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0.22.물날. 비

조회 수 1118 추천 수 0 2008.11.02 16:35:00

2008.10.22.물날. 비


토란대를 벗깁니다.
늘 나물을 다듬거나 벗기는 종류의 노동은
(농사일이 흔히 그러하듯)
효율이라든가 돈으로의 환산이라든가 하는 문제로 보면
힘이 빠지기 일쑤라지요.
그거 사 먹고 말지, 하는 푸념이 돼버린단 말이겠습니다.
그런데 내 손으로 기른 안전한 먹을거리라거나
농사가 갖는 가치라거나 하는 면으로 보자면
그것만큼 귀한 노동이 또 없다 싶지요.
베어서 며칠 걸쳐두었더니 벗기기에 맞춤합니다.
조물딱 조물딱 하며 아이도 노인네도 붙잡고 앉았습니다.
살짝 데쳐 말려두면 겨울 한철 좋은 먹을거리 돼 줄 테지요.

이른 아침 달골 콩밭에서 식구들이 만나기로 하였습니다.
거기 몇 그루 키 낮은 감나무 곁에
아주 아주 커다란 감나무 한 그루 있지요.
작년에 거기서 딴 것만으로도 곶감 몇 접을 만들어
겨우내 계자 아이들도 후덕하게 먹고
올 여름까지도 얼려둔 것을 오가는 사람들이 잘도 먹었습니다.
감나무...
잎을 떨군 지 오래 되었습니다.
감나무를 어떤 나무보다 사랑합니다.
잎을 다 떨구고 감만 남긴, 그리고 맑은 가을하늘을 배경으로 한,
풍경을 특히 사랑하지요.
그 가을입니다.
요새 항아리에 떨어진 감들을 주워 담고 있습니다.
감식초가 될 것이지요.
감 따는 건 좀 더 미루자 하고
오늘 아침 떨어진 것들을 줍자고 모인 참이었습니다.
“통 없네.”
그때 빗방울 떨어졌지요.
가을비가 시작됩니다.
걸음을 서둘러 마을로 돌아왔지요.

우체국에서 세금 환급금을 찾습니다.
어찌 돌아가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돌려준다하니 또 받았지요.
자주 세상은 내 앎의 영역 밖입니다.
내 삶은 자주 지구 저 편에서 결정됩니다.
굳이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 삶과 전혀 관계없는 이들이
우리 삶을 결정하는 꼴을 버젓이 보지요.
무섭습니다.
그래서 들어온 산골에서도 여전히 그 영향권 아래 산다 싶습니다.
하여 끊임없이 하는 고민,
어떻게 독립적일 수 있을까,
어떻게 자주적이고 주체적일 수 있을까...

이웃 유기농농원을 다녀옵니다.
이곳저곳 다니는 곳이 많은 분들이어
세상 소식을 그 편에 듣는다지요.
우리 골짝 사람들 얘기도 정작 사는 우리는 모르고
나가서 그 편에 되려 듣고 오는 때가 많습니다.
우리 마을 젊은 한 친구는 정보화대회를 가서 상을 탔다나요.
젊은 부부가 귀농을 하여 사는 얘기는 훈훈합니다.
아내는 요새 막 시작된 제도인 노인요양보호사라던가요,
한 달 돈 백만 원이 또 살림에 큰 힘이라지요.
예전의 한 이웃은 남편은 농사를 짓고
아내는 고교에서 교편을 잡은 경험을 살려 영어과외교사를 했습니다.
어떤 이는 농사를 짓는 한 편
보일러기술을 익혀, 혹은 목수일을 익혀 그걸로 돈을 돌리기도 하지요.
농사만 지어서 삶을 영위하기는 쉽잖습니다.
지역에서 일을 찾아 하며 살아들 갑니다.
잘 사는 방법이겠습니다.
“귀농해서도 결국 그렇게 살면서 무슨 귀농한 게 대단한 거라고...”
누구는 그렇게 비난하는 이들도 있다는데,
흙을 근간으로 사는 건 중요하지 않겠는지요.
내 삶과 상관도 없는 이들의 삶에,
그것도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겠습니다.
그러다 심하면 이런 소리를 듣게 될지도 모를 일이지요.
“당신은 그리 살지도 못할 거면서 질투하는 거군요.”
어찌 되었든 오늘도 적지 않은 젊은이들이
남들 마다하는 시골로 와서 나름으로 살 길을 찾아 잘 살아가고 있답니다.
아, 나올 녘엔
올해 물꼬에선 바닥을 드러낸 포도를 한 콘티 실어왔지요.
우리는 또 우리 농산물로 답례를 드릴 테구요.
비가 퍼부었습니다.
해갈이 좀 되려는지...

더러 침도 맞고 나름으로 수련도 하지만
가라앉지 않는 어깨통증을 안고 있다가
그예 오늘은 사진을 찍으러 다녀왔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더 정확한 상황판단이 필요하겠다 싶어.
짐작했던 대로였지요.
어깨 관절에 염증, 그리고 유착, 뭐 그런 낱말들입니다.
한방에서 오십견이라 부르는 것이 이렇게 시작될 겝니다.
정성을 좀 쏟아 바짝 치료를 해두어야 고생을 덜하겠다 싶데요.
한동안은 침을 좀 맞을 생각이랍니다.
사는 일이, 늘 벌어지는 일들을 수습하며 가는 길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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