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밥알로서 - 홍정희

조회 수 868 추천 수 0 2006.04.26 14:34:00

* 일련의 민들레 일에 대해서 신입밥알님이 쓰신 글입니다. 글쓴 이의 동의를 얻어 게시판에 올립니다. - 자유학교 물꼬

신입밥알로서 - 홍정희

아이들이 곤히 잠든 평화로운 밤입니다.
물론 햇발동의 햇살-아이들-이 재잘거리는 아침 또한 평화롭지만요.
이곳 대해리에 둥지를 튼 지도 3주째입니다. 언젠가 TV에서 봤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산골에서 황토로 천연염색을 하는 분에게 찾아간 기자가 "여기 사는 것이 좋은 점이 무엇인가요?"하고 물으니 "단순한 일상이지요. 단순함 속에서만이 작은 것이 바라보이고 그 것에서 행복을 느낍니다"하고 대답하였던 것이요.
저는 공동체식구 수습과정에 있습니다. 또한 한 아이의 부모로서 밥알에도 크게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자유학교 물꼬 아이들의 기숙사인 햇발동에 큰엄마 역할을 가지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있지요
일은 참 단순합니다
새벽 6시쯤 일어나서 아이들의 아침을 지으며 7시쯤 음악을 틀어 아이들을 깨우고 아침 일상들을 챙깁니다. 겨우(?) 3주 정도 생활에 제가 불러 깨우지 않아도 알아서들 일어나고 이불개고 옷 챙겨입고 세수하고 가방을 메고 2층을 내려오는 아이들, 어른한테하는 아침인사도 잊지 않으려 애씁니다. 너무 대견하지요. 햇발동의 아침 흐름이 자연스러울 수 있음에는 지난 2년동안 물꼬에서 잘 자라온 선배들의 도움과 신입생들이 기본적으로 착하고 순한 심성으로 잘 따라준 때문이지요. 초보 큰엄마에게는 큰 복이다 싶습니다.
저는 세수한 얼굴에 로션도 발라주고 머리도 빗겨주며 아침 기분을 살핍니다.
아이들이 8시에 햇발동을 출발하여 학교로 갑니다. 요란한 인사 - 끌어 안거나 얼굴을 부비는-를 아침 선물로 받고는 그 힘으로 매일해도 표도 나지 않는다는 주부의 일을 시작합니다. 방 청소는 기본으로 매일 두바구니가 넘는 아홉아이들의 빨래를 널고, 개고, 이불을 털어 해보이기를 하고, 부엌정리를 바쁜 걸음으로 하고 나면 어느새 시장기가 도는 열두 시가 넘고 학교로 점심을 먹으러 갑니다. 오후 시간에는 다른 빨래거리나 집안밖의 정리 청소, 다음날 아침준비 - 밤에는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 등을 날마다 나누어 놓고하는 정말 끝이 없는 일을 잠시 쉬는 틈에야 학교부엌이나 농사부일을 기웃거려봅니다.
저녁밥을 학교에서 먹고는 아이들과 함께 햇발동에 오릅니다. 보통 7시 30분쯤 시작하여 40∼50분쯤 한데모임을 가집니다. 차를 한잔씩 마시며 - 특히 물꼬표 모과차를 즐기지요- 하루재기를 통해 각자 돌아가며 하루일과를 말로 정리합니다. 덧붙임을 통해서는 따로 나누고 싶었던 이야기를 하며 마음을 풀기도 하고 다음날 계획도 짚어봅니다.
8시 30분에서 9시 30분 불을 끄는 시간까지 몸을 깨끗이하고 차분히 자신의 하루일을 정리합니다. 일기도 쓰고 책도보고 이야기도 나누고...
엄마는 아직 스스로 챙기기에 익숙지 않은 막내들을 씻겨주기도 하고 때로는 큰아이들의 응석을 받아 못 이기는 척 머리를 감겨주며 얘기하는 시간도 짧지만 참으로 좋고 정겹고 소중한 시간입니다. 옥샘께서는 아이들 발을 씻겨주었던 때의 감흥을 말씀하식 적이 있는데 저도 그리해 봐야겠다 싶습니다.
10시 정도면 아이들이 모두 잠들고 저도 잠을 잘 준비를 합니다. 한밤에 두어번 정도 깨어 아이들의 잠자리를 돌보는 일도 큰 엄마의 몫이겠지요, 아이들을 사랑하는. 절대 복잡한 일과가 아닙니다. 너무 단순한 일의 반복이어서 도리어 묻혀진 시간이 되기 일쑤지요. 아이들의 하루 일과로 보면 잠자는 시간을 빼고 오전 1시간, 저녁 2시간 정도를 돌보는 일이 저에게는 온통 하루가 다인 셈입니다. 나머지의 시간은 학교에서 다른 샘들께서 맡아 지냅니다.
