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한 물꼬, 뭘꼬 - 2

조회 수 14127 추천 수 0 2003.03.20 18:12:00
※ 물꼬는 생태공동체를 함께 고민하는 큰 행사를 열고 있습니다. 다음 글은 1999년 하반기 큰 행사였던, '99년 9월, 우리가 함께 산다는 것은'에서 옥영경 선생님의 강연을 녹취한 것입니다.


하늘도 못하는 일을 사람이 한다.

옥영경

안녕하세요. 옥영경입니다. 시작하기 전에 <지각대장 존>이란 동화책을 슬라이드로 봤는데요. 그런 생각했어요. 우리가 아이들의 상상력을 많이 차단한 것은 아닐까. 교사라는 직업이, 그래서 실제로 부딪치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힘들을 혹시나 차단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하면서 같이 보고 싶은 동화였구요. 다른 때는 좀더 성우 노릇을 잘하는데….(웃음)
제가 일정 정도 부담감을 가지고 이야기를 시작해요. 이 자리에서 절반 정도는 아는 사람이거든요. 그러니 밥 먹으면서 같이 차 마시면서 술 마시면서 했던 얘기 참 많을 거예요. 그러니까 제가 할 이야기의 어떤 부분, 예를 들어오는 어떤 이야기들을 반복해야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걸 듣고 있어야 하는 사람들의 입장이 어떨까 싶어서, 그런 부담감이 생겨요.

이 그림 한번 보세요.(행사 걸게그림) 잘 보면 텔레토비죠.(웃음) 텔레토비를 처음 방영을 하고서 방송사에 엄청난 전화가 걸려 왔다는 얘기 들으셨지요. 방송 사고다 이거. 반복이 끊임없이 나오고 그러니까. 그런데 그것을 방송사에서 한 순간에 잠재웠어요. 그게 뭐겠어요. 교육 선진국 영국에서 만든, 그것도 BBC에서 만든 프로그램이다. 그 순간 모든 얘기들을 잠재웠대요. 혹시나 여기 앉아있는 우리도 선진이거나 발전이라거나 또는 명망이라거나 교수라거나 혹시 이런 이름들에 갇혀있는 것은 아닐까. 이미 그런 이름들에 포장이 되면 한치의 의심도 없이 최고의 교육이라고 생각하거나 최고의 사상이라고 생각하거나 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텔레토비 보면서 잠시 했어요.

교육도 다양하게 접근이 되어야...

시작하기 전에 몇 가지, 어쩌면 지금 하고자 하는 얘기들이 우리가 물꼬에서 하는 작업을 반영하는 얘기들이 아닐까 싶어서 그런 얘기 먼저 하고 싶은데요. 제 친구 얘기부터 할게요. 지금 호주에 가 있는 순임이라는 친구가 있어요. 저는 말을 그렇게 거칠게 하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그 친구는 참 좋고 존경할만한데 근데 이 친구를 좋아하기는 하는데, 웬만하면 안 만나고 싶어요. 왜냐하면 얘는 정말 말을 턱턱턱 놔요. 상스러울 정도의 욕설도 잘 하고 그리고 그걸 너무 자연스럽게 뱉어요. 근데 이 친구가 3년만에 잠깐 다니러 왔는데 참 많이 부드러워져 있데요. 야, 너 많이 부드러워졌다, 그러니까, 거기는 나를 갈구는 사람이 없거든, 그러는 거예요. 갈구는 사람이 없대요.
'열린'이라는 말들이 막 나오기 시작하면서, 열린 교실이니, 열린 음악회나, 열린이란 이름들로 갖다 붙인 게 참 많은데 그 열린이란 형태도 하나같이 같은 모습을 가지고 가요. 흔히 획일이라고 하지요. 혹시 순임이란 제 친구처럼 우리들 안에 뭔가에 억눌리고 억압되고, 이런 것들이 우리의 공격성을 배가시켰던 것은 아닐까. 우리가 알게 모르게 갖고 있는 적대감들이 오히려 우리가 많이 차단됐고 또 억눌렸고, 이랬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흔히 교사들이 지금 아이들 참 폭력적이라고 하는 부분들도 아마 닫힌 문화가 만들어준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해봐요.
가끔 사람들이 와서 인터뷰를 하거나 방문자들이 와서 물꼬의 이야기를 하는 자리가 있는데 그때 받는 질문 중의 하나가 공교육을 부정하십니까, 이런 질문들이예요. 우리는 제도 교육이 옳다 그르다 라며 접근하고 싶은 것이 아니고 전 국토의 자유학교화를 외치는 사람들도 아니거든요. 그냥 제도교육이 절대화되는 것, 절대화로 신봉되는 것에 대한 반기. 땅도 넓고 할 일도 많고 사람도 많고 다양한데 교육도 그렇게 접근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병아리 학교도 있고 돼지 학교도 있고 자유학교도 있고 실험학교도 있고 간디학교도 있고 이런 식으로 봐줬으면 좋겠다고 주문부터 하면서 이야기를 할께요.

교육이, 어떤 세계관이 승리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은...

