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의 빈들모임 여는 날.

햇발동에 어제부터 난방을 돌렸고,

학교 가마솥방과 책방에 난로를 피우다.

저녁 7시도 한참 넘어들 도착하였네.

버스로 올 이가 서울에서 오는 차편에 동승해 한 차로.

일찍 신청했던, 처음 빈들을 신청한 한 가정이 미처 챙기지 못한 일정으로 빠지고,

한 가정은 아이의 학교 행사로 다음 주에 방문을 신청,

다른 한 가정은 이번 주가 아닌 다음 주가 빈들인 줄 알고 넋 놓고 있다 놓쳐

역시 다음 주 방문을 물어왔네.

하여 익숙한 식구 셋이 들어오게 된.

완전 식구들 모임일세!”

아욱된장국이며 멧골에서 거둔 것들로 밥상을 차리다.

난로 위에서 고구마가 익어가는 내가 가마솥방을 채우고.

 

일정을 딱딱 그어야 할 모임도 아니게 되어

밥상 끝에 실타래로 넘어가

그간 지낸 자신의 삶들을 나누다.

물꼬에서의 모임은 요즘을 둘러싼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자리가 되는.

말하고 묻고 머리를 맞대고 답을 얻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다시 내일을 맞을 마음결을 골랐다.

그리고 곧 태어날 아이가 있어

외할머니와 이모와 아빠와 엄마가 모여

그를 맞는 의식을 치러는 듯한 흥겨운 잔치이기도 했달까.

잘 익은 군고구마를 밤참으로 먹고,

할 말이 너무 많아 말이 빨라져 마을 사람 죄 모이기라도 했는 양.

자정 가까워 달골 햇발동에 짐들을 풀었다.

 

좋은 일로 마음을 내도 그것이 잘 쓰이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럴 때 마음을 낸 이가 자신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걸로 오해하는 경우도 보았다.

주기로 했으면 주는 것, 주기로 했으나 받지 못하면 그냥 못 받는구나 할 것.

그것으로 상처 입을 일이 아니다.

올해 내는 책에 삽화를 그려주겠다는 재능기부자가 있었다.

그런데 이번 책은 매우 건조하게 만들어진다.

해서 삽화는 넣지 않기로 디자인팀에서 최종 결정.

대신 내년에 내는 책에 그려 달라고 부탁하라는 편집부의 전언.

내년 책이 자유학교 물꼬를 담는 책이니 그의 그림이 거기 더 어울릴.

더구나 사진이 담지 못하는 활달한 아이들의 표정 같은 건 그림이 더 좋을.

해서 오늘은 조금은(거절이라는 면에서) 어렵지만

또한 반가울(내년 책에 초대한다는 점에서) 메일 하나 한밤에 쓴다.

이번 책 관련 출판사 편집부의 최종 디자인 회의 결과가 왔습니다.

이번 책은 삽화 없이 매우 건조하게만들어집니다.

책 규격도 작게, 두께도 얇게.

해서 선생님 그림은 다음 기회에 작업을 같이 했으면 한다는.

 

옥선생님이 쓰시는 다음 책(내년)이 자유학교 물꼬 교육 이야기이잖아요.

지난 번 <다시 학교를 읽다>를 낼 때

사진으로 못 다 담는 물꼬의 표정들이 아쉬웠는데,

물꼬 책에 선생님 그림을 부탁하면 어떨까요?”

편집부 이야기입니다.

선생님께서 삽화 재능기부하신다는 의향이 유효하다면

저 역시 제 다음 책에서 꼭 함께 작업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뜻을 물었더라.

흔쾌히 그러마시는 답이 있었네.

숙제 하나 끝낸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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