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2.28.물날.맑음 / 할아버지의 봄맞이처럼

조회 수 1200 추천 수 0 2005.12.29 09:12:00

2005.12.28.물날.맑음 / 할아버지의 봄맞이처럼

까치소리에 늦은 아침을 엽니다.
이 산골에서 사는 즐거움 하나라지요.
오늘은 '할아버지의 봄날'이 유난히도 그리웠습니다.
우수 경칩 지나 봄이 동구 밖에 서성일 녘
할아버지는 벽장에서부터 먼지를 털어 뜰로 몰아내셨더이다.
회색 겨울을 빗자루에 같이 묻혀 내보내고는
문설주에 봄 시조 한 수 써 붙이셨지요.
당신께는 어쩜 한 해의 시작이
정월 초하루라기보다 그날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섣달 내내 앓았던 등과 어깨는 해넘이까지 애를 먹일 량인가 보더니
오전에는 쉬겠다고 누웠는데 또 살만해지데요.
아주 느리게 꼼지락거리며 방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부엌에 앉은 그을음도 닦았습니다.
때가 어찌나 묵었던 지요.
나절가웃을 할아버지의 봄맞이를 더듬으며 보냈더랍니다.
당신도 우울까지 털어내셨던 걸까요?

문구류 곳간(교무실 앞 복도)은 계자 준비로 뒤집어졌습니다.
교무실에 널려있던 것들 제자리에 들여놓으며 대청소를 하고,
곳간에 물건들을 다시 정리하며 무엇이 있고 없는지를 살폈지요.
아이들이 또 올 겁니다, 이 겨울을 살리러 올 겝니다.
참말 재미난 날들일 테지요.
오후에 이번 계자에 온다는 정근이네 엄마의 전화를 받았더이다.
자그맣고 네모진 얼굴, 직모이던 그 아이의 머리카락...
막, 마악, 아이들이 보고 싶었고,
시금치 먹은 뽀빠이마냥 몸에 힘이 들어갔습니다,
바람이 서서히 들어가는 풍선처럼.
봄날 피어오르는 아지랑이같이 아이들이 자꾸 어른거립디다...

이 추위에도 달골 공사 현장에선 일을 좀 더 하겠다합니다,
따듯해질 때로 미뤄자 했건만.
어제 오늘 갤러리 쪽 지붕 일을 목수들이 하고 있지요.
좋은 날들 다 놔두고...

서울나들이에서 식구들이 돌아왔습니다.
융숭한 대접,
이럴 때 쓰는 말인가 봅디다.
북악 하늘길도 가고 평창동 뒷산도 오르고 인사동에, 경복궁도 거닐었다지요.
종훈이랑 류옥하다는 대학로 학전블루에서
폴커 루드비히 원작의 연극 <우리는 친구다>를 보았다합니다.
사고팠던 책과 CD도 껴안고 돌아왔습디다.
우르르 사람들을 올려 보내며 겨우 농사거리 두어 가지 싸 보냈는데...
김점곤아빠 박진숙엄마,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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