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꼬의 날씨는 어쩜 또 이렇게 우리에게 감동인가.

비가 내렸다, 많이 내렸다. 장맛비다. 더하여 태풍이 오는 중이라고 했다.

태풍은 오다 말았고, 비는 계속 되었다.

날씨가 맑다고 꼭 좋은 날씨가 아니다.

우리는 숲 같은 비에 폭 감싸 안겨 잘 쉬었다.

그래, 너도 나도 쉼이 필요했다.

우리 모두 한 학기를 살아내느라 욕봤다.

비가 딱 필요했던 우리들이었다.

물꼬의 절묘한 또 한 날씨라.


11학년 윤호 왈,

“아니 계자(초등) 아이들이 여기 다 왔는데, 이제 누가 계자에 와요?

 애들이 있어요?”

그러게, 그래도 아이들이 태어나 자라고 세상은 계속 된다,

예전보다 아이들이 줄었다 하나 여전히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란다.

스물네 명 등록에 두 명 예비후보까지, 그리고 메일로 온 명단을 더하니

서른 명이나 된다.

이태나 쉬었던 계자인데 일이 또 그리 되네.

청계 역시.


영동역, 하다샘이 아이들과 만나 들어왔다.

그런데 넷이나 빠진 숫자이다.

버스를 놓친 아이들이 있다는 거네.

둘이 주머니를 털어 택시를 타고 온다는 소식.

또 하나는 보은에서 오는 차편이 여의치 않으니 이모부네가 직접 태워오고,

산 아랫마을에서 오는 아이도 간식을 좀 실어 엄마가 같이 오네.

청계는 아이들이 제 걸음으로 오는 것부터 시작인디 :)


마주보기.

물꼬의 안식구와 다름없는 11학년 윤호와 8학년 건호가 왔고,

“도대체 도은이가 뭐라 하면서 같이 가자 그러디?

 아무래도 도은이가 그대를 좋아하지 않네,

 이 고생스런 곳으로 함께 오자 한 걸 보면.”

초등 계자를 다녀갔던 8학년 도은이가 친구 서영이와 왔고,

역시 초등계자에 결석 없던 여원이와 정은이가 8학년이 되어 왔다.

초등 때 보고 9학년이 되어 나타난 혜준이와 현제,

“쟤네 애비가 대학 때 물꼬 품앗이샘이었잖아!”

혜준이 초등 계자를 처음 올 때부터 신기했더란 말을 나는 또 한다.

인근에 살아도 물꼬에 올 일 없다가 연어의 날 처음 와보고 신청한 상촌 도영,

이제 결코 남이라고 말 못할 8학년 무량이도 대전서 왔고,

밥바라지 온 엄마 등에 업혀 다섯 살에 물꼬를 밟았던 성빈이가

마치 이모네 오듯 왔다.

우포의 생태음악제에서 만나 인연을 쌓은 8학년 영광이가

빈들모임에도 왔더니 청계에도 왔다.


걸음마다 1, 손마다 1.

서로 인사들을 나누고 낮밥을 먹은 뒤

물꼬의 명차 떼오오랑주를 마시지.

얼음을 넣고 시럽을 넣고 오렌지주스를 담고 그 위로 달인 홍차를 붓네.

이번 일정을 위해 처음으로 내 손으로 사 본 홍차(스리랑카의 캔디)였다.

그리고 달골 햇발동 앞에서 따온 애플민트 잎 하나 띄웠더라.


비오는 달골을 오르네.

우산을 쓰거나 비를 맞거나.

푸른 생명들이 채우는 두멧길, 싱싱도 하였다.

먼저 와 햇발동 앞마당 열여덟 그루 나무에서 딴 블루베리를 내놓는다.

아침뜨樂을 걷고, 옴자를 지나 아고라를 들었다가 달못을 돌고 아가미길을 걷는다.

미궁을 들어가(더러 맨발로) 돌아나오고, 밥못을 한 바퀴,

그리고 꽃그늘길을 내려서서 룽따 아래를 걸어나오네.

돌을 주워내리라 하지만 다른 날 또 하면 되지.

오늘 이 비는 우리 더러 그 속을 많이 걸으라는 비.


창고동 난로에 불을 피운다.

공간의 습기도 몰아내고, 젖은 옷도 널고 신발도 말리고.

차를 낸다.

다식도 풍성하다.

물꼬에서 공을 많이 들이는 청소년들이라,

초등 아이들이라고 아니 그렇겠냐만.

이 평화를 오직 드리네.


짧은 일정에 바지런히 뭘 하기도 많이 하는 청계이지만

또한 사이 사이 쉼이 많은 여정이라.

가르쳐야만 배우는가,

또 저들 안에서 서로에게 배우는 게 없겠는가,

가르치고 그것이 몸으로 스밀 자신들의 시간이 또한 필요하지.

서로 우정도 깊어지면 좋을.

그렇게 시간과 시간 사이를 충분히 거니는 아이들이라.


실타래.

가져온 숙제들을 꺼낸다.

각자 읽었던 책들을 중심으로.(오늘 기록이 너무 기니 이 대목은 내일 날적이에 붙일꺼나...)

그 말미 하다샘은 ‘공부하는 법’에 대해 이야기를 주었더라.

산마을에서 9학년까지 학교를 다니지 않다가

제도 고등학교 3년을 수학하고 서울대와 의대 한 곳에 합격했던 그라.

선배가 해주는 말이라면 어른들 말보다 더 귀에 들어올 아이들이다.

꼴찌도 학원은 간다, 그건 다 하는 거다,

일단 양을 채우고 그 다음 자기 방법을 찾으라던가.

공부를 할 때 자신의 한계까지 열심히 해라,

공부를 하면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고도 했다.

아이들이 고개를 힘차게 주억거렸다.

물꼬에서는 이렇게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문화를 만들고 싶어 하지,

인류가 오래 해왔던.

폰없이 지내는 경험의 신선함에 대해서들도 말하더라.


夜단법석.

한밤 노래가 넘쳤네,

자정에 가마솥방에서 밤참을 먹으며.

물꼬가 전하고픈 목소리도 거기 담겼다.

우리 가는 길의 지향이 담긴 노래들.

아는 노래는 같이 부르고,

새 노래는 한 소절 씩 따라 부르며 익히고.


촛불잔치(장작놀이를 대신한).

꺼내 놓으면 가벼워지지.

혼자 지고 있는 짐들을 내려놓는다.

어설프게 해결해주려 나서지 않고 오직 듣는다.

그런데 내 마음도 네 마음도 희안하게 가벼워지는 거라.


그리고 대해리 아주 늦은 밤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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