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블로 네루다는 비로 시인이 되었다.

유년 시절 그는 남반구에 어마어마하게 쏟아지는 비를 보며 자랐다.

그곳에서 삶에 눈을 뜨고, 대지에 눈을 뜨고, 시에 눈을 뜨고, 비에 눈을 떴다 했다.

남반구에서처럼 이 멧골에 창대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이들이 속틀을 함께 짜던 첫날의 '큰모임'에서 보물찾기를 하자고 했더랬다.

보물을 찾으러 떠났다, 산으로; '저기 보물산!'

이 큰비에 무슨 목숨 걸 일이 있겠는가, 상황 보며 움직이리라 했다.

산은, 특별한 프로그램으로 진행하지 않아도

그곳을 드나나는 것만으로 어떤 것에도 견줄 수 없는 큰 배움의 공간.

그래서 늘 아이들과 산에 간다.

내가 산악인이면서도 굳이 숲길등산지도사가 된 까닭이기도.

 

05시 밥바라지의 김밥 준비.

06시 샘들이 김밥 쌀 때, 밥바라지는 아침밥 준비.

아이들을 위해 샘들이 싸주는 물꼬 김밥이라.

현택샘은 자취경험이 도움이 되더란다.

07시 아침밥을 먹다.

종일 꽉꽉 채워 비가 내린다는 예보.

우리는 산오름을 갈 모든 준비과정을 그대로 진행한다.

혹 학교 안에서 도시락을 먹게 되더라도.

아침에 일어나서 긴장으로 예민해져 있어서 이것저것 신경이 많이 쓰임.’(윤지샘의 하루재기 가운데서)

교감일을 휘령샘으로부터 이어받은 윤지샘의 무게가 컸더랬네.

 

, 그런데 길을 나서려는 우리에게 왜 하늘은 말짱한가 말이다.

이러니 일단 가봅시다 할 밖에.

07:20 복장 점검.

07:40 대해리발 헐목 버스정류장행.

가랑비 사이를 걷는다. 대해 골짝 들머리까지 2km.

맨 앞은 윤지샘이 예린 소윤과 나란히, 맨 뒤는 현택샘이 동원이랑,

그 사이에서 아이들 어른들이 빗속을 걷는다.

전체를 이끄는 자리라 또 학교 밖이라 이런저런 걱정이 많았던 윤지샘한테 일렀다.

아이들을 믿으시라! 괜찮아, 우리 잘 준비했고, 동료들이 있잖어. 그대들 뒤에 또 내가 있음!”

학교를 나오면 늘 놀았던 관계를 벗어나 새로이 같이 걷게 된 이들끼리 나누는 우정이 있다.

오늘 우리들의 걸음은 다음으로 가고 거기서 또 다음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08:30 마스크들을 쓰고 버스에 오르다.

버스를 다시 타고 온다면 또 필요할 것이라

마스크가 빙수교환권이라 하니 주머니에 아주 잘 챙겨 넣는 아이들.

08:45 물한계곡 주차장에서 내리다.

 

물한계곡 주차장 화장실 처마에들 서다.

비는 내리고, 멀리 산에 운무도 걸렸고,

우리는 더러 말없이 비를 보고 있었다.

, 우리 황룡사 절까지만 가보자.

비가 조금 주춤거릴 때 산으로 접근하다.

 

황룡사 직전 계곡 식당이 주차장으로 쓰는 천막 아래 이르니

비가 더 굵어졌다.

마치 우리가 갈 줄 알았다는 듯 다 수용하고도 남는 천막이라.

그래도 가보자는 이들과 당장 내려가자는 이들이 있다.

출렁다리까지는 가봅시다!”

그리고 다시 천막으로 일단 들어오자고.

마침 비가 또 주춤하였네.

 

황룡사 바로 지나 출렁다리.

아이들이 출렁댔다. 신났다. 비는 내리고, 다리 좌우 풍경도 좋고.

초등 교사 재경샘이 바로 아이들을 막았다.

, , 괜찮아요.”