오늘은, 물론 물꼬에서 하는 작업들도 이야기하겠지만 근본적으로 가치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요. 물꼬에서 계절학교를 가지요. 재작년 겨울에 포항에서 한 아이가 왔어요. 아주 예쁘고 공부도 잘하고 다루는 악기도 많고 흔히 학교생활을 참 모범적으로 하는 무난한, 성격도 참 무난한 그런 아이였어요. 근데 계절학교를 가면 모둠이 꾸려지는데 모둠이 학년중심이 아니고 7살부터 13살까지 섞여 있어요. 7명에서 10명 단위로 모둠이 이루어지고 어른도 두세 명, 많으면 4명까지도 있어서 계속 뭔가 논의하고 의논해야 되는 구조로 꾸려지거든요. 밥을 뭐 먹을까 논의를 해야 하는데 얘가 여태껏 학교에서는 예쁘고 부자고 말 잘하고 결정적으로 공부 잘하고, 그것만으로도 이미 친구들 사이에 자기 말이 설득될 큰 힘을 가지고 있었던 거예요. 근데 자유학교라고 와 보니까 웬걸요. 이 말도 안 되는 7살짜리하고도 말을 해서 의논을 해야 되는 거야. 아무리 미역국이 몸에도 좋고 맛있다고 말해도 '나는 꼭 카레를 먹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7살짜리가 설득이 안 되는 거야. 그래 이 아이가 이틀 뒤부터 절망을 하는 거예요. 5박6일을 갔는데, 이거 뭐 여태껏 자기 말이면 다 먹혀들고 세상이 다 편했는데 뭔가 기분 좋으려고 계절학교라고 왔더니 하나에서 열까지 뭔가 계속 논의를 해야 되고 그런 거예요. 물론 돌아갈 땐 자기가 할 수 있는 게 자기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다는 생각을 하고 돌아갔어요.
근데 그 아이 보면서 아, 물꼬에서 담고 있는 어떤 가치라고 할까, 배움이라는 게 이런 차이들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냐하면 걔는 청소하고 빨래도 안 해 본 아이였거든요. 달걀프라이도 안 해 본 아이인데 밥도 해야 되지요. 말도 안 되는 애들하고 뭔가 논의랍시고 얘기도 해야 되지요. 그러니까 사는 연습을 계속 해야 되고. 음, 말하자면 물꼬의 단면을 보여 줬던 게 아닌가.
더 이어서 얘기하면 저는 80년대에 고등학교를 다녔어요. 초도 한참 초반에 다녔는데, 교과서요, 한치의 의심도 할 수 없는 국사교과서에 빛이 반짝반짝하는 제5공화국 사진이 들어있었어요. 제 5공화국이 출발하던 그 당시의 세대니까. 교과서에서는 정의사회 구현 등 좋은 말은 다 갖다 붙여놨어요. 우리는 그걸 진실이라 알고 고등학교를 졸업했구요. 그리고 대학을 갔더니 또 웬걸요 지금은 많이 다를 텐데, 사람들은 와서 그런 질문을 해요. 선생님도 운동세대입니까? 그 시절에 운동을 아무도 부정할 수가 없었어요. 믿어 의심치 않던 교과서의,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아닌 게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들을 보면서 어떻게 화염병을 던지지 않을 수가 있고 짱돌을 던지지 않을 수가 있었겠어요.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거냐면, 그 교과서를 만들었던 권력을 누가 쥐고 있느냐에 따라서 우리가 배우고 있는 교과서조차도 참과 거짓이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이에요. 무섭지 않으세요? 내가 지금 믿고 있는 뭔가가 장악한 권력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는 사실이요. 그래서 교육 참 무서운 것 같아요. 교육은 어떤 세계관이 승리하느냐, 어떤 가치관이 승리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 아까 우리 성희, 포항에서 왔던 성희의 이야기를 하자면, 성희는 학교를 다니면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어요. 그 가치관 속에서는 (이 사회적 가치관 속에서는) 실제로 공부 잘하면 되고, 청소 안 해도 되고, 빨래하는 거 몰라도 되고, 사람들하고 계속 논의하는 거 몰라도 내가 잘
나면 굴러갈 수 있는 거예요. 근데 물꼬는 그런 가치관들에 대해서 우리 다시 다르게 생각해 보자 라는 얘기를 하고 있거든요.
좀더 얘기를 하자면, 교사들 얘기를 해 봅시다. 요새는 대안학교니 자유학교니 사람들이 제법 많이 알지요. 교수님들이 4학년들을 보내요. 실습하라고, 보고 오라고. 한번은 어디 여대 친구들이 왔는데 계절학교 갔다 오고 평가하는 자리에서 그 중에 한 명이 그런 얘기를 해요. "이번에 저도 참 많이 배웠습니다. 이번에 가서 김치찌개 하는 법도 배웠어요"라고 해요. 제가 그 친구의 배움에 대해서 뭐라고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는 내가 바느질 하나 못해도, 찌개 한번 안 끓여 봤어도 교사가 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학교에서 선생님들을 통해서 배운 것도 참 많겠지만 사실 알게 모르게 사람들을 통해서 얼마나 많이 배워요. 딱히 교사라는 게, 어른이면 다 교사일 거예요. 어른이면 어떤 식으로든 아이들 앞에 노출되어 있고 그렇다면 알게 모르게 영향을 주는 사람이고 그렇다면 우리는 교사라고 부르기에 이 땅의 어른을 다 칭해도 될 거예요.
음, 얘기를 한 가지만 더하자고요. 속도에 대한 이야기요. 세상이 참 많이 편해졌잖아요. 특히 남자들 그런 불만 많이 터트리죠. "아니 부엌을 위해서는 왜 그렇게 많은 것들이 나오는 거야, 여자들의 부엌노동을 줄여주고 편하게 하는 것이 왜 그렇게 많은 거야. 요새 여자들 정말 편해." 이런 이야기를 하죠. 근데 우리 부엌에 노동 자체의 시간을 줄여주는 것은 참 많아졌는데 친구가 찾아와서 밥 한번 먹기가 쉽지 않아요. 왜냐하면 밖에 나가서 밥 사먹기가 더 났지. 시간이라는 문제로…. 분명히 시간을 줄여주는 것은 참 많이 등장했는데 우리는 왜 여전히 시간이 없는 걸까요. 음, 물꼬에서는 그런 것에 대해서 작은 저항이라면 저항으로서 밥 먹고 그릇 다 놔두고서 누워서 잡담 한 마디씩 하다가 그리고 치우고 그것만으로도 시간 참 많이 가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 중에 자크 르클레르크라는 사람이 그럽디다. 자동차를 타고 가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걸어가면 보인다고 해요. 그러나 여러분, 자동차가 다 굴러다니는 이 시대에, 걷는 게 의미 있다고 어떻게 우린 얘기 할 수 있겠어요. 자동차를 위시로 해서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갖고 온 것들에 대해서 과거로 돌아가자는 말들이 어떻게 먹힐 수가 있겠어요. 시멘트요. 저 강원도에서 난 시멘트요. 우리 집을 지으려고 해요. 그런데 강원도에서 왔어요. 근데 우리 집 옆에 있는 황토를 퍼다가 짓는 것보다 분명히 비용이 덜 들어가요. 차도 타고 오고 배도 타고 오고 이렇게 실어 온 시멘트가 어떻게 더 싸겠어요? 그런 의심 한번 안 해 보셨어요? 그렇게 얘기하면 비용에 대해서만 생각하실 거예요. 박리다매 이런 거요. 많이 생산하니까. 과연 그럴까요?

