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에 갔더니 이런 글이 있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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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서른아침'을 읽고] | 책 이야기(임시) 2007.01.23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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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감상문] 옥영경 님의 '서른 아침'을 읽고
보낸이:노진호 (disprinc) 1999-06-02 00:50 조회:1 1/13

감상문: 옥영경 님의 '서른 아침'을 읽고
-어느 여우가-

월요일에 결혼식을 올리는 친구를 보러 신촌에서 온수까지 지하
철을 타고 갔다. 옥0경님의 시집을 들고 차안에서 역구내에서 내
내 읽었다. 동생이 약속을 한 시간 가까이 어기는 바람에 핏발 선
눈으로 시집을 읽었으니 내용이 곱게 보일 리 없었다. 그렇지만
동생에 대한 화가 가신 뒤 다시 읽어도 '20대 중 후'였던 어떤 여
자가 풍기는 '냄새'는 달라지지 않았다. 언제 기회가 되어 저자에
게 시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성미 급한 나
는 책을 덮고 난 후, 감상문을 적는 게 경제적이라는 생각이 들었
다. 시인에게는 건방지게 느껴질 내 생각들이지만, 어차피 감상문
이니 큰 누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감상문을 남에게 읽히도록 하
는 것은 꼭 직업 평론가들의 몫은 아니라고 믿는다. 시인의 '냄새'
를 나는 이렇게 맡았노라는 글 정도는 남기고 싶다.

내가 시인에 대해 가지고 있는 선입견은 다음과 같다.
"시인들은 우리의 고민을 대신해 준다."

시인의 언어를 통해 나는 나의 고민과 고통을 비로소 깨닫고 공
감하고 새삼 슬퍼한다. 보고 싶지 않던 내 모습을 그 예쁜 말들의
체로 걸러내어 쓰다듬어주고, 기쁨인지 슬픔인지 확연히 구별되지
않는 눈물마저 흐르게 하는 그 마력이란.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나는 두렵다. 이차적인 눈물. 그것은 오히려 '본래의 나'를 더욱 더
오지로 밀어내고 지금의 나를 이대로 자족하게 한다. 아니 자족을
넘어서 허위의식을 교묘히 부채질한다. 그래서 시를 모르는 나는
아주 적당한 구실로 시를 두려워하고 또 미워하려 한다. 그러면서
나는 양심적인 척 한다.

때론 원시인이 되고 싶다는 옥시인은 그런데, 독자인 우리보고
자기에게 다가오라고 한다. '세상이 더 따뜻해지는 데 보탬이 될
수도 있는 글들'을 쓰고 싶다면서, 그러나 자기는 '이십대의 문학'
처럼 솜사탕을 들고 우리에게 찾아오지는 못하겠노라고 했다. "내
시는 왜 이 모양이니?"라는 능청스런 자학과, '착하게 살겠습니다'
라는 소박한 변명으로서 자신에게만 충실하겠다며 우리보고 자기
에게 다가오라고 한다. 4000원 내고 책을 사서 보는 이 알량한 독
자의 고민을 대신 못해주겠다는 것이다.

나 같은 사람들의 공격성을 읽었을까. 그는 한발 뺀다. '직업이
시인이란 사람들에 대해 별로 우호적이지도 않'고 '글을 쓰는 게
세상과 교통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아닌', 그
저 '열심히 일하다가 문득 사는 이야기 쓰고 싶은 사람'이란다. 이
글도 곶감 빼 먹듯이 읽기는 다 글렀구나. 신경을 곤두세워 읽기
로 했다. 나 같이 가슴이 없는 이는 신경이라도 곤두세울 수밖에.

1부, 사랑 이야기. 그것도 20대. 그러나 독자인 나의 감정이입의
구석은 봉쇄되었다. 왜냐하면 옥 시인은 자신의 경험과 느낌에 더
충실하려 할 뿐 아니라 그 고통스런 사랑의 와중에 (아니면 고통
스런 사랑 때문에) 자신을 대면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머리 안'
에서 나는 너를, 나는 나를 만날 수 없다. 그렇지만 나는 너를, 나
는 나를 '만-나-야 한다'. '너(나)는 문을 열고/ 나는 안겨 버렸다/
술 안에서만 우리는 솔직할 수 있는가'.
그런데 20대의 사랑을 이런 식으로 승화시킬 수 있을까? 자기 자
신을 만나는 게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세요? 무한대로 뻗어있을 것
만 같은 그 허무 속에 자기 자신이 던져질지도 모를 불안감은 정
녕 없는지. '바닥을 모르는 두려움'을 무릅쓰고 정말로 당신은 그

