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5.31.불날. 맑음

조회 수 109 추천 수 0 2022.06.25 02:20:08


완벽한 날!

 

물꼬 부엌에 조리사 자격증을 붙여놓을 일이 생겼더랬다.

물꼬의 많은 일이 그렇듯 결국 내가(혹은 우리가) 하고 말지!”로 정리했다.

그래서 가장 만만한(아는 거라고 그거라서) 한식조리사 자격증으로 결정,

그걸 갖추기 위해 정보를 수집.

어라, 칼질 좀 하고 오래 밥해 먹었으니 어려울 게 무에 있을까 했는데

필기시험부터 보고 실기시험을 봐야 한다고.

그런 필기라는 게 운전면허 필기시험 같은 거라 기출문제 열심히 풀고 가면 된다 들었다.

쉽지만 안하면 떨어지는 거.

해서 이틀 준비했고, , 이틀로 되는 게 아니란 걸 그제야 알았지만

시험 전 남은 시간이라고 이틀이었으니...

요새 그런 시험이란 게 다 CBT(computer besed testing) 기반이라

컴퓨터로 보는 시험이란 게 더 걱정이었다.

거의 컴맹 수준에 가까운 관계로.

하지만 그런 초보자를 위해서도 국가시험은 얼마나 친절한지.

걱정할 게 아무것도 없었다. 시간을 들여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다음을 클릭하시오, 하면 다음을 누르고, 그 다음을 누르고.

그런데 젊은 친구들은 답답했던가 따다다다다다 누르는 소리들이 넘쳐났다.

드디어 시험을 봤다.

세상에 태어나 그렇게 모르는 문제가 많은 시험지는 처음 보았다.

잔뜩 긴장하며 시험지 제출 버튼을 마지막으로 클릭했다.

바로 결과가 나온다고 했다.

, 으윽!

힘을 줘서 누른다고 불합격이 합격이 되는 것도 아닌데,

도시를 나가서 다시 이 시험을 봐야 하는 건 아닌가 시간을 셈해가며 눌렀는데,

 

합격이었다. 합격선에서 여유롭게 몇 개 더 맞췄다.

누가 귀뜸을 했다. 다음 날 실기시험 응시접수라고,

모든 절차를 다 밟아놓고 딱 클릭할 수 있도록 10시에 대기해서 바로 눌러야 한다고,

응시자가 많이 밀려 접수하는 데만도 몇 달씩 걸릴 수 있다고.

접수했다.

도시에 있었던 날이라 다행이었는데,

이 멧골에서라면 더딘 인터넷으로 어림도 없었을 수도.

그렇게 오늘이 실기시험 보러가기로 한 날.

 

짧게 자는 잠인데, 넉넉하게 푹 잠도 잘 잤다. 완벽했다.

유튜브 영상을 찾아 복장 착용까지 숙지했다. 완벽했다.

준비물은 여러 날 하나씩 챙겼고, 간밤에 목록을 보고 가방을 싸놓았더랬다.

이른 아침 멧골을 나섰다.

시험장소에 주차불가라고 해서 좀 떨어진 곳의 공영주차장도 알아놓았다.

길지 않은 운전 거리라도 쉬었다 가는 길을 단숨에 갔다. 완벽했다.

 

그래도 혹시나 주차할 자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조리기구들이 담긴 무거운 가방을 들고 제법 걸어야 한다.

다행히 아주 이르게 닿았으므로 시험장 주차장으로 가서 자리가 없더라도

다시 돌아 내비게이션에 찍어놓은 주차장으로 가면 된다.

, 있다! 빈자리가 있었다. 차를 넣었다. 완벽했다.

차 안에서 한 시간 반을 조리영상을 보았다.

실기를 준비하면서도 봐오던 영상이었다.

유튜브가 그런 세계였다. 시험 준비 영상까지 즐비했다. 고마워라.

내 합격하면 거기 꼭 댓글을 달리라, 덕분에 합격했노라고.

 

입실 시간 30분전 대기실로 갔다.

필기를 보았던 곳이라 익숙했다.

이미 시험복장으로 앉아 조리책을 보고들 있었다.

옷을 어디서 갈아입느냐 물으니 이 안에서 입으면 된다고.

대기실 뒤에서 갈아입고 있는 이들이 보였다.

화장실로 가서 갈아입었다.

모자는 어디가 앞이지? 마침 곁에서 열심히 머리를 만지고 복장을 챙기는 이가 있었다.

그를 따라했다. 그가 앞치마 매는 것도 가르쳐주기도 했다, 왼쪽으로 매듭을 지으라고.

, 나는 양손잡이라 거치적거리니 앞으로 매듭을 지었다.

 

다시 대기실.

나 같은 이들이 한둘이 아닌 게지.

맨 앞자리에 앉았는데, 뒤에서 몇이 내게 모자 쓰는 거며 물었다.

이제는 아는사람이 되어 머리를 만져주고 핀을 꽂아주고...

그리고 초콜릿을 꺼냈다. 같이 합격하자면 서넛에게 돌렸다.

