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2.13.불날.맑음 / 노천가마

조회 수 1270 추천 수 0 2005.12.16 19:49:00

2005.12.13.불날.맑음 / 노천가마

농사짓는 이들에게 거름 져내는 대보름 전까지는 한갓지지요.
그래서 섣달부터 시작된 마을굿도 대보름 큰 굿으로 갈무리가 되었을 겝니다.
눈보라치는 섣달 콩강개 묻힌 아랫목 대신 난롯가에서
도란거리며 작은 잔치를 준비하는 이즘이랍니다.
아이들이 짧은 연극을 하나 마련하고 있지요.
배운 영어로 한다 합니다.
오늘은 아침부터 자기 역에 맞는 옷을 찾느라 옷방을 들쑤셔놓았습니다.
그런 과정을 들여다보는 일은 참말 재미납니다.
이 옷은 왜 적절치 않은지, 왜 그런 옷을 찾고 있는지,
떠는 수다를 듣고 있으면 마치 날 좋은 한 낮 수런거리는 뒤란을 걷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지요.
소품 준비도 한창입니다.
고무장갑도 오고, 머리띠도 나오고...

'불이랑'에서 빚었던 것들을 굽기로 한 날입니다.
어째 이리 바람 찬 날 삽을 들고 나섰는지,
그래도 해가 가기 전 마무리 하고프다니 기특합니다.
얼은 땅을 깨기 위해 곡괭이도 나왔지요.
구덩이를 판 뒤 왕겨와 짚을 바닥에 깔고 벽에도 세웁니다.
땅 위로는 둥글게 벽돌로 돌려가며 바람벽을 만들었지요.
작품을 한 줄 깔고 다시 왕겨와 짚, 다시 작품,
마지막으로 짚에다 왕겨를 담뿍 덮었습니다, 벽돌 끝까지.
한켠에 불을 댕겼지요.
아무래도 불안하여 네 방향에서 같이 시도했습니다.
"또 실패야?"
숱한 실패의 시간이 겹쳐지며 또 그 소리 해얄까 걱정도 되었겠지요.
마당을 오갈 때마다 조심스레 넘겨다보았습니다, 혹여 꺼지기라도 했을까.
기분 좋은 냄새를 내며 물에 젖어드는 헝겊처럼
조금씩 아주 조금씩 왕겨가 타들어가고 있습디다.
사흘 밤낮을 탄다 하였으나
우리는 워낙에 자그맣게 만들었으니 하룻밤이면 족할 테지요.

'국화'시간엔 코스모스를 연습한 다음
잔칫날을 위해, 한 해를 도운 손길들을 위해, 그림을 그렸답니다.
카드에 붙이려지요.

섣달,
화해하는 시간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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