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설 5년을 되돌아보는 눈 하나/류기락

조회 수 4246 추천 수 0 2008.07.22 22:37:00

* 공동체로 글 한 편이 닿았습니다. 류기락님은 공동체식구이나 작년에 5년 동안의 시카고 생활을 정리하고 돌아와 서울에서 주로 일을 하고 있는 사회학자입니다. 공동체대표를 맡고 있는 아내에게 보내는 사적인 글이면서 한편 사회학자로서 물꼬를 바라보는 눈이기도 하다는 의미에서 저는 아래의 글을 ‘사적인 그러나 사적이지 않은’이라는 부제를 붙이고 싶었습니다. (옥영경)



물꼬와 결혼한 아내를 돌려받고 싶다
- 상설학교 5년을 되돌아보며 -

류 기 락


자유학교 물꼬에 아이를 보내려 하는 학부모들이 여럿 계십니다. 지난 2004년 상설학교를 문 연 후 적지 않은 아이들이 다녀갔습니다. 지금 남아 있는 아이는 오래전부터 공동체에 머물러 왔던 하다 하나 뿐이지요.
2004년 자유학교 물꼬가 상설학교로 문을 열 때 3:1의 경쟁률을 뚫고 12명(2명은 너무 어려 곧 되돌아갔지요.)의 아이가 함께 했고, 이듬해 60여명의 아이 가운데 선발된 2명의 아이가 더 들어왔습니다. 이 2년의 기간이 상설학교로서 가장 활기찬 나날들이었고, 자유학교 물꼬를 아우르는 물꼬생태공동체의 규모 또한 가장 컸더랍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학부모님들과 아이들 몇이 물꼬를 떠났고, 2006년에 새로 여러 아이들을 맞아 남아있던 아이 셋을 더하여 아홉의 아이들이 됩니다. 그 후 이 아이들이 한해를 함께 한 다음 다음해에는 공동체 아이와 마을에 거주하고 있는 아이만을 두고 새로운 해를 시작하지요.
이렇듯 해를 거듭하면서 아이들이 드나드는 일이 잦아지고, 공동체에 있는 아이들도 어른들도 이러한 일들을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되지요. 물론 사람 사는 곳에 사람이 들고 나는 일이 그리 큰 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일찍이 물꼬가 상설학교를 ‘홈스쿨링의 확대 형태’라고 말해왔던 것에 비추면 별반 달라진 상황이 있다고 할 것도 없고, 또 무상교육제도에 따라 배움값이 있었던 게 아니어 아이들의 이런 변화가 학교의 존립에 영향을 미치진 않았습니다. 나아가 아이들이 많고 적은 것이 자유학교 물꼬가 있어야 하는 까닭을 좌우하는 것 또한 아닙니다. 그러나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문제가 있는데, 바로 왜 이러한 일들이 반복되고 있는가라는 데 대해 몇 가지 하고 싶은 얘기가 있습니다.

얼마 전 몇 해간 변산에서 공동체를 이끌었던 선생님의 이야기를 아내에게 전해 들었습니다. 그분께서 오랜 일구어왔던 터전을 정리하시고 새로운 길을 가신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아내는 그 이야기를 듣고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듯했고 자유학교 물꼬라는 곳이 가진 상징성이 더 큰 의미를 갖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물꼬가 가는 길을 앞서 갔거나 함께 하던 여러 공동체들이 하나둘씩 사라져가는 것에 안타까움을 보이기도 했지요.
그러나 제 생각은 좀 다른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생태공동체라는 이름으로 산골에서 삶과 배움이 함께 하는 물꼬 생태공동체를 유지하는 것이 그리 큰 의미가 있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말입니다.

상설학교를 연 이후에도 매해 계절마다 지난 10년을 늘상 해오던 계절학교를 꾸렸습니다. 계절학교가 가난한 학교와 공동체 살림에 큰 보탬이 되기도 하거니와 자유학교 물꼬가 가진 역량들을 보다 많은 이들과 함께 하는 기회를 이어나가려는 생각 또한 컸기 때문이지요.
실제 계절학교를 다녀간 아이들은 무척이나 즐거워하고 그 추억들을 보듬고 성장하는데 작지 않은 힘을 얻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또한 자유학교 물꼬, 특히 아내가 가진 재주와 열정을 아낌없이 펼칠 수 있는 자리라는 점에서 그 의미는 여전히 크다 하겠습니다.

그러면 상설학교와 물꼬 생태공동체는 어떠한가 다시 되짚어보게 됩니다. 산골에서 거친 일상을 챙기면서 사는 일이 쉽지가 않지요. 솔직히 고백하건대 저 자신 또한 그 삶을 지속하는 데 자신이 없으니까요. 그러나 무엇보다 힘든 것은 역시 공동체를 드나드는 사람들과의 관계이지요.
아이들이 들어오면 부모들 혹은 어른들이 함께 물꼬 생태공동체에 들어옵니다. 이분들이 이전에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떤 생각을 공유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도 중요하지요. 물꼬를 찾아올 정도면 세상속의 삶과는 다른 삶을 찾고 계시던 분도 많이 있고, 혹은 일상의 힘겨움에서 벗어나 공동체의 이름 아래 힘을 얻으려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물꼬 생태공동체에 대한 기대가 여전히 크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공동체니까 어려움을 함께 할 수 있겠다 하는 생각 말입니다. 물론 이것은 물꼬에서 먼저 꺼낸 얘기일수도 있지요. 맞습니다. 힘든 일상을 나누어 그 무게를 더는 일이 공동체가 존재하는 이유라 할 수 있겠지요.