역시 안내하는 시간이 충분했고, 따라하면 되었다. 완벽했다.

 

시험실로 이동.

자기 번호 앞으로 갔다.

역시 아주 친절하게 안내를 해주었다. 아암, 국가시험인 걸, 하하.

시험지가 나왔다. 2가지 요리. 아니, 이리 쉬워도 되는 거야?

어려운 게 나와야 변별력이 있지, 이게 뭐람.

그런데 아, 쉬워서 소홀했던 바로 그 주제라니.

머리가 하얘졌다. 어떻게 했더라...

 

재료를 가지러 나오라고 했다.

어차피 다 개인 재료가 지급되는데 그리 빠르게 나갈 게 뭐람.

천천히 나가서 남은 한 쟁반을 가져왔다.

아차! 고르게 쭉 뻗은 채소 재료를 먼저들 가져가고 남은 게 삐뚤빼뚤.

사람들이 달려 나간 까닭이 있었던 거다.

시험 시작!

뒷자리에서 밀대 두드리는 소리가 넘어왔다.

아쿠, 저이가 다른 요리로 착각했구나.

시험 치면서 다른 이 요리를 왜 생각하냐구!

너무 쉬운 요리가 나오니 딴 생각이 더 들었네.

 

툭탁툭탁 하긴 하는데, 뭐가 어설펐다.

재료가 너무 넉넉한 거다, 실패해도 다시 만들 수 있을 만치.

이런! 지단을 두툼하게 부쳐야 하는데, 주로 다른 요리할 때처럼 납작하게 부쳤네.

혹시나 하고 남겨놓았던 달걀물에는 튼 수도로 물이 들어가버렸네.

, 거참...

그릇 바닥에 남은 달걀물을 기존 지단에 덧발라 어찌어찌 수습을 해본다.

평소 자 같이 자르던 길이도 어라 더 짧게 잘렸네.

에라, 모르겠다 일단 진행하자.

이미 화구를 쓴 작품에는 손을 대면 감점이라 들었다.

그러나 어쩌랴 길이가 들쭉날쭉, 과감히 칼로 잘랐다.

감독관은 왜 내 주위에서만 맴도나, 저리 가시라구요!

하지만 말은 못했다.

시험장 맨 앞 벽에 붙은 시간은 11분을 남겨놓고 있었다.

10분 남았음을 앞에서 공지도 했다.

시간 안에야 냈다.

설거지들을 하고 있는데, 앞에서 번호들을 불렀다.

“256, 앞으로 나오세요.”

열 명은 족히 될 듯했다.

, 고기가 익지 않아 실격된 이들의 이름이었다.

내 수험번호는 끝에서 두 번째였다.

불리지 않았다. 고마웠다. 그게 합격을 말하는 것도 아닌데.

전량 제출하는 거라 그나마 양으로 승부는 했다.

넘의 것들 보니까 양은 돋보이더라.

 

밖으로 나왔다. 괴로웠다. 오만했었다.

대충하면 될 줄 알았다. 오랜 시간 밥을 해왔으니 그거면 될 줄.

그러나 시험이란 그것이 요구하는 조건이란 게 있다.

툭탁툭탁 해내는 게 아니라

길이, 차례 이런 게 중요했던 게다. , 나는 (마구)’하고 있었던.

그런 불성실이 없었다.

감독관은 그것으로 밥을 벌어먹는 사람,

결코 허술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내놓은 작품들을 맛까지 봐가며 자도 들이대며 수검하고 있었댔지.

내 무성의에 너무 기가 막혀서 걸음이 내 걸음이 아니었다.

옷을 갈아입고 물부터 벌컥벌컥 마셨다.

빵집이 보였다. 크로와상을 두 개 샀다.

가끔 도시로 나가면 사 먹는 빵이다.

사람들이 물꼬로 들어올 때 뭐 사다 줄까요, 하면 입에 올리는 것이기도 하다.

한 건물 주차장 담벼락 그늘에 퍼질러 앉아 빵을 먹었다.

뭐 눈물 젖은 빵까지는 아니지만 아아아아아아, 위로의 빵이었다.

 

완벽한 날이었는데,

그 완벽은 실기 시험 시작 전까지만이었다.

붙여주면 좋겠다. 시험이라면 백점 맞고 싶어하지만,

이건 말이다, 딱 합격점수로만 붙었음 좋겠다.

에라이! 그러고도 요행까지 발하다니.

합격 시키면 안 된다. 발표는 2주 뒤라던가.

부디 딱 그 점수로 붙는 걸로...

하지만 나는 가방을 풀지 못했다. 다시 가야할 듯 하니까.

현진건의 운수좋은 날에 빗대 완벽한 날로 오늘을 쓰겠다.

 

그래도 삶은 계속되어서

달골에서 저녁답에 세 시간 물을 주고,

늦은 저녁에 들에서 돌아온 이웃 사람들에게 밥상을 차렸더라네.

완벽한 날이었다, 시험시간만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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