그럼에도 몸이 힘들고 참으로 고단한 것은 그 단순함이 매일같이 반복되어야 한다는 것이겠지요. 물꼬가 상설학교로 문을 열어 아이들이 함께 산 그날부터 하루 하루가 그리하여 지금이 있을 겁니다. 원래 밤잠이 없는 저였는데 하루지낸일을 적는 일지를 붙들고 두어줄 쓰다 깜빡 졸고 있는 저를 보며 "정말 되다" 실감합니다
이제 3주가 지났습니다. 공동체 식구들이나 밥알들께서 얼굴에 고단함이 묻어난다며 쉬엄쉬엄 하라시는데 귀한 아이들 삶의 한 부분을 맡아 함께 사는 큰엄마 맘이야 오히려 놓치는 것이 없나 살펴보게됩니다
더군다나 지난 2년 세월, 엄마로 교사로 농사일로 학교 대내외적인 행사와 행정일등 그중에서도 학교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가르치는 일을 최우선으로 자신의 온 삶을 쏟아부어 집중해온 옥샘과 공동체 식구들 앞에서는 절로 겸손한 마음이 듭니다. 물론 함께 했었던 밥알님들도 그것을 알기에 여러모로 기꺼이 힘을 보태셨겠지요. 이곳 사람들이 그간의 애쓴 시간이 돈이나 명예를 위해, 아님 한치라도 부모들이 알아주길 기대하고 그리하였다면 벌써 포기하고 그만두었을 시점이 분명히 있었을것입니다.
몇번을 그만두고 싶어도 무엇이 그들의 뜻을 굳건하게 하였을까요? 그 복잡하고 힘든 다양한 역할들에 치여 공동체 식구들이 행복을 느낄 겨를이 있었냐는 저의 물음에 옥샘은 그러셨지요. 아이들이 주는 힘으로 여지껏 지내오셨다고. 이제는 그들도 진정으로 잠시나마 때때로 여유로운 맘으로 행복해야하지 않을까요
가까이서 함께 살며 두루두루 아이들과 학교와 농사일을 챙기시면서도 격려를 보내는 밥알님들게 말합니다. "제가 좋아서 원해서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힘이 들어도 즐겁고 유쾌한 나날입니다" 단순한 나날을 보내는 저이기에 몸이 고달퍼도 작은 것들을 놓치지 않는 여유 속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이겠지요. 아무리 원해서 선택한 삶이라도 그 듯을 간직할 최소한의 마음의 여유, 육체의 여유가 공동체식구, 밥알님들도 그러해야한다 생각합니다.
또하나 학교란 톱니바퀴 같아서 학교와 학부모간의 호흡이 잘 맞아야 잘 굴러가겠지요. 학교는 끊임없이 아이들을 중심에 세워 놓고 노력과 고민을 하여야 할것이며 부모 또한 최소한 부모가 하여야 할 도리에 대해 행복한 고민을 해야겠지요.
무상교육을 지지하고 연대하는 많은 이들의 손길에 감사해서라도, 앞으로 어떠한 힘든 상황에서도 그 귀한 뜻을 꺽지 않을 학교의 존립을 위해서라도, 그 안에 존재하는 우리들의 행복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 힘써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들의 행복을 우리 밖의 다른사람들이랑 충분히 나눠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살다보면 우리가 바라듯이 우리 아이들도 어느새 세상과 잘 소통하여 가진 것을, 그간 받은 것을 잘 나눠쓰는 큰 청년으로, 어른으로 자라겠지요.
자유학교 물꼬가 아이들의 숨통이 되길 원하듯 힘이 들때는 서로 어깨 한 번 안으며 위로하고 격려하고 작은일이라도 기쁜일엔 큰 박수쳐주며 그렇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옥샘께서 모임에서 "지난 밥알들께서 정말 고생 많았다... 지난해 한달에 한주씩 꼬박 부엌일을 맡아준 **어머님이 정말 애썼고 맏언니 역할을 해주셨다..."하셨지요. 우리 밥알님들 안에서도 그런 좋은 맏언니 역할을 해주시는 분이 있어 밥알들의 결속을 다져 학교에, 아이들에 뒷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 또한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 것, 겸손한 자세로 자연과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리라 했던 첫걸음의 다짐을 잃지 않고 함께 사는 즐거움으로 행복을 지키고 가꾸어 나가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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