시간을 줄여주는 것들은 참 많이 나왔어도 여전히 우리는 참 바쁘다.

앞에 얘기들은 물꼬가 어떤 생각들을 하고 있는가 잠깐 얘기를 해 드리고 싶었던 거구요. 제가 하려는 이야기에 앞서서 세 가지만 더 말씀드릴게요.
하나는 사람이 가진 성정이 있지요. 쟤는 성정이 참 착하다거나, 재는 성정이 어떤데요. 넌 어떤 애야. 분명히 사람이 엄마로부터 내림 받거나 운명적으로 지워졌던 성정이라는 게 있을 거예요. 그렇더라도 여전히 교육을 통해서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내지는 가치관을 바꿀 수 있는 것들이 있을 거라는 관점에서 물꼬가 출발해요. 물꼬의 교육적 작업이 출발해요.
또 하나 제가 지금 말을 썩 유쾌하게, 재밌게라거나 하여튼 기분 좋게 말을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데 그럴지라도 제가 늘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고, 그러니까 강사가 아니고 아이들을 늘 만나는 사람이라는 것.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면 물꼬에서 하는 일들이 어른을 놓고 하는 일이 아니라 아이들을 놓고 하는 일이다라는 걸 전제로 해서 말씀을 들어주셨으면 좋겠구요.
그 다음에 한 가지는 그래도 지금 앞에 얘기한 가치관, 범세계적으로 이루어진 세계화라 할지 이런 가치관들에 비해서 너무 작은 움직임이 아니냐 하는 이야기들이 나올 것을 대비해서 미리 차단하자면 한나라 왕부지요. 서양의 헤겔과 맞먹는다는 왕부지, 그가 말하기를 세상 살면서 내 손이 닿지 않은 일들이 많은데 사람이 못하는 일을 신이 한다고 해요. 아니면 모르는 거대한 힘이 한다죠. 그런데 신이 못하는 일을 사람이 한다고 그럽디다. 여전히 사람이 움직이는 것들이 있지 않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이야기를 시작하자구요.
이 얘기를 조금 더 풀면, 제가 지난 계절학교 중에 하나를 아주 재미있는 구성으로 갔어요. 하나는 전직 대통령 중의 외손자이자 재벌 3세인 여자 아이가 갔어요. 그리고 쭉 내려와서 교수 아이들 학교 선생님 아이들 일반 가정 아이들 밑에는 저희가 한 7년째 만나고 있는 고아원 아이들이 있는데 고아원 아이들까지 함께 꾸려서 갔어요. 그런데 계절학교를 가는데 그때만큼 힘들었던 적은 없었어요. 어떤 힘듦이냐면, 가서 아이들한테서 힘들었다는 게 아니라 가기 전부터 막연한 우울함과 막연한 뭔가가 계속 엄습해 있는 거예요. 그래 우리가 첫날에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해보니까 혹시 우리가 느끼는 이 무기력함은 우리가 사회에서 느끼는 무기력함은 아닌가, 우리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면 참 좋겠지만, 과연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내가 열심히 살면 생이 달라질 수 있다거나 세상이 달라질 수 있다거나 행복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있는지…. 전 중, 고등학생들을 적지 않게 만나고 있는데 제가 10년 전에 아이들을 만나고 있을 때만 하더라도 아이들 꿈에서 참 꿈을 발견할 때가 많았는데 한5, 6년 전부터 만나는 아이들은 한결같이 다 거의 돈을 많이 벌겠다는 얘기를 해요. 가치관의 변화죠. 그리고 아무런 희망도 주지 않는 것에 대한 반증이죠.
계절학교 얘기로 다시 돌아오면 그러니까 우리가 이 사회에서 무기력함을 느끼는 것처럼 계절학교를 갔더니 사회의 축소판처럼 그 계절학교 안에 그 계급들이 들어와 있는 거예요. 근데 거기서 절망하겠다는 게 아니라 거기서 출발하겠다는 거예요. 그래도 여전히 교육이 할만한 일들이 있을 거다. 사람이 할만한 일들이 있을 거다. 그 지점에서 물꼬가 출발하려해요.

