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약이 왔다. 알맹이로 된, 피로회복제 건강증진제 쯤일.

계자하며 물꼬 안식구들 먹으라고.

멀리서 품앗이샘 하나의 아버님이 보내신 거다.

그렇게 살펴주는 이들이 결국 물꼬를 괸다.


세인샘을 만나 같이 내일 쓸 재료들 장을 보고 들어왔다.

갑자기 잡힌 시험일정으로 붙지 못한 하다샘 대신

힘으로도 일머리로도 오래 일해 온 그에 못잖은 일꾼이었네.

긴 세월 지나 만나 이리 힘 되니 기쁜.

지난 연어의 날에

초등계자를 끝으로 대학생이 되어 10년 만에 온 그였다.


어느새 들어온 희중샘이 벌써 땀으로 옷이 흠뻑 젖어있었다,

학교아저씨와 운동장 가장자리 풀을 매느라.

하얀샘도 들어와 달골 미궁의 베어 넘겨놓은 풀들을 정리하였다.

내일 나들이맞이 뒷배들이 다 모여 풍성한 여름 밥상 앞에 앉았더라.


<사람은 사람으로 사람이 된다>(나쓰카리 이쿠코/공명,2019)

글자 몇 안 되는 작은 책이라고, 내용도 그리 무거울 게 아니라,

어디 가며 들고 가서 잠깐 앉아 읽자며 챙겨 다니던 책이

잃기도 전 사라져서 여러 차례 찾느라 애를 먹었더랬다.

잃어버렸는가 하다가

차 안 의자 밑에서, 가방의 책들 사이에서, 얹어놓은 물건 아니래서

그렇게 다시 발견되고는 한.


(...) 1년 내내 나는 죽는 것만 생각했다. 버스에 타서 창밖으로 가지가 곧게 뻗은 소나무가 보이면 ‘저 가지 정도면 목을 매도 부러지지 않겠네’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화장지를 살 때도 ‘두 개 사면 죽은 후에 남으니까’ 한 개만 샀다. 그때는 뭘 해도 오직 ‘죽음’만이 떠올랐다.(p.71)

그런 저자였다.

‘불행, 혼자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어려움이 닥쳤을 때, 사람은 그것이 끝없이 계속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거기에는 작은 샛길이 있다.’(p.210)

사람으로 상처받았으나 결국 사람이 인생의 구원투수더라는.

환자의 가족이었고 환자였고, 그리고 정신과 의사인 저자를

햇살 아래로 나오도록 손 잡아주었던 이들에 대한 이야기.

저는 ‘매일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빈둥거리며 지내는 시간’도 필요했고,

걷기도 했다. 회복을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다.

더하여 그의 회복에 사람들이 있었다.

‘사람과의 만남은 정말 신기하다. 똑같은 사람을 만나도 만나는 시기에 따라 ‘스쳐지나가는 사람’이 되기도 하고 ‘인생의 문을 활짝 열어주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누구는 “이쿠코! 무엇을 해도 좋아요. 뭘 해도 좋으니까 기어서라도 살아야 해요.”하고 말하며 응원했고,

어떤 이는 죽음으로(‘죽음은 모든 곳을 잃게 하지만 동시에 중요한 무엇을 가져다준다.’),

또 어느 선생님은

‘심각한 내용을 말해야 할 순간이야말로 웃음이 필요한 순간이라고’ 그에게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공개하면서 그 공개가 자신을 변화시키기도 했다.


‘나와 유키씨는 병을 앓던 어머니가 먼저 세상을 떠났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때부터 마음이 편해진 것은 아니었다. 남겨진 우리는 형편없는 어린 시절을 살았다. 그 너덜너덜한 시간은 결코 부모의 죽음으로 상쇄되지 않는다. 건강하지 못한 환경에서 성장한 인간은 앞으로의 긴 인생을 성실하게 살아갈 방법을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거북씨를 알게 되면서부터 나는 사람의 행복과 안정된 마음이 사회적 지위와는 아무 상관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사람의 생각이 스스로를 행복하게도, 혹은 불행하게도 만드는 것이다.’


저자는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면서 시기가 무르익듯 ‘필사적’이 되었고,

‘앞이 보이지 않아도 일단 한 발자국을 내디뎠다.

그러자 하나의 만남이 다른 만남을 불러오고

결국 한 발자국 움직였을 뿐인데 그것만으로 보이는 세계가 달라졌다’.

그리하여 ‘불행으로 아이진 외길’에 멈춰 선 이에게 말한다,

“그러나 부디, 참고 견뎌주기 바란다. 그런 때는 잠깐 멈춰 서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현기증이 날 만큼 긴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시간의 약’으로 바뀔 수 있다. ‘시간의 약’이 효과가 나타날 때, 조금씩 힘을 주어 문을 밀면 어느 순간 그 문을 활짝 열리게 된다.’”(p.213)


결과 보고서 같아서였나, 아니면 너무 곡진해서 외려 감동이 덜했나,

생각보다 감정의 울림이 그리 깊지는 않았다.

어쩌면 내가 그런 이들을 너무 많이 만나왔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내 삶이 그런 길을 더 거칠게 건너왔기 때문인지도.

그래서 내게는 자신의 삶에 대한 응원보다

어두운 골목에서 우는 아이가 내민 손을 잡을 수 있는 어른이 되자고

또 굳게 마음먹게 하는 책이었네.


눈에 한참 남았던 문장 하나;

‘편견이란 결국 눈도 코도 없는 밋밋한 얼굴의 사람들이 그저 쉽게 내뱉는 말이 아닐까... (p.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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