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를 온몸으로 느끼며 요새는 거기 생각이 깊이 머문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은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우리가 날씨다>(민음사).
이른 아침부터 블루베리 물을 주다.
물을 줄 곳이 날마다 는다. 가뭄은 먼 조선시대부터 흘러온 역사만 같다.
블루베리 둘레들 풀을 뽑아 치우지 않고 나무 아래를 덮어주었다, 몹시도 가문 날들이어.
한 나무의 열매가 유달리 쪼글쪼글 꼬실거렸다.
거기부터 적셨다.
곁의 두 그루도 그 못지는 않지만 역시 쪼글거린다.
다음은 그 나무들도 물호스를 옮겨간다.
준 물이 스미길 기다리며 다음 물을 줄 때까지 마른 가지들을 잘라주었다.
그곳에 가면 그곳의 일이 기다리는 멧골 삶이다.
달골 햇발동 앞에 있으니 또 이웃 경계 울타리 쪽이 어수선하다.
나무 가지를 좀 치고, 풀을 베거나 뽑거나 매고,
그러다 이웃에서 떨어진 대추로 여기저기 마구 난 어린 대추나무들을 베다 찔리기도 하고,
풀과의 전쟁에서 정말이지 선전하고 있다.
매 놓은 풀더미와 훤해진 공간을 보는 일은 제법 자랑스럽다.
맬 풀을 보면 한숨이 나오지만 나는 ‘맨’ 풀을 본다.
그러다 정히 안 될 땐 일어서서 팔을 활짝 펼치며 외친다, “아, 이 모두 나의 정원이라!”
물과의 전쟁에서도 나는 아직 지치지 않았다.
오후에 살펴보니 블루베리가 탱글탱글해졌다. 고마워라.
저녁에는 다섯 시부터 물을 주러 나갔다.
날마다 세 시간여 주는 물, 오늘은 한 시간을 더 줄 참이다.
아침뜨락의 꽃그늘길 위쪽 잔디도 드디어 물을 주었다.
이제 제 힘으로 자랄 수 있으리라 둔 잔디였다.
아고라 둘레 잔디들은 절반은 죽었지 싶은데,
그래도 생을 붙잡은 것들이 제 삶을 잊지 않고 기억하면서 한 마음을 껴안고 있을지도 몰라
물을 주고 또 주었다.
달못 둘레도 주었다. 제법 실하게 영역을 넓혀가 고맙기도.
하지만 못 안쪽 비탈의 잔디는 풀에 잡아먹히거나 가뭄에 말라있었다.
그래도 물을 준다. 그것 한 모금에 한 생명 살 수도 있으리라 하고.
물을 받아다 은행나무와 큰 광나무 넷에도 물을 준다.
이미 스러져간다 싶은 한 그루는 더욱 듬뿍 준다.
살아라, 살아라, 살자, 살자, 살아보자.
사이집 마당 잔디에도 물을 주었다. 흠뻑 주었다.
아침저녁 세 시간씩 혹은 더 많이 움직이는 사이 내 삶이 반짝거리고 있다.
출판사 편집부에서 1차 원고검토를 전해오기로.
그런데 그곳도 이번 주 인쇄 넘기는 책이 있어 일이 밀리나 보다.
한 주 뒤 통화하기로.
글이 참 그러그러해서 엄청 긴장하고 있었는데
맞는 매가 나중이라니 일단 턱 마음이 놓이는.
덕분에 보내놓고 쳐다도 보지 않던 글을 다시 좀 보기로 마음먹다.
어차피 세 차례는 출판사와 오고가며 수정 과정이 있기도 할 것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