아이들을 데리고 나섰는데 이 다리의 상황을 몰랐겠는가.

수십 차례 다닌 이 길이다.

계곡으로부터 그리 높지 않고, 다리는 튼튼했다.

늘 그런 시간을 허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늘만 그리 하라 했다.

빗속에 다리를 찾아온 아이들에게 다리가 줄만한 선물이려니 기대했다.

아이들이 신나게 꿀렁거렸다.

사실은 조마조마함도 있었음을 고백한다.

온 신경으로 만일을 대비해 모두를 최대한 주시한다.

물꼬는 늘 아이들이 줄거워 할 최고 수위까지,

그리고 안전선 마지막까지(그게 위험선 시작이기도 한) 가는 그 선을 찾는다.

그저 이렇게 모두가 다 올라서서 비 맞으며 같은 경치를 보고 눈 마주치고 소리내 웃는 상황에 매료됐음

살면서 도대체 언제 장대비를 맞으며 시간을 보내고 이 많은 사람들과 그 순간을 공유할 수 있을까

삶에 단 한번이라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값진 순간이었다.’(윤지샘)

 

다시 비를 피하던 천막으로 돌아온다.

오는 길에 다리 곁의 오동나무 열매가 보였다.

따서 아이들에게 보여주었다.

겨울 산오름이었다면 벌어진 절반을 물에 배로 띄워주었을 걸.

딸아이가 태어나면 심어 시집갈 때 가구를 짰다는 나무.

비는, 비는, 창대비 억수비로 내렸다.

재경샘이 작은 놀이를 제안해 아이들이 따라하기도.

이제 어떻게 할까요?”

그래도 산에 더 접근해보자는 씩씩한 정인이와 큰도윤. 군인들의 아들딸다움이랄까.

절대 반대한다는 몇.

일단 비가 거세졌으니 여기서 좀 피하고 봅시다.”

지윤샘이 추위와 졸음으로 한쪽에 앉았을 때 지윤샘과 같이 걸었던 은서는 

계속 가서 들여다봐주었다. 우정들이 그리 깊어가는.

모자가 없는 아이들에게 챙겨주는 걸 놓쳤다.  

볕 쨍쨍한 날만 모자 쓰는 걸 필수로 했던.

정작 비 내리는 길에서야말로 모자가 필수였다.

준비한 수건들로 아이들 머리를 열심히 닦아주었다.

윤수가 특히 추워했다. 추위가 빨리 오는 아이.

얼른 배낭에 준비한 옷을 꺼내 입혔다.

채원이며 춥다는 두엇에게 마른 수건을 둘러주기도 했다.

 

비로 흙이 패여 물길이 만들어진 곳이 있었다.

저기 낮달맞이 꽃이 보인다. 꽃잎을 따서 띄웠다.

아이들이 구경을 하기 시작하고, 저들도 따라하고, 비는 내리고...

아이들이 서서히 빗속으로 나갔다.

물 위에 둥둥 떠내려가는 꽃잎의 정취.

후룸라이드'란 놀이기구가 있다. 후룸(Flume)이라면 '좁은 수로'.

좁은 수로에 통나무 배 모양 열차가 오르내리는 놀이기구.

아이들은 당장 그걸 생각했던 것.

그 위로 비는 계속 내리고.

작은도윤이도 큰도윤이도 하나둘 저마다 나뭇잎을 띄우기도 하고

떠내려가는 잎들을 응원도 하고, 배 경주도 하고, ...

언제 우리 이리 빗속에 놀아볼 거나.

분위기는 그렇게 반전되었다.

 

여기까지라도 왔으니 초코파이도 먹자.

오이까지 먹는 건 몸이 너무 차겠지.

아이들이 춥겠다, 절집에 달려가 더운물을 구한다.

꿀도 얻다. 꿀차를 냈네.

몸들이 좀 데워졌는지, 다시 빗속에서 노는 아이들.

언제 이 아이들이 빗속에 저리 신날까, 눈물이 차올랐다.

비 내리면 안에 들어가는 거라고 아는 요새 아이들 아닌가.

