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6. 3.쇠날. 맑음 / 그대에게

조회 수 420 추천 수 0 2022.06.25 02:22:54


물을 주어야 하는 곳들이 는다.

마른 날들 오래다.

비가 제대로 온 날이 먼 옛일 같다.

내일은 보은취회에 국과 차를 내기로 한 날.

시래기를 불리고 끓이고 다시 불렸다가 깨끗이 씻어

잘라 된장과 마늘과 청양고추에 버무려두었다.

내일 끓이기만 하면 될.

찻자리를 위해 다구들을 챙겼다.

서른을 맞을 자리로 준비키로 했는데, 스물이면 될 거라는 전갈이 왔다.

가마솥방에서 늘 쓰는 것에다 창고동 다실에 있는 것들 가운데서도 골라 담다.

 

부엌 일 잡은 김에 좀 더.

머윗대 장아찌를 담그다.

살짝 데쳐 물에 담가 아린 맛을 빼두었더랬다.

장아찌들을 먹고 남은 몇 가지 간장들을 죄 섞어 부어 끓여 끼얹다.

냉장고의 김치통들도 정리하는 날.

자리가 많은 김치는 작은 통으로 옮기고,

얼마 남지 않은 것들은 볶거나 찌다.

 

 

불안(혹은 그 비슷한)’을 말하는 청년의 마음을 살핀다.

띄엄띄엄 보내는 문자 몇에 하루해가 진다.

 

그대에게.

마음이란 속성이(사람이란 게) 원래 미친년 널뛰듯 하는 거다!

마음의 평화 어쩌구 하는 게 가장 팔리는 품목인 까닭 아니겠는지.

불안은, 진단이 그게 맞다면, 원인이 있다.

내 실수 하나가 내가 쌓아온 삶을 다 망가뜨릴 거라든지 하는.

자기 자신만은 그 까닭을 찾을 수 있다.

내 오랜 불안 하나도 있었다.

그것으로 내 삶의 무수한 관계가 그것으로 깨지기도 했다.

가족을 이루고서(남편을 만나고 아이가 태어나고/ 핏줄은 끊어지지 않으니) 나아지기도 했고,

내가 나를 버리지 않으면 된다 혹은 나만이 나를 버릴 수 있다는 깨달음이 나를 구원했다.

그 밖에도 내 불안은 여럿이다. 자본주의가 현대인의 불안을 먹고 자라니까.

그럴 때마다 정신을 차리고, 생각한다. 정리를 해둔다.

잊기도 하고, 다시 불안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나아진다.

 

그대 삶은 오직 그대의 것. 다른 이와 견줄 필요 없어.

그딴 거 다 소용없더라.

나는 그대가 무엇을 하건 마음이 진정 평화롭기를 오직 바란다

(뭐를 가져서, 뭐가 되어서가 아니라 그런 것 없이도).

내 마음이 지옥이면 다른 게 다 무슨 소용인가.

 

꽃이 폈다.

바깥에 좋은 것 많다.

나가 놀아라.

네 생각 바깥으로 나가 놀아라.

 

때로 멈춰서 가만히 앉아 생각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건강하게 움직이길. 공부(무엇이건)해라.

하면서 힘을 내자, 나는 그렇게 견디는 것도 많았다.

 

나는 내가 지켜야 할 이들 때문에도 산다.

우리 아이들이 마음이 아플 때, 아들이 나를 필요로 할 때,

벗이 찾을 때, 어려움에 처한 이가 마음 붙일 곳을 찾을 때,

이곳에서의 애씀이 멀리 있는 누군가 단 하나에게라도 힘일 것을 믿는다.

생이 허망하다. 그래서 아무것도 안 하는 이도 있지만,

그래서(허망하므로) 나는 뭔가 하는 쪽을 택한다.

종국에 나는 내가 살려고 산다. 내가 살려고 열심히 움직인다, 다른 이들이 뭐라 건.

 

욕도 칭찬도 그들이 하고 싶어한다. 결국 진짜 내 삶과는 상관없는 거지.

그대가 좀 착하더라. 그래서 자꾸 다른 사람들이 신경이 쓰일 수도.

 

타인(아비 어미도)말고 그대를 위해 살아,

세상에 나쁜 영향이나 주지말고(너무 소극적 행복인가?).

물질로 흡족한 거 그거 끝없다.

자그마하고 사소한 것도 삶을 거대하게 채운다. 그 기쁨을 아시라.

 

그대 좋은 면 많다. 그거 자신이 알아줘라.

그대 사느라 애쓴다. 그거 자신이 격려해줘라.

그대 괜찮은 사람이다(오만 말고!). 그대를 안아줘라. 결국 자신만이 자신을 구한다!

 

깊이 사랑하는 이들이 곁에 있다. 부디 그 관계를 해치지 말고, 기대며 가시라.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6034 2007. 3.24.흙날. 비오다 갬 옥영경 2007-04-09 1443
6033 108 계자 열 나흗날, 2006.1.15.해날. 달빛 고운 밤 옥영경 2006-01-19 1443
6032 2008. 5.18.해날. 비, 저녁에 굵어지다 옥영경 2008-05-31 1442
6031 2007. 6.18.달날. 맑음 옥영경 2007-06-28 1442
6030 7월 1일, 오늘은 무엇으로 고마웠는가 옥영경 2004-07-13 1442
6029 2011. 3.16.물날. 꽃샘 이틀 옥영경 2011-04-02 1441
6028 2008.11. 5.물날. 맑음 옥영경 2008-11-14 1441
6027 125 계자 여는 날, 2008. 7.27.해날. 맑음 옥영경 2008-08-01 1441
6026 2007. 9. 7.쇠날. 갰다가 비 / 가지산 1,240m 옥영경 2007-09-23 1441
6025 2005.10.25.불날.흐림 / 늦은 1차 서류들 옥영경 2005-10-26 1439
6024 4월 8일 쇠날 뿌옇게 밝네요 옥영경 2005-04-15 1438
6023 129 계자 닷샛날, 2009. 1. 8.나무날. 맑음 옥영경 2009-01-23 1437
6022 2007.10.29.달날. 세상 바람이 시작되는 대해리 옥영경 2007-11-09 1437
6021 2006.5.20-21. 흙-달날 / 밥알모임 옥영경 2006-05-25 1437
6020 2006.5.19.쇠날 / 110 계자, 못다 한 갈무리 옥영경 2006-05-25 1437
6019 128 계자 사흗날, 2008.12.30.불날. 눈 옥영경 2009-01-07 1436
6018 2006.4.20.나무날. 싸락눈 옥영경 2006-04-26 1436
6017 [바르셀로나 통신 5] 2018. 4. 3.불날. 맑음 옥영경 2018-04-06 1435
6016 2005.11.3.나무날.맑음 / 저수지 청소 옥영경 2005-11-04 1435
6015 3월 16일 물날 안개 자욱하다 기어이 비 옥영경 2005-03-17 1435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