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예보에는 소나기가 잡혔으나 연일 흐리기만 할 뿐.

 

달골 바위축대 위쪽 풀숲을 어제오늘 두어 시간 치고 있다.

칡넝쿨이 자두와 배나무를 다 감쌀 기세다.

회양목과 불두화도 휘감고 있다.

옮겨 심었던 샤스타데이지는 잡아먹어 흔적이 없다.

꽃을 보았더랬으니 그나마 고마운.

이 여름 그들 세상을 없앨 수는 없으나

기세를 한번 잡아놓으면 낫겠지 하고 칡넝쿨이며 풀들을 베고 있다.

 

왜 그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일단 풀을 벨 자리가 넓으면 으레 예취기가 동원돼야 한다고만 생각했다.

발목에 풀이 걸리고 있었다. 주로 장화를 신고 다니지만

어쩌다 운동화를 신은 이른 아침이면 이슬에 젖어버렸다.

호미로 매거나 손으로 뽑는 곳이 아니라면

더러 낫으로 베기도 했는데,

손으로 하는 예취기도 있고 밀고 가는 잔디깎기도 있으니

너른 지대는 그것들에 기대야만 한다고 생각.

그런데 그걸 다룰 수 없는 상황이면?

그러면 낫 아니겠는지!

오늘은 낫으로 사이집 오가는 길과 농기구 컨테이너 오가는 길을 쳐냈다.

밭을 맬 때 마냥 쪼그려 앉아.

날이 잘 들어야겠지.

낫날을 갈아본 적은 없네. 칼처럼 갈면 되겠구나.

사람이란 얼마나 관성으로 움직이기 쉬운가.

새로운 한 세상을 또 만난 것 같은.

내 손으로 살 방법을 찾아내는 일은 늘 벅차다.

해가 짱짱하지는 않으나 움직이면 바로 줄땀 흘렀고,

어제는 다리가 후덜거리더니 팔이 덜덜거리는 오늘이었네.

 

이맘 때 쏟아지는 여름채소는 밥상을 풍성하게 한다.

이제 두 뭉치 남은 아욱이다. 아욱된장국.

애호박볶음. 올해 처음 따온 호박이다.

고추도 따왔네. 쌈장과 갈치속젓과 밥상에 냈다.

열무를 다 패 내고 담갔던 김치, 그리고 조금 남겨 데친 열무나물.

오이를 무쳤고, 가지를 쪄서 무쳤다.

지난주 캐낸 포슬포슬한 감자를 당근 양파랑 졸였다.

담갔던 참외장아찌를 꺼내 총총 썰어 무쳤다.

마늘쫑장아찌와 고추지무침도 꺼내다.

말린 오징어귀가 남아있어 불려 졸였다.

쥐치포볶음도 있기 꺼내다.

12첩까지는 아니어도 12찬이었더라는, 하하.

 

계자 신청 무렵이면 인사가 잦다.

이제 봄가을로 하지는 않으니,

여름과 겨울(한 계절에 여러 차례 하지 않은지도 오래), 두 차례 그렇게 소식들을 묻는다.

그 사이 아이들도 계절을 업고 작은 변화들이 생겼다.

한번 보자, 어여 어여 오시라, 또 어느 지점에 그대들은 서 있는가?

여름계자는 네 자리를 남기고 있고,

오던 아이가 못 챙겼을까 두어 댁에 문자를 넣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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