이런 거 하려고 우리 이 빗속을 이리 걸었다.

 

놀만치 논 아이들.

샘들은 물한계곡주차장까지 갈 것 없이 자가용으로 아이들 수송키로 결정.

학교에 바삐 연락하여 대기하고 있는 밥바라지 2호기 윤실샘께 어묵국을 주문하고.

수송대가 움직인다; 윤지샘과 진주샘, 그리고 물꼬 차로.

샘들이 착착 수송계획을 짜고.

어린 남자 아이들과 채성 형님 먼저 태웠다. 씻길 어른도 하나 같이 있어야 하고

아이를 하나라도 더 태울 수 있으니.

윤진이도 태운다. 그는 윤실샘한테 씻는 걸 도와달라면 되겠고.

물꼬 차는 세 차례, 나머지 차가 두 차례 움직이다.

정우랑 큰도윤이 마지막까지 남아서, 다른 아이들을 먼저 실어 보냈다.

누구나 빨리 돌아가고 싶었을 텐데.

준형이를 운전석 옆자리에 태우고 호수를 안으라 했다.

그런데 오는 내내 준형이가 손 하나를 운전석 앞 선반(글로브 박스 위. 여길 뭐라고 부르나)에 대고 있었다.

짐작이 맞나 준형에게 확인했다, 왜 그러고 있냐고.

호수가 머리 찧을까 그런다고.

, 이 아이... 도대체 이 아이는 내 모자란 마음을 얼마나 더 건드릴 것인가.

준형이는 작은 발달장애가 있다. 도대체 무엇이 모자란다 말인가!

진주샘이 모바일폰을 내 차에 두고 떠나 초행에 어려웠을 것을

지리 선생의 감각으로 우와, 쉬 찾아왔더랬네.

비를 맞으면서 기분 좋은 경험을 공유할 수 있어서 좋았음.’(진주샘)

물꼬가 오늘 보물산의 정상이었더라.

날이 좋았다면 민주지산 꼭대기에서 무수히 날아오른 잠자리 떼를 보며 먹었을 물꼬김밥을

따순 어묵국과 함께들 먹었다.

 

오후에도 산에 올랐다. 오전과 다른 안에서 산오름.

안에서 산에 가는 방법들을 궁리하다.

우산 쓰고 달골 아침뜨락을 가는 걸로 대신해요,

꿈에서 가요,

옥상에 가요,

그러다 보드판을 만들어 그 정상을 산으로 하자고,

또 모둠방 바닥을 보드판으로 삼아 달력을 붙이고 그 정상에 산을 두기로.

앞은 큰도윤을 중심으로, 뒤는 현준을 중심으로.

재경샘과 한록샘이 아이들을 돕는다. 어른들이 더 고단할 것을.

이런 샘들이 다른 동료들을 또 얼마나 힘내게 하는지!

만든 보드게임을 가지고 산에 오르다 동우와 수범이 한바탕 하고,

새우싸움에 새우 소미가 등 터져 울기도.

 

때건지기.

저녁 밥상을 기다리며 아직도 뛰어다니는 아이들.

이들이 언제 비 맞은 고양이들이었던가.

지율이는 어제 밥상머리공연 이후 피아노 소리가 더욱 좋아졌다.

한록샘이 같이 어우러지다.

빅 나티의 정이라고 하자를 여러 번 쳤고, 한록샘이 같이 노래를 불러주기도.

한록샘은, (아이들 곁)어디나 있다.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보여주는 그이였다.

쓰러질까 걱정스러울 만치.

사건사고는 계속된다.

수범이와 인우가, 윤진이와 동원이가 대립했네.

한 덩어리씩 가마솥방에 불러와 현택샘이 수습.

알고 보면 다 이해가 되지.

서로의 상황을 들으며 제 느낌을 말하는 속에 서로 이해하고 사과한다.

찬찬히 그 과정을 잘 밟아주는 현택샘. 마치 그가 쓰는 인쇄 같은 글씨체처럼.

아이들이랑 연결되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음. 행복했음.