교육은 자긍심을 심어주는 것

그럼 물꼬 이야기를 할게요. 역시 사람들이 찾아오면 묻지요. 물꼬의 사상이 뭐냐, 당신들이 추구하는 게 뭐냐, 요새는 딱히 뭐라고 대답을 못하겠어요. 좋은 책들 보다가 좋은 얘기들 있으면 아! 이게 물꼰갑다 생각하는 게 훨씬 빠를거에요. 뭐냐하면 아이들 한 10년 만나면서 작업을 하다보니까 섬머힐에 닐이 말한 대로 아이들에게 자유를 무한하게 주면서, 이렇게 출발을 했겠지요. 그리고 몇 해 지나면서 자유, 세계의 자유학교를 보면서 영국의 퀼크하니티 하우스를 보면서 아, 노동을 중시하는 게 교육이 좀 되더라. 그리고 지금은 망했지만 멕시코의 트라위카 학교를 보면서, 현실을 중시하면서 교육을 하니까 애들이 저렇게 힘을 받더라. 저기 또 프랑스 피레네 자유학교를 가면 전쟁이 지나고 난 다음에 재봉이라든지 국어라든지 실제로 필요한 교과목을 하니까 정말로 생을 행복해하는 사람들이 만들어지더라. 이런 실례들이 찾아지기 시작했어요. 그러나 우리가 가진 정황들요. 이 고름덩어리 한반도와 분단된 조국이라는 것, 이 천민자본주의가 다 녹아져 들어있다는 것. 묘하게 모든 상업주의가 다 들어있는 이 나라에서 우리가 교육적인 작업을 한다는 게 어떠한 사상을 끌고 들어오더라도 대안이 되지 않더라는 한계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거예요. 한때 저희는 슈타이너, 처음에는 말이 좋았어요. 슈터이너에서 빈민가들을 중심에 놓고 처음 시작했던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시작을 하고 그 다음에 쿨크하니티의 노동을 중시하는 교육도 가져오면서 뭐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시작됐었는데 몇 해 지나니까 소박해져요. 지금 하는 생각은, 우리가 배운 것들이 사람을 위해서 쓰였으면 좋겠다, 정말 사람을 위해서 쓰였으면 좋겠다, 또 배워서 남 주나 하던 부모님들에 대한 반기처럼 배워서 남 주자고 하는 공부, 내가 살아가면서 부닥치는 문제들을 좀 해결할 수 있는 공부, 도대체 길을 지나가면서 옷이 툭 터졌는데 수선집 못 찾아서 동동 구르는 게 아니라 내가 꿰매는 것…. 우리가 연애를 잘 못해요. 주변에서 연애를 잘 하는 사람을 잘 못 봤어. 그 중에서 저는 교육 속에서 관계 맺기에 대해서 잘 못 배운 것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 바로 연애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더 중요한 거요. 자기 긍정성을 지니고, 자신감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거요. 제가 오늘 오전에 교정교열 하는 자리가 있었어요. 근데 강의하는 선생님이 뭔가 틀렸어요. 근데 이 선생님이 설명을 하는데 사람들이 끄덕거리고 있었어요. 근데, 제가 나서서 그게 아니라고 했어요. 제가 잘난 체 하는 게 아니라, 저는 아이가 있거든요. 15개월 된 아이가 있는데 그 아이를 다른 사람한테 맡기지 않고 저희 안에 선생님이 돌아가면서 보거든요. 누가 그 아이를 맡아야 제가 거기를 가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남들이랑 상황이 다른 거예요. 뭔가 얻어와야 하는데, 그거 들으러 1시간동안 차 타고 가서, 남들이랑 정황이 좀 다른 거예요. 근데 세상에 얼렁뚱땅…. 저번 강의에서는 어떤 사람이 질문을 했어요. 질문을 했는데 선생님이 잘 못 들은 거라. 또 체하는
제가 나서서 선생님 그게 지금 그 이야기가 아닌 것 같은데요. 그랬어요. 근데 선생님이 또 얼렁뚱땅하고 넘어갔는데,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하면, 제가 체하고 싶어 한다가 주제가 아니라, 그런 말을 하고 난 다음에 시선들을 감당하기가 참 어색한 거예요. 우리는 배움의 장이고 어디고간에 전부다 예쁘게 차려입고, 도서관에 우리나라만큼 예쁘게 앉아있는 애들이 없대잖아요. 그러니까 저는 분명히 그 자리에서 필요한 얘기를 했던 거고 그 사람들한테도 귀중한 시간일 텐데, 그런 얘기를 했던 건데 그게 왜 어색하게 뒷마무리가 되었을까, 내가 왜 주눅이 들까, 분명히 저는 필요한 얘기를 했고 그러니까 그 자리에서 잘난 체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명확한 것을 확인 받고 싶고 같이 교육을 받는 사람들도 같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그 자연스런 행위가 자연스럽지 않게 되는 거예요. 근데 그게 저는 사회 전체적인 분위기라 생각해요.
어떤 사람이 장가를 갈려고 하는데 집에서 반대를 하는 거야. 그래 왜 그러냐고 하니까 네가 배운 게 있냐, 돈이 있냐 그래서 열심히 배우고 그리고 돈도 벌었대요. 근데 그 여자는 시집을 가부렀대요. 그게 누구의 기준이었냐 하는 거예요. 섬머힐 아이들은 - 물론 저는 긍정하는 부분만 이야기합니다 - 표가 난대요. 가끔 저희에게 사람들이 와서 혹시 여기 오는 아이들이 이 안에서 자유로운 교육을 받다가 학교로 돌아가 괴리감을 느끼지는 않을까요 라고 물어요. 근데 그런 걸, 걱정을 사서한다. 또는 걱정도 팔자라고 얘기하지요. 왜냐하면 아이들은 참으로 영악해서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어떤 데서는 그걸 해도 되고 하지 말아야 하는지 동물적인 직감으로 알아요. 어떤 데선 자기가 받아들여지는 지도 알고 아닌 것도 알아요. 귀신같이 알아요. 섬머힐 아이들 얘기를 했는데 섬머힐에서 졸업한 아이들이 그러니까 직장에 응시를 하잖아요. 입사시험 때 보면 표가 딱 난대요. 당당하댑니다. 자기 자신한테 참으로 당당하대요. 저는 극단적으로 교육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그런 자기 긍정성, 자긍심이라고 얘기하죠. 교육에서 그런 게 길러질 수 있다면 내가 함부로 오만하지도 않고 내가 억지로 겸손해지지 않아도 되고 자연스러움으로 베어나는 것이면 타인에 대한 배려라는 것, 관용이라는 것, 그런 것들이 형성될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는 거죠.