숭고하다는 사랑을 얻고 싶은 지. 그는 그런가 보다.
그렇지만 시인은 20대의 나이에도, 그리고 현실에도 충실하다. 결
코 현실 도피적이지 않다.(그는 결코 '영악하지 못한' 게 아니다.
그는 '생의 무게'를 느끼는 사람이다. 그 무게를 모르는 사람들이
그를 영악하지 못하다 할 수는 있겠지만.) '손톱 밑 때를 쓰다듬어
주는' 누군가, 뭔가(햇살?)를 그리워하고 '이 세상에 그래도 살고
싶'어 한다.
심지어 그는 용서에도 때(time)가 있다는 말까지 한다. 그는 엄격
하고 때로는 잔인한 원칙주의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한다.
그렇지만 따뜻한 현실주의자가 느껴야 하는 아픔은 만만치 않을텐
데. 그 자신 '자신을 이토록 들여다 본 적이 있는지/ 참혹하므로/
아, 생은 얼마나 아름다운지'.라고 말하지 않는가.
기쁨은 아픔을 낳고 그 아픔을 다시 감사를 낳는대나. 옥 시인이
느꼈을 그 아픔과 감사는 과연 어느 정도일까? 그 아픔과 감사를
그는 1부의 마지막 시 '봉숭아'에서 부르고 있는 것 같던데. 나는
남자라서 그런지 봉숭아물이 든 손에 남아있는 흔적의 기쁨을 도
통 모르겠지만.

2부, 시인은 역시 시인이다? 시인은 스쳐 지나가는 일상을 가만

히 놓아두지 않는다. 최소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오 라고 말하
고 싶어한다. 그러나 시인은 고상한 곳에 머물며 알 듯 말 듯한
소리만 하고 '퍼질고 앉아' 있지는 않다. '봄 밤'에 담장 높은 어느
집 걱정을 해주고 '상동리'에서 함께 살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리워
하고 안타까워한다. 그랬다가 그는 다시 '임진강'에서 '부석사'에서
그리고 '떨어진 포스터'에서, 시간과 세상과 떨어져 있지 않은, 시
간과 세상과 떨어져서는 살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느
낀다. 봉숭아물 같은 흔적이 되고 싶은 그. 우주의 한 점과도 같은
자신이지만 자신은 그냥 한 점이 아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그냥 한 점이 아닌 것은 어디 당신뿐인가.
'목련이 떨어지면/ 더럭더럭 겁이 났다/.....세상에 버림받는 영혼
들이 얹혀/ 목련이 목련이 뚝 뚜욱/ 그래서 목련은 필 때부터 아
리다/ 피어날 때부터 아아리다'. 그는 구체적인 세상에서 너무 고
민하고 너무 아파한다. 난 그렇게 아파하지 못하겠다. 아마 난 '죽
으려 들어보지 않은 자'이니, 아니 죽으려 들어보지 못한 자이니
그런가 보다.

그는 '죽으려 들어보지 않은' 독자보고 자기에게 다가오라 한다.
한 번쯤 여행을 떠나고 싶지만 이런 저런 핑계로 가지 못하는, 가

지 않는 나 같은 사람은 으레 여행의 '실속'을 평가하고 냉소하고
싶어한다. 그런 독자에게 시인은 '철암'에, 어느 '섬'에, '대포'에, 그
리고 '영종도' 어느 카페와 민박집...등등에 가서 느낀 상념을 늘어
놓는다. 나는 그런 데 못 간다. 그렇게 못 한다. 시간도 없거니와
경제학적으로 말해 1원 당 한계효용이 형편없이 낮은 그런 비합리
적인 짓은 못하겠다. '을지로 순환선'에서, 어느 '분천'에서, '늦여
름, 철길'에서마저도 당신이 떠올릴 수 있는, 그 생각의 힘들을 나
도 느낄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면 나는 도저히 그렇게 못 하겠다.
못해서 안하는 것인지 안해서 못하는 것인지 모르지만.
그는 친절하게도 상세히 충고한다. '때가 되어 계절이 찾아오는
건 준비했기 때문이지/ 나무틈에서 꼼지락 꼼지락 대고 있을 가을
/ 저 미련해 뵈는 나무에서도/ 일이 벌어진 뒤에 허둥대는 우리
(니)들 꼴이라니/ 때가 되면 준비한 자는 드러나 보이는 법/ 드러
남의 자신감은 준비한 자만이 갖는 법..'
그리고 나를 향해 웃어준다. '내리실 분은 미리 문앞으로 나와 주
시기 바랍니다'. (!)

3부. 구체적인 삶? 구체적인 삶이 뭔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시인은 별 말이 없다. 다른 말로 하면, 특별히 나를 기만하지는 않

는다. 그러나 그는 구체적인 삶 속에서 생활한다. 느낀다. 시를 적
는다. 그게 그의 삶이다. 그는 현실적인 삶의 '경계'를 넘어서고 싶
어한다. 그렇지만 그런 사람들이 흔히 비하하기 마련인 속세를 그
는 혐오하지 않는다. 그 경계선 근방에서 살고 있을 법한 수녀인
언니에게 그는 속세의 기쁨을 이야기한다. 속세의 기쁨? 그에게
속세의 기쁨이란 사람이 기대어 살고 있는 세상에서 느끼는 기쁨
이다. 서로 기억해주고 힘이 되어주는.
속세를 오랫동안 떠나보지도 않고 어떻게 진짜배기 속세의 기쁨
을 느낄 수 있겠는가. 아마 그건 늘 자신을 대면하고자 하는 시인
의 노력 때문일 것이다. '때를 밀'면서도 그는 안으로 늘어나는 '삶
의 나이테'를 생각한다. '늑대 같은 외로움'을 사랑하면서. 그는 '썩
자, 썩자', 살자, 살자고 말한다.
무기력한(?) '소시민'인 그가 그렇다고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치라고 생각하기 마련인 모종의 '음모'를 모르는 바 아니다. 그
는 '새 시간을 새 시계에 붓느라/ 길에서 시계 하나..' 살 정도의
시대 인식은 있다. 그러나, 시인은 아직 '그러나'란 말밖에 하지 않
는다. '그러나, 우리는 나아간다'.
그 소극성. 그러나 최소한 그 소극성의 진실성은 믿고 싶다. 그는