아이들이 낭만왕국을 꾸려서 각자 역할을 맡아서 같이 논 것.

아이가 되어 함께 놀면서 결속력이 느껴졌다.‘(진주샘)

저녁밥상에는 엄마 반찬 하얀 진미채와

부엌에서 갓한 김치부침개와 버섯볶음, 고구마순볶음이 올랐다.

그리고 여기서 직접 쑨 도토리묵까지.

 

마지막 밥상머리공연.

물꼬 아이돌 정인 소윤 은서의 춤공연이 있었다. 게스트로 태양이도 등장.

소윤이가 책방 앞 거울을 보며 혼자 동작을 연습하는 것도 보았더랬지.

아이돌 연습생이 따로 없었네.

그런데 동우며 어린 남자 애들이 태양이한테 지나치게 열광.

여자 아이들에 대한 시샘이었든 괜한 심술이었든 반감이었든 그저 열광이었든

엄청난 춤을 춰내고도 관객 반응에 그만 실망해버린 춤꾼들.

아이돌 대장 정인이는 저녁도 안 먹겠다고 욕실 쪽에서 속상해라 했고,

지율이며 친구들, 진주샘이며 샘들이 위로하고 달래주고.

우리 모두 인정에 대한 욕구가 있다.

그러나 자신을 다치게 하면서 인정을 바랄 것까지야.

밥은 밥이고 속상함은 속상함이다, 분리를 알려주었네.

일단 밥은 먹고!”

속상함을 더 키울 필요는 없으니까.

다행히 들어와 늦은 저녁밥을 챙겨 먹었더라.

그럴 때 마음을 다른 이들이 알아주는 것도 필요하다.

한편, 스스로 생각해보는 시간도 필요한.

혼자 그 감정을 빠져나올 수 있는 힘.

아이들은 아직 그런 게 없다고?

나는 가지 않았다. 외면했다. 혼자 그 시간을 나오라고, 타인으로 그 감정에서 헤어나지 말고.

늘 너무 잘하려 하고, 실제 잘하는 아이,

때로 아이로서 그런 행동들이 너무 무거울 듯하여 그걸 가끔 털어주려 한다.

어쩌면 툭툭 제 감정 다 꺼내는 예선이의 대척점인.

이 아이가 너무 의젓해서 아이로서 누릴 것들을 놓칠까 봐

더 아이스럽도록 하고프곤 하다.

잘하고 그만큼 인정을 받지 못했을 때 절망감도 그만큼 큰.

밤에야 곁에 서서 살짝 말해주었다.

그런 인정이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나 자신의 인정이 아닐까 싶다고.

그리고 혼자 그런 감정을 정돈할 수 있는 너이기에 가지 않았노라고.

나는 정인이의 다음에 대한 기대로 설렌다.

 

한데모임.

노래가 빠질 수 없지.

호수가 검은고양이 네로를 온 힘을 다해 불렀다.

마지막으로 현준이며 정인이, 태성 형님이 인터내셔널가를 가르쳐 달라고 했다,

지난 계자에서 불렀는데, 그걸 기억하고 익히고 싶다고들.

전세계 노동자들의 단결 노래인 만큼 힘이 있는 노래이니

같이 부르면 신이 나는.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여러 나라 사람들과 같이 불렀던 기억을 들려주었네.

다들 잠긴 목으로 한껏 불렀다.

안내자가 허공에 손가락으로 음을 짚으면 아이들이 그 음을 용케 찾아 불렀더라.

 

오늘 밥상머리공연에 대해 한 마디.

왜 그리 지나치게 태양에게 열광하며

정작 메인 공연자들에게 결과적으로 무례했는가를 물었다.

그리고 공연자들에게 미안함을 전하자

소윤이가 그제야 눈물이 맺혔다.

정인이 못잖게 속상했던 그였던. 속으로 주로 삼키는 그 아이인데.

은서도 눈시울 붉어지다.

열심히들 하고 얼마나 속이 상했을까.