지속가능한 소비 생활을 그러니까 삶의 양식을 길러주는 교육이 가능하지 않을까, 그게 교육을 통해서 길러질 수 있지 않을까
개인과 공동체의 가치관이 상생하는 공동체로 살수 있는 방법을 교육을 통해서 길러 내보자
전국토의 단일화된 교과서가 아니라 지역에 맞거나 각 정황에 맞거나, 그런 관계들 속에서 나올 수 있는 교과서


얘기를 좀 모아가지요. 저희는 한번도 대안학교라는 말을 한 적이 없는데 또 말 잘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대안학교라고 해 놓고선 전화가 와요. '거기 대안학교 물꼬지요'라고. '아닌데요'라고 해요. '우리는 자유학교 물꼬라고 하지요'라고 해요. 어쨌든 대안학교니 하는 단체들이 공통점이 있어요. 그렇게 불려지는. 저희는 굳이 대안학교가 아니라 자유학교라고 표현할게요. 공통점들이 있는데 그런 공통점 얘기들을 좀 하고 그리고 자유학교에서 하고 있는 작업 얘기를 할게요. 일반적으로 대안학교와 자유학교가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것들이 크게 세 가지 공통점이 있는 것 같아요. 하나는 실제로 한정적인 지구 위에서 소비 지향적으로 해왔던 모든 것들에 반기를 드는 거예요.
이것은 뭐 당신은 긍정하십니까 이런 차원의 얘기가 아니에요. 지구가 한정적이라는 것을 누가 부인하겠어요. 피폐할 대로 피폐했다거나, 어쨌든 거기서 에너지를 생산하고 있다는 것을 누가 부인하겠어요. 근데 그 안에서 실제로 지속가능한 소비 생활을 그러니까 삶의 양식을 길러주는 교육이 가능하지 않을까, 그게 교육을 통해서 길러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그리고 또 하나는 우리는 공동체라고 하면 참 부담스러워 해. 뭔가 내가 방귀도 못 뀔 것 같고 발냄새 나는 내 발도 너무 많이 노출되는 것 같고. 내 나쁜 점이 뭔가 다 드러날 것 같은. 그런데 다르게는 생각 안 하는 거야. 대신 그만큼의 거리에서 내 장점도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을 잘 생각을 안 하는 것 같아요. 어쨌든 공동체라는 말을 참 어려워하는 것 같아요. 버거워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가 공동체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꼭 전화를 해서 물어봅니다. 혹시 거기 종교단체인가요 라구요. 인제 그렇다고 하지요. 예, 그렇습니다. 자유학교도라구요. 공동체라는 것이 별거겠는가, 서로 모여서 상생작용을 할 수 있으면 좋지 않겠는가. 좋은 관계를 뭐라고 보세요. 사람이 만나서 장점이 더 많이 드러날 수 있다면 그런 게 좋은 관계인 것 같아요. 연애도 그런 것 같아요. 그러니까 개인의 가치라는 것, 공동체가 왜 버거운가 하면 개인의 가치관하고 뭔가 끊임없이 싸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잘 따져보지 않고, 그러니까 개인의 가치관과 공동체의 가치관이 크게 싸우지 않는 지점이 교육을 통해서 형성될 수 있질 않을까라는 생각들도 공통적으로 하구요.
그리고 세 번째는 우리가 전국토적으로 단일한 교과서를 가지고 있잖아요. 물론 요즘은 좀 다르다고 합니다. 초등학교 4학년 같은 경우는 그 지역에 대해서 뭐 하는 것이 나온대요. 나오기는 한다고 합니다. 근데 나온다고 다 됩니까? 안되지요. <오래된 미래>라는 귀한 책을 여러분들 참 많이 들었을 텐데요, 거기서 라다크 안에서도 아이들이랑 잘 공부하고 잘 살았대요. 그런데 어느 날 교과서가 만들어지면서 그 교과서에 서양아이들이 침실과 생활들이 나오고 걔들 일상에서 필요하지 않은 것들이 지식이란 이름으로 들어와 있대요.사실 우리의 지식이 확장되는 것은 참 좋은 일이잖아요. 앎이라는 것은 정말 힘이 되지요. 지식이 확장되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이에요. 그런데 그러한 것들이 치우쳐진다거나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것들을 누추하게 만들고 초라하게 만들고 근원을 잃게 만들고 모든 생명의 상호 연관고리를 끊게 만드는 거라면 문제가 있지 않겠는가 라고 생각하는 거지요. 제 아이 이야기를 잠시 하면, 제가 하다의 엄마예요. 옛날에는 이런 강연장에 가면 실컷 막 얘기를 해요. 제가 좀 말을 좀 열심히 하는 편이거든요. 강연 가서도 열심히 말을 해요. 그래, 감화 감동의 물결 내지 웃음과 화기애애하고, 전부 좋아져요. 근데 막판에 누가 딱 물어요. "선생님 애기는 몇 살이죠?". "애기가 없는데요." 하는 순간 이 감화감동은 모든 게 사라지는 거야. 애 키워봐. 선생님 말이야 좋지요. 애 키워 봐요. 안 때리고 살 수 있나 라고 얘기해요. 근데 제가 애 키우는 어미가 되었답니다. 그 순간 제가 모든 것에 힘을 얻는 거예요. 제 말을 믿을 수밖에 없는 거야. 제가 애 엄마니까. 제가 그렇게 키우고 있으니까.
이제 하다 얘기를 하면 제 아이 이름이 하단데 물론 다들 애를 키워요. 그리고 다들 일도 하는 여자들도 많지요. 근데 남들은 다 잘도 하더만 왜 이렇게 어려운지 모르겠어요 정말 참 많이 힘이 들어요. 근데 이 공간 안에서는 가능하거든요. 1년 동안 젖을 먹였는데 일을 하면서 젖을 먹인다는 것, 젖을 먹이면 소화가 빨리 되어서 젖도 자주 먹여야 되고. 걔는 따로 봐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제가 계절학교 가면 따라가야 되고 영동까지 3시간 반 차를 타고 가야 되는 거예요. 회의를 하면 물론 하다가 많이 도와주기도 하지만 제가 친절히 얘기를 해주지 않은 날에는 왜 나만 빼 놓고 몰려들 뭐 하느냐 하면서 막 끼어 들고 그래요. 그럼 늦어지지요. 우린 일하는 게 더디어지고 방해도 받고 그래요. 처음에 얘기를 시작할 때 우린 속도에 대한 저항을 하고 싶다. 누구를 위한 속도냐, 사람을 위한 속도였으면 좋겠다. 행복하게 하는 속도였으면 좋겠다 그랬는데, 물꼬에서는 그게 가능해요. 좀 더디게 가기도 하고, 쉬었다 가기도 하고. 얘기를 다시 돌려오면 엄마하고 아이는 같이 있어야 된다고 봐요. 모든 생명들이. 엄마하고 아이라는 그 생명의 고리라는 것도 연결이 되어 있어야 되지 않겠는가 하는. 애 키우는 사람 따로 있는 나는 일하고 이런 거 생각한번 해 보세요. 무슨
짓 하자고 이런 짓 하는 거냐고 끊임없이 그런 생각 안 들겠어요. 물론 애 데리고 일한다고 그런 생각 안 드는 건 아니에요. 애 이 고생시키면서 이러고 있나 하는 생각도 드는 것도 있지만 그래도 우리 희정샘, 내가 참 애 저렇게 힘든데 내가 무슨 짓 하는지 모르겠다 이런 소리하면 옆에서 그런 얘기를 해요. 그래도 하다는 엄마랑 같이 있지 않냐구요.
예, 다시 정리 좀 할게요. 일반적으로 대안교육이나 이런 작은 학교의 움직임들이 시작이 되면서 공통점들을 가지고 있더라는 것, 뭔가 지속가능한, 더 이상 우리가 어디서 갖고 올 데가 없는데 지속가능한 소비생활이 있으면 좋겠다. 교육을 통해서 일어날 수 있으면 좋겠다. 공통적으로 이런 생각을 하구요. 그 다음에 개인의 가치관과 공동체의 가치관이 뭔가 싸움을 하지 않는 지점을 찾아내서 공동체로 살수 있는 방법을 교육을 통해서 길러 내보자 이런 생각들. 그리고 전국토의 단일화된 교과서가 아니라 지역에 맞거나 각 정황에 맞거나, 그런 관계들 속에서 나올 수 있는 교과서. 그런 생각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구요.

