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1. 2.쇠날. 바람

조회 수 1277 추천 수 0 2007.11.13 10:35:00

2007.11. 2.쇠날. 바람


‘보은군 노인·장애인복지관’에 다녀왔습니다.
이순희 관장님께 인사도 드리고
아이들에게 복지관이란 곳을 보여주느라 간 걸음입니다.
그곳 식구들은 체육대회가 있어 청주에들 갔다는데
잡은 날이라 공간만 봐도 괜찮다고 내뛰었습니다.
작고 여린 것들에 대한 관심,
특히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우리 아이들이 자신의 삶 안에서 끊임없이 무언가 할 일을 찾기 바라지요.
늘 그렇지만 이런 곳을 방문하는 건
‘기관견학’이 아니라 ‘사람만남’이란 생각을 합니다...
(다녀온 얘기는 따로 맨 아래다 덧붙입니다.)

오후에는 숲에 들었습니다.
‘숲이랑’입니다.
초록 지쳐 단풍 들기로야 어디라고 다를까요.
그런데 이 숲에 내가 살아서,
이 숲에 내가 들어서.
의미 있는 숲이 되었겄습니다.
볕 좋은 무덤가에서 참도 잠깐 먹었지요.
“고수레~”
산에 사는 것들과 먹을 것을 나눕니다.
‘버섯이랑 때 숲에 가서 많은 버섯을 봤다.’
‘버섯이랑 때 숲에 갔다. 조금 밖에 못 봐서 신경질이 났다.
오후에는 고기를 먹어서 기분이 풀리긴 했다.’
저녁에 저들끼리 한 한데모임에서 아이들은
꼭 같은 시간을 보내고도 그리 다르게 쓰고 있었습니다.
불날에 시간이 빠듯했던 셈놀이도
오늘 보충이 있었지요.

오신 손님이 삼겹살을 사왔습니다.
먹지 않겠다고는 않지만 고기를 덜 먹으려는 이곳인줄 알아
핑계 삼아 주신 거지요.
마침 지난번 작은 잔치(기락 샘 귀국기념)의 아쉬움이 있었던 참입니다.
농사철이라 걸음 못하신 분도 계셨고,
댁에 객들이 찾아와 함께 하지 못한 분들도 계셨더랬습니다.
고맙게도 바람이 좀 세져
들에 갔던 분들도 일찍 들어왔겠다 싶었지요.
“술 한 잔 하러 건너오셔요.”
박희만할아버지 조중조할아버지 조병우할아버지
신씨할아버지 윤상언할아버지가 같이 오셨습니다.
상 하나를 차지한 아이들이 더 잘 먹었지요.
이런 순간, 사람 사는 거 별 거 아니지 싶지요.
이렇게 이웃들과 산마을에서
조용하고 평화로이 살아가려 합니다.
아이들 재잘거림을 들으며 말입니다.


--------------------------

< ‘보은군 노인·장애인복지관’을 걸음하고 >


(생략)
주차장이 넓어 좋다. 한산하기까지 하다. 차를 끌고 다니면 그게 먼저 반갑다.
현관을 들어서자 왼편 안내석에서 담당자가 환하게 맞는다.
(생략)
식당으로 가는 복도에도 그리고 식당에도 벽에는 보은에서 볼 수 있는 들꽃이며들이 사진으로 액자에 담겨있다. 이상도 하지, 들꽃에 대한 관심이 유행처럼 일어나 어디서나 만나는 야생화사진이 심지어 경박한 느낌까지 줄 때가 있더니, 여긴 마치 내가 만났던 강의실의 선생님(관장님) 같은 이미지로 온다. 한 사람이 한 공간을 충분히 대변할 수 있는 거구나...
“영세민이야. 내가 (아직 배식을 받고 있는 옆자리 사람의 식탁 위를 툭툭 치며) 이 사람도 만들어줬어.”
부러 한 아줌마가 앉아 있는 맞은편에 자리를 잡는다. 객원기자로 일할 때 공간 인터뷰를 하러 가면 꼭 하던 방식이다. 그 공간을 안내하는 이보다 이런 이들을 통해 그곳을 더 많이 만날 수도 있으니까. 안내라는 것이 공간에 대한 모든 정보를 지닌 충분한 설명에 있기보다 드나드는 한 이웃의 증언(?)에 더 진한 정보가 있을 수도 있다. 점심 때마다 예 와서 무료 점심을 먹는단다.
“남들은 장구도 하고 컴퓨터도 하고 에어로빅도 하던데,
나는 다리가 아파서...”
뚤래뚤래 둘러보며 사람들의 표정을 읽는다. 시대가 달라져서인가, 오래전 이런 시설에서는 떠밀린 자의 피폐함을 읽었다면 오늘 여기선 다르다. 시간 탓일까, 아님 이 곳의 분위기 덕일까?
정신지체장애로 보이는 한 친구랑 인사도 나누고, 작업실로 가는 그를 좇아가 차도 얻어마셨다. 이민영이던가?