 

안에서 얼마든지 많은 걸 할 수 있는데 우리 오늘 굳이 산을 향해 떠났습니다.”

모험을 찾아 떠난 산오름이었다. 다 오르지 못해도 접근해보았다.

어른들도 쉬 나서지 못할 여정이었다.

각자 찾은 보물을 물었다.

초코파이요, 팥빙수요, 출렁다리요, 꿀차요, (나 자신), 후룸라이드요, ...

비요!”

?”

비요!”

예선이다. (학교)으로 돌아가자고 가장 목청 올리며 툴툴거리던 아이.

첫날에도 책방에 책을 안 꽂았던 건 귀찮아서라고 말하던 아이.

이 아이의 이 솔직함을 사랑한다.

이 아이의 말 안들음을 사랑한다.

이 아이의 툴툴거림을 사랑한다.

그게 아이다. 힘들면 힘들다, 아프면 아프다, 싫으면 싫다는 말. 꾸미지 않은 말.

그런데, 그 아이가 비라고 대답했다, 재밌었다고 했다.

그런 반전이 또한 좋다.

다음에 예선이가 오면 이제 그 힘듦을 마음으로 어떻게 이겨내는지를 도와주리라.

툴툴거림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더 잘 표현하는 법에 대해서도 같이 얘기 나누리라.

한데모임 내내 일곱 살 윤진이가 큰도윤의 무릎을 베고 잠이 들었다.

큰도는 자신의 팔을 어째얄 줄 몰라 내내 들고서 조심하고 있었다.

, 이런 아이들은 누가 어떻게 키웠는가!

 

고래방에서 강강술래.

움직이기 귀찮으면 남아도 된다고. 비도 내리는 데 비를 건너가야 하니.

이런 강강술래는 첫 계자 이후 또 처음이었네.

계자 구성원 모두가 참여하는 대신 고단한 아이들이 장작놀이만 나오겠다고 한.

그렇게 또 특별한 170계자가 되었다.

그래도 열은 되어야지,

현준, 정인, 지율, 하늘, 큰도윤, 그리고 소연샘 현택샘 한록샘 지윤샘 윤지샘.

, 그래서 우리 할 수 있었다, 청어엮기!

일곱 살부터 내내 왔던 현준이도 자기가 직접 청어엮기를 한 건 처음이었다고.

보통은 가운데서 샘들이 보여주는 정도에 그쳐왔던.

소수만 참여했지만, 그 소수 모두가 즐거워 했어서 기뻤던 것 같다. 평소에도, 모두가 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지만

원하는 소수집단끼리 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한록샘)

모두 하는 것도 의미가 있고,

또 하고픈 이들만 하는 것은 그것대로 또 의미가 있을.

어떤 계자의 강강술래보다 멋지고 즐거웠나니.

 

장작놀이.

안에서 촛불잔치도 준비했으나

비가 조금 떨어지더라도 밖에다 해보자 한.

뭘 하지 않고 모닥불만 피워도 좋은 시간.

그런데 밖으로 나왔더니 밤하늘이 열렸다.

거기 달이, 너무나 뜻밖의 표정으로 뜬금없이 툭 튀어나온,

우리는 한동안 그 둥근달만 바라보았네.'

밤하늘이 너무 예뻐서 눈물 한 방울 나왔다. 정말 감동스러웠다...

달이 예쁘게 보이다가 다시 가려지는 것도. 장작놀이 보러 가라는 것 같았고,

들어가니까 비가 내리는 것도 정말 기적 같았다.(새끼일꾼 채성 형님)

내 인생에 가장 아름다운 달을 봤다. 눈으로 가득 담았다.

오늘 본 이 장면 덕분에 올해 힘내서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지윤샘)

역시나 물꼬의 하늘. 강강술래 하고나오니 미친 듯이 맑은 빛의 둥근달이 보이고 불이 꺼지자 구름이 달을 오랫동안 가림

들어가려하자 빗방울 떨어짐. 절묘한 타이밍에 소름. 이마저도 행복.’(윤지샘)

머리 위로 달이, 마당에서는 모닥불이, 무슨 사진 합성도 아니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풍경이었다.

