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0.14.해날. 맑음

조회 수 1199 추천 수 0 2007.10.26 07:05:00
2007.10.14.해날. 맑음


불현듯 생각이 나서 93년에 신판이 나온
솔출판사의 <토지>(박경리)의 서문을 펼쳤습니다.

사정에 의해 1989년 가을부터 나는 인지를 발부하지 않았고 『토지』의 출판은 중단 상태로
들어갔다. 문학을 포기할 생각도 해보았고 서점에 『토지』가 꽂혀 있는 것을 보면 심한 혐오감에
빠지기도 했다. 사람 사는 세상에 대한 절망감은 꽤 오랫동안 나를 침잠하게 했으며
내 문학이 얼마나 가벼운 존재인가를 깨닫게도 했다. 그리고 독자들도 책을 읽을 권리가 있다
하며 출판 중단을 비난하는 내 주변에 대해서도 개의치 않고 시간을 응시하며 겨울나무가
바람에 몸을 흔들며 고엽을 떨어뜨리듯 나 역시 새봄을 맞기 위하여 분노의 쓰레기를 떨꾸려고
호미를 들고 텃밭에 나가곤 했다.
산다는 것은 아름답다. 그리고 애잔하다. 바람에 드러눕는 풀잎이며 눈 실린 나뭇가지에
홀로 앉아 우짖는 작은 새, 억조창생 생명 있는 모든 것의 아름다음과 애잔함이 충만된
이 엄청난 공간에 대한 인식과 그것의 일사불란한 법칙 앞에서 나는 비로소 털고 일어섰다.
찰나 같은 내 시간의 소중함을 느꼈던 것이다.
...

사람 사는 세상에 대한 절망감, 그리고 침잠,
시간에 대한 응시 뒤에 그는 일어서며 말했습니다.
“산다는 것은 아름답다. 그리고 애잔하다..”.
시간에 대한 응시,
시간에 대한 응시,
시간에 대한 응시...
시카고에서 띄운 글월 가운데 이렇게 쓴 부분이 있었더랬습니다.

며칠 전엔 푸새를 했습니다.
시간을 들여야 하는 일이겠지요.
풀을 쑤려니 통밀 밖에 없기 밥을 망에 걸러 풀물을 냈습니다.
손바느질을 해서 만든 면지갑을 쪼물쪼물 풀을 먹이고
다듬이질을 못하는 대신 다른 천에 말아 한참을 꾹꾹 밟았습니다.
그러면서 마음 복잡했던 일들이 자리를 찾아가더이다,
상처가 아물듯 노여움이 희미해지듯.
나이를 더할수록 시간에 기대 사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시간은 힘이 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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