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6.15.물날. 비

조회 수 352 추천 수 0 2022.07.09 23:28:40


, 흐린 하늘이 잠시 걷히고 먹구름이 한곳으로 바람 따라 가더니

물에서 밀어내듯 달이 올랐다.

구한말도 더 전에 본 것 같은. 요새 날이 계속 그랬다.

반가운 한편 조금 기이한 느낌까지.

엊그제 보름이었는데, 아직 기울지 않은 듯한 둥근달이었다.

선물이었다.

그렇게 마음도 걷히는 날이 있기 마련. 살면 된다. 살아있으면 된다.

 

오늘도 비, 오늘도 감사.

꽃과 나무에 물을 주지 않아도 되는 오늘.

한 해 한 차례는 가는 곳인데, 그마저도 지난 두어 해는 통 가지 못했다.

읍내 나갈 걸음에 젓갈 가게 가다.

김치며 반찬들을 만들어도 파는데,

엄마 혼자 하던 일이 이제 딸들이며 아들이며 가족기업이 되어 있었다.

인사를 나누고 있는 사이 손님 하나 들어와

지난 번 사 간 파김치가 왜 그리 질기냐 툴툴거렸다.

올해가 그렇단다. 가물기도 가물었으니까.

, 우리 파김치도 잘못 담갔다기보다 그 까닭이었겠다 생각했다.

그러니 이 비가 얼마나 감사할 거나.

, 젓갈가게 형님은 오늘도 손두부를 손에 들려주셨네.

그나마 당신이 하는 물꼬 돕기라는. 감사!

 

부레옥잠이 드디어 왔다!

해마다 늦봄이면 물상추와 부레옥잠을 사서 못에 넣는다.

겨울나기를 시도해보았지만 번번이 실패했고,

이제 해마다 사는 것으로 정리.

대여섯 만 들여놓아도 금세 세를 불러 못을 다 채우는 그들이라.

그런데 올 봄에는 지나며 몇 곳의 꽃집을 들여다봐도 구할 수가 없었네.

오늘 한 댁에 들렀는데, 어항에 부레옥잠 대여섯 있는 거라.

반가워라 하니, 하나 만 주어도 되련만 했는데,

어라, 다 가져가라 한다.

자꾸 시들시들하다고.

그렇다, 그네는 볕 짱짱한 데서 자라야 한다.

찾던 것을 그리 구하니 좋기도 좋아라지.

이런 것도 일상의 기적이라 부른다, 나는.

학교 못 한 곳에 넣다.

다른 한 곳은 물상추를 넣을 것이다.

구해지겠지.

 

나를 웃게 하는 사람, 오늘은 벗을 그리 부르기로 한다. 저 혼자 말이지.

기락샘은 내 벗에게 늘 그런다, 친구 잘못 만나 고생이 많다고.

물꼬의 일이 그렇지. 가방 풀고 숨 돌릴 겨를도 없이 쏟아지는 일.

그걸 보고만 있지도 않고, 심지어 잘하는 그이라. 게다 찾아가면서까지.

그러니 그가 물꼬에 와 있는 시간이 얼마나 고단할 거나.

그래도 오는 그이다.

지난 십 수 해 가장 가까운 벗이었다.

올해도 연어의 날을 앞두고 한 주 정도 일찍 들오올 거라 한다.


- 네가 없을 때 나는 어떻게 살았을까.

  너는 이제 생의 소임을 다했다. 남은 생은 덤!

  사람 하나 살렸으면 우리 생의 제일 큰일 한 거 아니겠음?

  하지만 네가 나로 너무 고생하기를 바라지 않음! 오면 살살 손발 보태기!

- 이제 몸이 너무 고생할 수 없게 알아서 잘 안 움직여줌.

  지하고 싶은 것만 알아서 움직임,

  이제 내 몸인데 내 몸이 아니다.


우리 이제 그런 나이를 산다.


- 내가 아니라도 늘 무언가로 살았겠지.

  허나 그 무언가를 빼도 넌 잘 살았을 것이야.

  넌 그럴 수 있는 사람이야.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네.

- 내가 너무 들러붙어 무거울라. 내가 살 뺄게:)

- 난 널 업은 적이 없어 무게 변동 없음. 무거운 건 다 내 살임.


그래서 또 웃는 오늘이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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