오늘 빗속 일정을 소화한 아이들에게 하늘이 이만의 선물쯤을 주셨어야지 싶었던.

물꼬의 절묘한 날씨는 가끔 나를 오만하게 만들고는 한다니까.

이게 절대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다.

하늘도 못하는 일을 사람이 하고, 그 사람을 하늘이 돕는 물꼬라.

 

불 앞이 또 우리의 오늘 산오름에 대한 보상이 되어주었네.

옥샘, 오늘도 불쇼 보여주실 거예요?”

누가 들으면 입에 불을 넣고 뱉는 대단한 무슨 서커스인가 싶을 수도.

그저 잘 달아오른 장작을 막대기로 치는 것.

그러면 불싸라기 난다. 불꽃놀이처럼 저기 꼭대기까지.

바람이 불어 더 멀리멀리.

바람 있지만 날이 젖었으니 위험하지 않아 또 고마운.

형원이랑 원진이가 불에 흙을 뿌린다.

형원아, 내가 원진이가 그런 건 용서해도 자네가 그러는 건 용서 못하네.

형아가 그러면 아이들이 따라한다고!”

얼른 알아듣고 관둔다. 그저 한번 그래본 거다.

나는 그의 그런 장난끼가 또 좋다.

여느 계자와 달리 모닥불이 사그라들 때쯤 하는 모두의 갈무리를

이번 계자에서는 내일 하기로 한다. 그렇게 또 170계자의 특별함이 이어지고.

그리고 인디언놀이.

큰도윤 정인 수범이 마지막까지 뜨거운 전장에 있었던.

, 그런데 인디언놀이가 끝나고 들어서려는데 하늘 다시 닫히고

곧 비가 내렸다. 기적이었다. 밤새 창대비였다.

 

자정, 우리 모두 깨어있었다. 마지막 밤이잖은가.

812일로 날이 바뀌고 모두가 다 같이 복도에서

지율이 생일축하노래를 크게 부르고 한마음으로 축하해주었네.

 

모둠하루재기를 끝낸 아이들이 잠자리로 가고,

오늘밤도 머리맡에서 책을 읽어주고,

자정을 한참 넘겨서야 샘들 하루재기.

아이들 하고 함께 비 맞는 경험, 어렸을 때 이렇게 비를 맞는 경험을 했더라면 지금 어른의 내가 비에 더 마음이 

열렸을 텐데, 아이들이 부럽다.’(지윤샘)

내가 행복하고 신이 나야 말하지 않아도 아이들에게 그대로 전달이 되는 것 같다. 오늘 내가 행복했기에 모두가 

행복했으리라 믿어의심치 않는다.’(윤지샘)

아직 교직에 들어선 지 3년이 안 되어서 교사보다 학생의 입장에 더 공감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물꼬를 

함께하다보니 교사의 마인드가 커지고, 조심성이 커진자신의 모습을 봤다는 소연샘,

물꼬에 오지 않은 3년동안 복도에서 뛰지말라, 고함치지 마라, 조용히 해라, 이런 이야기에 익숙해져 있던 것 같다

특히, 오늘 경험이 특별한 경험이었던 것 같다. 비가 엄청 와도 엄청 어린 애기들까지 다함께 산행을 가는 것

흔들다리에서 다리를 흔드는 것, 일반적인 학교, 교실에서는 안전성을 위해 금지시키는 것들이기 때문에

흔들다리에서 다리를 엄청 흔들면서 행복해하던 표정이 아직도 눈에 선한 것 같다. 물론 공립교사이기 때문에 안정성을 

최우선 해야 하지만, 가끔씩은 물꼬를 떠올리며 자유롭고, 행복한 경험을 아이들에게 선사해주고 싶다.

 

긴급 상황 발생!

일찍 잠자리에 들었던 동원이가 깨 칭얼대더니 열이 나고 토했다.

코로나19 진단키트를 서둘러 챙겨왔다. 양성이었다. 01:10

마침 어제 한데모임에서 오늘부터 책방을 폐쇄키로 했다.