친구의 말을 다음과 같이 전한다. '각자의 고민으로 오만하기만 했
지/ 같은 크기들로 고민했음을 잊었던 날들/ 그래서 술을 먹어댔
던 날들이/ 거기(시드니) 가서야 다 보이더라고/ 목숨 걸지 않으
면 결코 벗어날 수 없던 중대한 싸움/ 거기서 보니 소모전이었다
고/ 이젠 정말 싸워야 할 것은 자기더라도 전했다'라고. 그러나 친
구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시인은 자신에게 말한다. '그러나, 우리
는 나아간다'라고.
그는 적을 향해 방귀 한 번 끼는 척이라도 하고 싶은 내 만용에
응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모두가 패잔병처럼 뿔뿔이 흩어져 깃
발만 나부끼는 어느 들녘에 남아 고민한다. '...너는 결코 몰입하지
못했다 그러나 한 남자에게로, 짱돌로, 몰입하던 네 모양새가 홀로
자신과 맞서게 되는 두려움 이었음 나는 안다 너는 나였다'. 패잔
병들은 각자 불안한 삶으로 돌아갔다. 시인은 강으로 갔다. 그러나
강에서 다시 돌아왔다. '세상 건너면 그 건너엔 이 어깨가 가벼워
질 줄로만 알았던' 시인은 '생의 무게'를 느끼고 돌아왔다... '그러
나, 우리는 나아간다'는 미사여구가 아니었다. 내 만용에 응하지
않는 것일 뿐.
허나 '생의 무게'가 얼마나 엄중한 지 잘 모르겠는 나는, '부끄러

운 짓 안하게 빨리 늙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극단적인 소극성 앞
에서 좀 당혹스럽다. 다만, 시인은 나같이 무모한 이와는 달리 '낙
엽 따라 다 팽개치고 가고 싶지만/ 남아야 한다,/ 그래서 나무는/
11월에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4부. '과거는 현재적이다'?... 좋은 뜻으로!.. 신경을 곤두세웠더니
(곤두세운 게 그 모양, 그 모냥이다.) 힘이 빠진다. 책이 머리에 잘
안 들어온다. 노래의 마지막은 대개 '도'음으로 끝난다지? 하여
'도'음을 기대하고 읽는다. 그것도 낮은 '도'. 그렇지만 나의 감상문
은 여기서 '레'나 '파'나 '시'로 마무리 하고자 한다. 어차피 엉망이
었던 노랜데 뭐.
다만, '청산가리 먹고 청산 간' 아버지 때문에 사는 게 몇 배로
힘들었겠구나. 어머니는 오죽하셨겠나. 그런 느낌이 든다. 아버지
가 일찍 돌아가셔서 젊었을 때 힘들면 늘 산소에 가서 우셨다는
우리 엄니를 생각하니 어설픈 위로조차 못하겠다. 시인은 나와 다
르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느꼈을 부모 자식간의 절절한 정은 삼
풍 백화점의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구체적인 현
실에서 그는 조금도 소극적이지 않은 사람일 테니까....


서른 이후의 삶 역시도 그에게 숙제일 것이다. 지금의 그에게 안
주하려 하지 않을 것이므로. 내 경우 어쩌다 한 번 뇌까렸던 몇
년 전의 일기장을 들춰보면 그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다. 그러나
시인은 20대에 썼던 지난날의 시를 내 놓았다. 격동의 20대를 치
열하고 진지하고 진실하게 보냈기 때문에 그는 부끄러울 이유가
없다. 그의 글에서 그런 '냄새'가 폴폴 난다.
나는 논리를 떠나 가슴으로 하는 말을 피한다. 그것은, 더 큰 소
아병에 걸린 나머지 따지기 싫어하던 그 게으름장이들이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을 기꺼이 희생시킬 줄 아는 두꺼운 얼굴의 사기꾼
들에 대한 기억 때문에 그렇기도 하다. 그러나 사실은, 가슴으로
하는 말의 뜨거움을 알지만, 그리고 그것을 그리워하지만, 가슴으
로 말할 줄 아는 능력과 용기가 '손톱 밑 때'만치도 없어져 간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 그렇다. 그래서 더더욱 가슴으로 말하는 것
이 두렵기만 하다. 아주 어릴 적 시인이 되고 싶었던 나는 이제
시인이 될 수 없다는 것만큼은 안다. 너무도 잘 안다. 나는 여우
너는 신포도. 옥 시인도 신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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