지역에서 예전에 학교가 가졌던 의미처럼 지역문화축제의 장으로서의 학교의 의미를 가지고 그런 것들을 복원해내면서. 그 학교 안에서 큰 부엌이 하나 있고 그래서 밥을 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서 화기애애하게 살고 그런 작은 학교를 꿈꿔요

그리고 물꼬의 입장에서 좀 덧붙이자면 저희가 처음에 출발은 교육을 좀 다르게 해보자. 애들이 좀 행복해야 할 것 아니냐, 하는 생각에서 출발해서 교육을 하자고 하니까 교육의 내용도 생각하게 되고 또 그 교육이 갖는 가치관도 생각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뭔가 분리가 되네. 일이 분리가 되고 공부가 따로 남고…. 안되겠다 일도 같이 와야지 일하면서 공부해야 되겠더라 뭐 이런 생각도 하게 되고, 그리고 예술. 애들도 미감을 가지고 있는데 물론 그게 공동의 미감, 우리가 다 같이 느낄 수 있는 미감하고 많이 떨어질 수도 있겠지만 애초부터 그게 아름답고 내가 좋구나 하는 것이 미감의 출발이라는 것을 인정해줘야 하고 그렇게 내가 갖는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이 신나는구나 하면서 좀더 아름다움을 갖고 올 수도 있고, 이 자리에서 혹시 숙현 샘 그림 잘 그려요? 그림 그리는 거 좋아해요? 대부분 여기서 못한단 얘기 다 할걸요. 정말이에요. 왜 그렇겠어요. 도대체 누가 그렇게 만든 거예요. 우리들 다 미감은 갖고 있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는 피아노 치는 사람은 매일 피아노만 치러 다니고 밥도 한번 안하고 글도 사람들이 못 쓴다고 해요. 글 못 써요? 사람들, 친구하고 싸우고 나서 내 억울한 심정을 호소하라고 하면 얼마나 잘 쓰는지 몰라. 그리고 연애편지는 얼마나 잘 써……. 국어공부 못해도. 지리공부 못해도 잘만 싸돌아다니고 그런 거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예술이라는 게 특정한 사람들이 하는 게 아니라 분명 다같이 즐기고 할 수 있는데 그
런 것들이 뭔가 분리되고 그런 것들이 공부하고도 분리가 됐어요.
그런 것들이 일과 예술과 하나가 되면 좋지 않겠는가, 게다가 자기를 안으로 자꾸 탐독해보는 명상이라는 것도 하나가 되면 좋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들을 하게 됐어요. 그런 생각들을 하다가 교육적으로 자극을 막 하는데 한계가 와요. 실컷 계절학교에 가서 어떤 계기들을 마련해서 애들이 좀 달라졌어요. 공부를 통해서 애들이 좋은 가치관들을 갖게 됐어요. 그런데 그러면 뭐합니까? 문만 나서는 순간에 다른 세상이 있고 집에 가는 순간에 다른 세상이 있는데 그걸 어떻게 막겠습니까? 그 힘들은 더 거대한데……. 그런데 교육을 가지고 뭔가 달라지게 하고자 하니까 삶이 달라지지 않으면 삶의 현장이 달라지지 않으니까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흔히 저희들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그런 얘기들을 해요. 삶의 현장이 달라져야 한다면 거기는 도대체 뭐냐? 그런 얘기를 하죠. 그래서 어쨌건 공동체의 단위부터 이 아이들을 뭔가 이 교육이 검증되는 현장들이 있어야 되겠더라.
실제로 우리가 뭔가 같이 사는 게 중요하고, 주변의 것이 소중해 라고 얘기하는데 나가보면 자전거포 아저씨는 무시당하고 있고 그 일은 별 게 아닌 거예요. 이 사회 속에서 뭔가 가치관들이 전부 달라져 있는 거야. 그러는 순간 배운 게 힘이 없어지는 거잖아요. 근데 이제 저희가 생각하기를 저희가 처음에는 자유학교를 세우려고 해요 하고 말하다가 생태공동체 마을 안에다가 세우려고 해요. 그렇게 말하게 되는 변화를 겪게 되요. 그래서 그 마을에서 실제로 아이들이 배우는 것이 물론 기초교과학습도 해야 될 거고 그리고 뭔가 모둠별로 프로젝트 공부를 하면서 재미도 느낄 테고 또 동시에 지역사회에서 아이들이 배우는 거요. 저기 정육점에 가서 고기 써는 법도 배워보고 그러면 배운 게 없어서 정육점을 할 수밖에 없었던 그 아저씨는 또 삶의 긍정이 오게 되겠지요. 내가 배운 게 없어서 선생은 못할 줄 알았더니 아이들이 내 것도 배우러 다 오네, 하면서 내 위상이 또 달라지는 거예요. 예, 그래서 그런 생태마을과 그 마을 안에서 많은 에너지 문제가 외부에서 들어오는 에너지가 아니라 자체 생산하는 에너지가 나올 수 있고 하다못해 소통을 말려서 불을 때든지 댐이나 원자력이나 그런 거대 자본들로 이루어져서 저 멀리서 오는 에너지가 아니라 지역에서 생산되는 어떤 에너지를 가지고, 실재로 여기서 살만한 것들을 만들어내고 그리고 지역 사람들이 다 선생님이고 그리고 지역에서 예전에 학교가 가졌던 의미처럼 지역문화축제의 장으로서의 학교의 의미를 가지고 그런 것들을 복원해내면서. 그 학교 안에서 큰 부엌이 하나 있고 그래서 밥을 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서 화기애애하게 살고 그런 작은 학교를 꿈꿔요. 그러면 지금 너희는 뭐하고 있냐? 예 지금 저희는 뭐하고 있냐면 학교를 나중에 세우려고 실험해 보는 계절자유학교, 아이들 자율에 의존하고 자유롭고 스스로 조율하는 것을 배워보는 그런 계절학교를 하고 있어요.