거기 격리시키기로. 오며가며 내가 밤새 들여다보기로.

계자 구성원 모두가 진단키트로 검사를 하고 음성판정을 받고 모였으나...

비상대책위원장 소연샘을 중심으로 내일의 움직임이 세밀하게 논의되다.

학교에서 지난 2년 내내 그런 상황에 놓였던 소연샘.

그대가 이러려고 왔나 보이.”

아침에 아이들이 눈을 뜨면 마스크 착용,

08시 운동장에 임시선별진료소를 만들고 모든 구성원 진단,

학교 안에 있는 진단키트로는 부족하니 그 전 07시에 윤지샘이 나가 넉넉하게 준비키로.

고래방을 양성자들 공간으로, 바깥해우소도 양성자들 쓰기,

밥도 따로 부엌 평상에서 보내기로.

책방은 중간지대, 음성이지만 증상이 있는 이들이 쓰기로.

일반적으로 학교에서는 양성 반응 즉시 부모에게 연락을 하고

아이를 데려가게 하는 게 지침이라지만

우리는 캠프라는 특수상황, 부모들이 먼 곳에 있고,

다행이랄까, 오늘이 마지막 밤. 새는 날이 마지막 날.

그렇다면 굳이 몇 시간 일찍 오게 하시거나 할 게 아니라

아침에 진단검사 결과와 함께 연락 넣기로.

그 밖에 동선을 그리고, 낼 움직임을 그리고,

오늘도 벌써 새벽이 밝아오고 있는데,

 

잠깐 눈을 붙이려 눕는데 몸이 덜덜 떨렸다.

계자 내내 모자라는 잠에다

아이들이 얼마나 고생들을 할까 싶어 안쓰러움으로 오늘은 태산이 누른다... 



* 글을 읽은 이들 가운데 비옷을 왜 입지 않느냐 물었다.

아이들과 비닐 비옷을 입고 여러 번 움직여보았으나

너무 거추장스러웠다. 덥고.

그래서 차라리 맞는 쪽을 택했다.

그리고 비를 맞아도 보고 싶었다. 아이들이 그렇게 노는 때 잘 없으니.

돌아와 보일러실에서 학교아저씨가 장작을 땠다. 아이들 몸을 데워주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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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70 2022. 8.15.달날. 흐리다 밤비 / ‘우리끼리 계자’ 사흗날 옥영경 2022-08-25 360
6069 2022. 8.14.해날. 갬 / ‘우리끼리 계자’ 이튿날 옥영경 2022-08-25 355
6068 2022. 8.13.흙날. 비 / ‘우리끼리 계자 5박6일’ 여는 날 옥영경 2022-08-24 310
6067 2022학년도 여름, 170계자(8.7~12) 갈무리글 옥영경 2022-08-24 429
6066 170계자 닫는 날, 2022. 8.12.쇠날. 맑음 옥영경 2022-08-24 425
» 170계자 닷샛날, 2022. 8.11.나무날. 흐림 / 저기 보물산! 옥영경 2022-08-23 489
6064 170계자 나흗날, 2022. 8.10.물날. 비 옥영경 2022-08-17 539
6063 170계자 사흗날, 2022. 8. 9.불날. 흐림. 간밤 도둑비 살포시 다녀가고 옥영경 2022-08-15 544
6062 170계자 이튿날, 2022. 8. 8.달날. 흐림 옥영경 2022-08-11 627
6061 170계자 여는 날, 2022. 8. 7.해날. 살짜기 흐린 오후 옥영경 2022-08-10 641
6060 2022. 8. 6.흙날. 맑음 / 170계자 샘들 미리모임 옥영경 2022-08-08 574
6059 2022. 8. 5.쇠날. 흐림 옥영경 2022-08-08 355
6058 2022. 8. 4.나무날. 흐림 / 공부는 못해도 착한 줄 알았다만 옥영경 2022-08-08 427
6057 2022. 8. 3.물날. 갬 옥영경 2022-08-08 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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