1층.
열매 햇살 나눔 정이 송이 어울림 디딤돌 산마루...
아름다운 이 낱말들은 사회교육실이고 사회적응실, 그리고 직업적응실인 이곳 방들의 이름이다. 입안에서 가만히 읊조리게 하는 이 단어들은 음성뿐 아니라 뜻으로도 되내게 한다. 나아가 그것이 복지관 전체의 밝은 느낌이 기여하는 바가 컸다.
화장실을 간다. 무식한 울어머니는 어디를 가면 그 집의 걸레를 통해 그 댁을 짐작하셨다. 나는 화장실과 쓰레기정리로 그곳의 수준을 가늠하는 경향이 있다.
“...소중한 선물은 우리의 시간, 친절, 때로는 위안이다.
이런 걸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우리에게 그것이 필요하게 되기 전에는.”
“선물은 단순하게 물건을 보내는 일.
실제는 마음의 교류가 이루어지는 것.”
화장실 문에 붙여져 있는 글귀들이다.
토끼풀잎 사진 아래는 이렇게 씌어있었다.
“마음을 쉬고 보면 새들이 날아간 자국까지 보인다.”
이런 글들은 그 공간에서 나아가고자 하는 지향점 혹은 가치관을 읽을 수 있다.
생리대를 신문에 싸서 버릴 수 있도록 준비해둔 것이며, 깔끔하고 마음을 쓴 흔적들을 흠뻑 만난다. 아, 물론 휠체어를 탄 이에 대한 배려는 물론이다.
어른들의 바둑교실.
“이렇게 장만해주어도 굳이 로비에서 하신다고...”
그런데 굳이 로비에서 한다. 왜냐면 훈수가 더 재밌는 거니까. 둘이 두는 바닥이 아니라 무슨 씨름판처럼 하는 게 더 재밌으니까.
한 방에서는 지체장애자들이 종이접기를 해서 달력을 만들고 있었다. 모두 들어 보이며 자랑을 한다. 내가 다 뿌듯하다.

2층.
직업교육실, 사회교육실, 조기교육실, 작업치료실, 언어치료 심리치료실, 상담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방들, 정보화교실, 건강증진실...
강당에서 스물 댓의 할머니들이 노래를 배우고 있다. 할머니들이 예뿌다.
평생학습시간표에는 장구, 서예 한문 영어 일어 한글, 탁구 노래 기체조 에어로빅도 있었다. 어르신들이 참말 재미나겄다.
한 방에서 객원기자로 나이 드신 양반들이 보은신문 기자의 도움을 받아 기사를 작성하고 있다. 참 좋은 프로그램이다. 물꼬도 잘 안다며 기자가 인사를 건네왔다.

탁구대가 놓인 휴게실에서 다리쉼을 한다. 통유리너머 길이 내려다보이는 의자에 앉았다. 이런 시간이 고맙고, 이런 공간이 고맙다. 마음이 다사로와진 건 잠깐의 여유가 몰고 온 것만은 아니다. 복지관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단순히 안락한 시설에서가 아니라 그것을 관리 유지하는 사람들의 손길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이겠다.

그리고 3층 옥상.
“어!”
거기도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작동한다. 굳게 닫혀져 있을 줄 알았거든. 처음 봤다. 이게 이 복지관의 절정이다 싶었다. ‘사람에 대한 배려’가 있는 공간!
점심을 먹으려면 아직 이르다. 비로소 들머리에 놓인 여러 인쇄물들을 본다. 몸으로 공간을 돌기 전 머리에 너무 많은 정보가 들어가는 걸 경계하기 위해 공간 안내지도 말고는 외면한 것들이다.
복지관 소식지(‘마중물’)도 있다. 작년 6월 5일인가 개관했다 했으니 꼬박 한 해가 흐른 셈이고, 분기별로 나옴직하겠다.
“마중물이란 깊은 땅 속의 맑은 새 물을 위로 끌어올리기 위해 먼저 준비해야 하 는 물로써 지역주민의 맑은 사랑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우리의 실천의지입니다.”
‘섬김과 나눔으로 하나 되는 행복공동체’라는 부제가 있었다. 그렇겠다, 이곳의 실천의지가 그러하겠다.
굳이 얼마나 이 시설을 이용하는지 묻지 않았다. 한 사람을 위해서도 있어야 할 곳이니까, 이런 시설은 효율의 문제로 볼 게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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