<묻고 답하고>

■ 이 거대한 도시 안에서, 자본주의 틀 안에서 공동체 문제와 그 해결방법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가 오늘 오기 전에 차에서 책을 봤는데 앞에 이렇게 시작합니다. "왜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모든 것들이 위협을 받는가, 왜 우리는 직장과 동료와의 거리, 심지어 집안에서까지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는가, 왜 광범위한 대중적 캠페인과 계몽적인 노력들에도 불구하고 가면 갈수록 환경은 나빠지는 것일까, 왜 공동체와 가정이 해체되며 인종간의 분쟁과 빈곤, 폭력 문제는 계속 증가하는 것인가, 왜 민주주의는 사라지고 있을까" 근데 이 글을 쓴 사람은 이 뿌리가 하나라고 해요. 그 뿌리는, 우리는 지금 전지구적으로 의존하고 있잖아요. 근데 분명히 지역적으로 상호의존하는 것은 아니에요. 뭔가 없으면 안 될 것 같은 거대 조직과 그 위기감들, 그래서 이 사람은 지역적으로 상호의존하는 체제로 바꾸면 해결할 수 있다고 봐요. 그러면서 이 사람한테 사람들이 물어요. 그럼, 지금 세계화니 지구화니 뿌린 돈이 얼만데 지금 뭔가 바꾸려면 그 엄청난 돈은 어떻게 하냐구, 그랬더니 이
사람이 말하기를, 지금 세계화니 그런 것들에 들이는 비용을 생각해 봐라. 돌리는 것은 그것보다 안 들 거다 라고 해요.
천규석 선생님이 도농 직거래 하면서 '한살림운동'을 하거든요. 농산물을 직접적으로 거래하면서 유통의 비용을 줄이고 그러면서 도시도 건져내는, 그러면 사람들은 또 질문을 하죠. 그러면 도시 사람들은 어떻게 하냐고, 근데 이 사람이 그 해답을 말해요. 도시 안에서도 작은 공동체가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라고 해요. 작은 공동체가 핵심이에요.
물꼬도 좋은 일을 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다 좋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안에서도 사람 살아가는 데 생기는 모든 문제가 생겨요. 그런데 그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마음들, 안정된 마음들, 다시 책을 인용하면요, "나는 라다크 사람처럼 정서적으로 건강하고 안정된 사람들을 만나본 적이 없다. 그 이유가 자신이 훨씬 큰 어떤 것의 한 부분이며 또 자신의 주위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 라는 생각을 라다크 사람들을 보며 나는 확신한다." 또 뭐라고 얘기했냐면, "건강한 사회란 각 개인에게 무조건적인 정서적 지지의 그물을 제공하면서 긴밀한 사회적 유대와 상호의존을 권장하는 사회다." 그 <오래된 미래>에서 제일 마지막에 호지가 말하고 있기를 "인간은 누구나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을 권리를 타고 났으며 아이들은 자신을 증명해 보일 필요도 없고 자기 나름대로 존재할 권리를 애써 쟁취할 필요가 없는 가족체계 안에서 살 권리가 있다"구요. 혹시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를 증명해야될 이 구조 속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작은 개인의 심성의 해결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럴 때 우리는 뭘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얘기를 하죠. 좀 더 나가면 제가 인제 불과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환경적으로 생태적으로 살고자 한다면 불편함을 감수할 각오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 그러면서 저희들의 생활을 미화합니다. 저희가 월급 40만원 받고 일하는데 이 정도 받고도 살 수 있을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냐, 그러면서 물꼬 오라고 꼬드겨요. 근데 제가 놓치고 있는 게 하나 있어요. 왜 그렇게 했을 때 얻어질 수 있는 것은 간과하느냐, 이런 구조로 들어와서 훨씬 관계를 드러내 놓고 좀더 행복할 수 있고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 이 행복감들, 그런 것들은 간과한 채, 왜 불편한 것만 얘기하느냐, 우리는 흔히 생태환경을 말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버리는 게 더 많다고…. 그래서 절대적으로 얻을 수 있는 득들은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 물꼬에서 장애인 문제는 어떻게 보시나요?