상촌면 대해리라는 산골까지 공동체를 찾아오시는 분들이 흔히 하는 말로 만만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자기에 대한 생각 혹은 의식이 굉장히 강한 분들이 많이 오시지요. 그리고 여전히 한편에서 바깥세상에서 얻고자 하는 기대, 욕구 등도 갖고 계십니다. 아이들이 물꼬에서 시간을 보내더라도 지적으로 보다 성장하고, 도회의 아이들에게 뒤처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기대 말입니다. 대해리를 둘러싸고 있는 좋은 환경에서 아이들이 자라는 것이 물론 좋은 일입니다. 그렇지만 그 가운데서도 아이들에 대한 기대를 놓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역시 많이 하십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러한 부모님들의 기대가 너무나도 합리적인, 그리고 급변하는 우리사회의 여러 환경들을 고려할 때 너무 당연한 요구라 생각합니다. 물꼬는 그러나 이 두 가지, 보다 자유로운 환경에서 자라나는 것과 아이들의 지적 성장에서 뒤처지지 않는 것 모두를 함께 만족시켜 드리기에는 너무 열악한 공간입니다. 여전히 새로이 들어오는 분들께는 커다란 자기희생이 요구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아내는 예전보다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기대가 있는 듯합니다. 그럴 때 제가 던지는 말이 있지요. 이러한 조건 아래서 물꼬가 요구하는 조건, 다른 무엇보다도 자기를 낮추는 사람을 찾기란 어렵지 않겠느냐고 말입니다. 설사 그런 사람이 있다 한들 그분들 또한 이곳에서 자기의 잠재력을 실현하고 싶은 욕망이 너무나도 큰 것 같다고 말하지요. 최소한 지금까지 다녀간 분들의 경험을 비추어보면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내가 전해주는 다른 여러 공동체에서 일어나는 일들 또한 제 생각에는 비슷한 사정 아래 있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거침없이 질주하는 세상에서, 언제나 무엇인가에 쫓기듯 자기 자신의 능력과 역량을 키워야만 하는 세상에서 공동체의 실현이 가능한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공부를 업으로 삼은 저는 어떠한 형태의 근본주의도 의심하고 지속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물꼬 생태공동체가 지난 몇 년간 실험해온 새로운 공동체의 실험 또한 그런 의미에서 지독하게 근본주의적인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물꼬에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 수도 있으나, 이곳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의 기대나 혹은 공동체에 대한 생각 한편에는 바깥과는 다른 그 어떤 원칙에 의해 움직이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있었겠다 싶습니다.

이제 그러한 생각은 좀 놓아두어야 하지 않겠냐고 아내에게 말합니다. 당신이 잘 할 수 있는, 당신이 하면서 힘을 내고 기쁨을 얻을 수 있는 일(지금도 아내는 최고의 기쁨을 누리고 있다 말하기도 합니다만 아내는 언제나 ‘지금’을 ‘최상’으로 여기며 사는 사람입니다. 오래 전 공동체 식구 하나가 아내의 시집에 쓴 발문에도 이런 구절이 있지요. ‘선생님은 늘, “난 요즘 참 좋다. 어느 때보다도 행복하다.”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그 얘기를 벌써 몇 년째 듣고 있지요, 결코 행복하지만은 않은 상황일 때도 그렇습니다.’)에 더 많은 시간을 썼으면 좋겠다고 말입니다. 계자만으로도 아이들을 충분히 만날 수 있고, 충분히 기쁘지 않냐고 말입니다. 그러는 틈틈이 한 때 뛰어난 재능을 보였던 글쓰기를 계속하면 어떨까 넌지시 권하기도 수 년입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힘겹게 붙들고 나아가기 보다는 조금 더 가볍게, 조금 더 유쾌하게 할 수 있는 일에 힘을 쏟는 것이 어떻겠냐, 상설학교를 접고 또 공동체라는 이름도 내려놓고 예전처럼 계절학교만 해나가면 어떻겠냐고 누차 권하고 있지요. 한 해에 하나씩 장애가 있는 아이 다섯을 데려온다는 아내의 오랜 꿈을 말리는 것도 맥락이 다르지 않습니다. 고백컨대, 제가 이렇게 제안하는 데에는 개인적인 욕심도 있습니다. 아내가 좀 더 많은 시간을 오롯이 자신을 위해,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기대 말입니다. 그 기대를 어느 정도 만족시켜주면서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 말입니다. (2008.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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