어찌 알았을까.

당시 유교사회의 민본주의 이념과 부패한 정치현실에 대한 깊은 성찰 뒤의 결론이었다.

전봉준 장군의 통치체제구상의 핵심은, 지방은(실제 동학혁명 당시 전라도에서 광범하게 시행된 것과 같은) ‘집강소’ 

체제에 의한 철저한 자치, 그리고 중앙은 합의정치에 의한 독재의 배제였다.’(녹색평론 김종철)

처절하게 투쟁해본, 그리고 자치와 합의의 정치를 실험해 본 뒤의 예지였다.

 

19844월 날리던 벚꽃 사이로 전봉준이 그제야 훨훨 자유로운 나라로 떠났다.

한반도 최초의 근대 교수형이었다.

세상에는 깨뜨리려 했던 낡은 질서의 파편들이 다시 붙고 있었다.

 

그 전봉준이 다시 돌아와 종로에서 눈 시퍼렇게 뜨고 앉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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