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4. 7.불날. 맑음

조회 수 444 추천 수 0 2020.06.01 05:37:12


중대본 온라인 개학, 일정 나눠 단계별로 시행 예정”(속보)’ 기사가 떴다.

 

맑게 시작했으나 다소 흐려진 하늘.

물꼬에서는 돌계단 낙엽을 긁어내렸다 하고.

대개 2020학년도 1학기는(더 구체적으로는 46~731일/ 본교와 분교와 물꼬로 나뉠)

주중에는 제도학교인 한 초등에서 주말엔 비제도학교인 물꼬에서의 기록이 될 것이다.

 

본교 사택에서 첫 밤을 보냈다.

좀 추웠다. 한동안은 효율적인 난방시스템을 찾아내는 시간일 것.

침대에 놓인 침낭에서 이른 아침 잠을 깼고,

글을 썼다.

본교에서 분교로 차로 이동하는 10여 분의 길은

지름길도 있지만 커다란 호수를 끼고 가는 길.

만개한 벚꽃을 보기 위해 오늘 아침저녁은 그 길로 돌아가다.

본교 교장샘의 선물 같은 당부였다.

날마다 여행이라.

분교는 유치원 아이 둘 포함 전교생 여덟 명의 작은 학교.

없는 학년도 있어 분교장이자 고학년 교사 1, 저학년 교사 1,

복수학급지원강사 각 1, 돌봄교사 1, 특수교사 1, 유치원 교사 1,

유치원방과후강사 1, 주무관 1, 조리원 1, 모두 열 명의 어른,

그리고 아이들을 둘러싼 마을이 있고.

환상이다!

어릴 적 그런 꿈을 꾸었다,

아이 몇 되지 않는 작은 초등학교에서 교사로 아이들과 공부하고 걷고 먹고 노는 꿈.

더 늦기 전에 그럴 기회가 되다.

2000년대 중반 물꼬에서 상설학교를 열었던 몇 해가 있긴 하였으나

그건 국민체조를 하는 학교는 아니었던 :)

지금은 아침조례가 사라진지 오래,

 

물꼬에서 벗어나 이리 오래 다른 학교에 머무는 일이 다시 쉽지 않을.

수십 년 전에 생각했던 그 초등학교 운동장은 아니지만.

 

그런데 우리 학급이 어제부터 시작한 긴급돌봄교실로 쓰이고 있었다.

1층에 하나 밖에 없는 학급이고,

몇 개의 실이 있지만 우리 학급이 제일 큰 교실이니까.

유치원은 또 유치원대로 돌봄신청아가 둘.

학생이라야 둘인데, 코로나192m의 거리를 유지해야 하니까.

하여 교실을 내준 나는 원래의 돌봄교실에 전을 펴다.

출근을 하자마자 더부살이.

어수선한데 학급마저 내주고 있으니 안착에는 시간이 더 걸릴.

언제까지 이 상황이 이어질지 모르겠지만 우선 적응하기.

본교 특수샘이 처리해준 공문들을 확인하고,

어제 회의한 것들을 짚어보고.

 

새삼 넘치는 교재 교구에 놀라다.

언제부터인가 교구를 만들지 않는다는 학교현장이었다.

사면 된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더 잘 배우게 되었는가?

그래서 교사들은 교구를 만들 시간으로 번 만큼 아이들을 위한 더한 연구자가 되었는가?

내가 보낼 한 학기의 시간은

내부자이면서 동시에 관찰자일 것이고

교사로 서는 데 좋은 공부거리의 시간이기도 할 것이다.

건강한 비판자로 코로나19를 건너고 있는 지구 위에서

교육은 어디로 흐를까, 교육은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 숙고할 날들.

 

급식이 중단돼 있으니 교사들은 도시락을 싸다니고 있다.

아직 남아있는 석면 천정을 제거하기 위한 공사가 곧 있을 분교는

관련자들의 방문으로 부산했다.

학급 아이들 집에 전화를 넣다, 인사 겸.

아이들과 가족들 건강을 확인하고,

수업대체 학습지와 온라인수업 상황도 점검하다.

그리고 방문학습에 대해 의논들을 하다.

학생이 못 오면 교사가 가야지!

특수아동들에 대해선 개별화교육지원팀도 구성해야 한다.

며칠 내로 일을 익혀 진행키로.

어제 교사회의에서 결정했던, 학교에서 보내기로 한 선물도 안내하다.

개인별 맞춤형 학습꾸러미-학습지, 학습준비물, 놀이도구, 체험용키트, 교재, 간식, ...

일종의 위로와 지원의 꾸러미는

지난번에 보냈다는 행복학교 꾸러미와 겹치지 않도록 배려한.

 

오십이 다 돼 한옥목수 일을 시작한 동갑내기 벗이 있다.

학부모였고 알고 보니 내 절친한 선배의 가까운 후배이기도 하였지.

일곱 살부터 물꼬의 계자를 시작했던 아이는 자라 유학을 가 있고

이제 아비가 물꼬를 들락거리고 있다.

지금은 강원도의 한 향교 일을 하며 햇살 좋은 벚꽃 소식을 전해왔더랬다.

가까이에 코로나19에 감염된 사람이 없으니

전혀 내 일 같지 않은데 뉴스에서는 난리고... 어리둥절함.’이라 했다.

- 코로나가 사회변화를 추동하는 건지 아니면

  사회변화를 추동하기 위해 코로나가 있는 건지 헷갈리는 중.

  그냥 코로나가 뭔가 사회변화를 강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이고 있는 듯한,,,

  그런데 뭔가 바람직한 방향일 것 같은,,, 묘한 음모론에 빠지고 있네. 개인적으로 말야 ㅎㅎ

- 학교란 데가 그렇더라고, 찾아서 하면 정말 일이 산더미겠고,

  반면 안 해도 아무시렁도 않을 듯.

- 짧은 회사생활이었지만 회사도 마찬가지일걸?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그리 차이나진 않을 거임.

- ... 그렇겠네.

- 그건 그렇고 요즘 교육계에 있는 여성은 예나 지금이나 최고의 신부감이라고 하니까

  꾹 참고 하시오, 사람일은 모릉께로.

- 아이들을 만나는 게 힘들어 때려치우는 교사도 많은데

  아이들 만나는 게 설레서 계속 이 동네서 노니 뭐 괜찮은 삶임.

 

낯선 곳에서 보낸 첫날이라 그렇겠지. 녹초다.

그리고 이 성긴(?) 사택,

주위에 인가가 없는, 낮은 산을 낀 밭 한가운데 있는 건물.

뒷머리가 설 만? 좀은.

CCTV가 있고, 방범 창살이 있지만...

열 사람이 있다 해도 작정한 도둑 하나를 막을 길이 없던 걸, 하하.

자정, 침낭으로 들어가는데 잠도 잘 따라 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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