한마디로 대답하면 '수화는 필수다'라고 생각해요. 무슨 얘기냐면 물꼬가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고는 별로 생각을 안 하는데, 아이들을 향한 열정만 있으면 어찌 되겠지 하는 생각을 더 많이 하지요. 실제로 움직여 보니까 돈이 그렇게 많이 들지도 않구요. 그래서 학교도 교사 같은 거 세울 생각 별로 안해요. 집 한 채 있고 거기 큰 마당 하나 있고 가운데 큰 부엌 하나 있고 동네가 있으면 학교가 되는 거죠. 근데 돈을 벌어야되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장애인을 생각할 때에요. 실제로 장애인을 보니까 계단도 있어야겠지만 휠체어가 오를 수 있는 길도 필요하잖아요. 수화는 필수다라는 말은 그러니까 말하는 방식이지요. 듣지 못하는 사람과 말하는 방식이요. 우리가 미국 사람과도 말을 하려고 영어를 배우는데, 더 가까이 있는 사람이잖아요. 실제로 우리가 생태나 환경이나 공동체라는 데서 가장 많이 소외되는 문제가 바로 이 부분이거든요. 근데 물론 명분은 좋아요. 사람 사이에 가름이 없는, 남자나 여자나 정상인이나 장애인이나 그 가름이 없는 속에서는 누구나 한결같을 수 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 라는 말로서 전부 가려져 있는 거요 근데 장애인 문제가 그런 겁니까? 휠체어를 끌고 다닐 마당이 없는데 그게 장애인 문제가 해결된 거예요? 그런 아니라고 봐요. 그래서 물꼬에서는 올해부터 수화를 배우고 있구요. 장애아들과 학습이 가능한 부분에서 공부를 이루어 나가고, 앞으로 세운 학교에서는 장애인도 함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단편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을 말하면, 저는 물꼬 많이 도와줘야 된다고 생각해요. 물론 이것이 지니는 가치, 아이들을 귀하게 만나려고 하고, 많은 다양함 속에서 한 축으로 만나려고 한다, 이것만으로도 가치가 있어 도와줘야 하는 것도 있고 물꼬가, 또는 제가 착하게 살려고 하니까 도와줘야 된다. 그런 생각도 있고 또 하나는 잘 말해야 하는데, 지금 대안학교나 이런 학교의 이름들 속에서 학교의 움직임들이요, 혹시나 흔히 우려하는 또 하나의 엘리트 교육이 아닐까…. 그러니까 저희만 하더라도 당장 만나러 오는 사람들이 그런 게 있어요. 내 아이가 학교에서도 1등했으면 좋겠고, 이런 교육도 받았으면 좋겠는 거야. 그런 부모가 절반은 넘어요. 그게 현실이죠. 또 하나의 엘리트주의가 되지 않도록 경계하구요. 돈도 명망도 없고 오직 뜻 하나로 일하는 물꼬, 많이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럼 돈도 명망도 없으면서 뭐 가지고 일하느냐하고 물어요. 근데 이 일은 아이들을 만나는 일이기 때문에 사실아이들 만나면서 신명 나는 것으로 일하기도 하구요. 끝까지 할 수 밖에 없어요. 필연이에요. 그리고 또 하나는 물꼬를 거쳐 간 만남들 속에 있는 관계들이 이끌어가는 측면요, 말하자면 제자들이죠. 지난번에 여기서 같이 공부하고 졸업한 제자들이 모임도 갖고 그러는데 해마다 2월에 모꼬지를 가거든요. 걔들이 말하기를 살아가면서 참과 거짓을 판별하는데 물꼬가 중심에 선대요. 저기 앉아 있는 주신 샘이 제자인데 대학을 가서 대학원도 졸업해서 직장을 들어가서 첫 휴가를 계절학교 선생으로 같이 갔어요. 그리고 우리는 새끼일꾼들이며 졸업한 사람들이 또 와서 같이 힘이 되어 그렇게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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