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0.17.흙날. 변덕 심한 하늘 / 산오름

조회 수 1203 추천 수 0 2009.11.04 19:39:00

2009.10.17.흙날. 변덕 심한 하늘 / 산오름


아이랑 산을 올랐습니다!

지리산 아래 남원 쪽에 이를 때까지
정신없이 잠에 빠졌더랬습니다.
뻘논에서 벼를 벴던 아이도
정신없이 자고 있었지요.
어제 추수를 끝내고
산골에 어둠 깊어질 때 떠났던 길이었더랍니다.
그리고 숙소에 들어서도
글쎄, 씻지도 않고 쓰러져 자서
새벽녘 잠이 깨서야 씻고 나왔지요.
그런데 잠시 눈을 다시 붙인다고 생각했던 사이
잠은 짙어 일행들이 산을 오르는 것도 몰랐더랍니다.
“깨워도 못 일어나더라고...”
용산리에서 바래봉(1,186m)을 향해 올라
팔랑치 부운치 세돌치 지나 세걸산 밟고
정령치 지나 만복대로 해서 성삼재에 이르는
지리산 서북릉 20여 킬로미터를 탈 산행이지요.

그런데 아침 먹고 또 잠에 들었더랍니다.
낫지 않은 감기가 몸을 돌고
낑낑거리며 밀고 가는 느낌으로 지내던 일상의 고단함이
먼 길까지 나서고 나니 잠으로 다 쏟아진 게지요.
‘아, 일어나야지...’
콘도에서 건너다보이는 산과 내려다보이는 숲은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마치 태풍이라고 지나는 듯.
마른 비가 지나고 바람 거친 날이라 하였더랬지요.
우리 때문에 떠나지 못하고 남아있던 차 하나가
성삼재에 우릴 부려주기로 합니다.
사람들의 종착점에서 우리는 거꾸로 오르려지요.
뜻하지 않게 길을 고쳐
백두대간 제2구간 제3소구간을 타게 되는 겁니다.
성삼재-만복대-정령치-고기리.
한국의 아름다운 길 하나로 알려져 있는 성삼재 고운 오름길도
비몽사몽 반쯤 누워 이동했지요.
발가벗고 허리까지 오는 뻘밭을 헤쳐 가는 것만 같은
몸이었더랍니다.
날까지 흐리고...
그런데도 굳이 산에 드는 것은
산이 그 몸을 치료해낼 것이란 걸 알기 때문이지요.

12시 30분에야 성삼재에서 출발합니다.
구례 화엄사로 오르던 수년 전의 지리산행도
성삼재에서 차를 얻어 타고 옮아갔더랬습니다.
아이들과 천왕봉을 오르던 2005년 가을로부터도
몇 해가 흘렀네요.
한 해 한 차례는 지리산을 다녀가던 젊은 날이 있었는데...
먼 나라에 가 있을 적
이 땅에서 가장 그리웠던 세 곳 가운데 하나가 지리산이었습니다.
서북릉 쪽은 사람들이 많이 오르지 않기도 하여 그렇겠으나
또 쾌청하지 않아서일 수도 있겠으나
거리도 비었고 산도 비어있데요.
사람들이 다 설악에 갔다더니 맞나 봅니다.
한계령에서 오색까지 9시간이면 될 길을
사람에 치여 14시간 반이나 걸려 갔다고들 하니...
단풍보다 사람이 더 많았겠다 하겠지요.

성삼재 도로를 뒤로 하고 작은 고리봉(1,248m)을 향합니다.
등산인구도 참 많이 변했습니다.
제 20대엔 젊은 남자들이 산에 많았지요.
다음엔 젊은 여자들이 가세를 했고
다음엔 나이든 남자가 많아졌으며
그 다음엔 아줌마들이 대세를 이루었지요.
그러고 보니 그때 젊었던 이들이
나이 들어 산에 들었나 봅니다, 하하.
20여km가 11여km로 줄고 나니 여유가 있는 데다
길도 워낙에 수월하여 아이랑 오가는 얘기도 많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국가주의인 셈이고 엄마는 무정부주의자인 거구나.
우리는 왜 사상이 다른 걸까?”
그리고 자기의 생각을 형성하게 된 배경에 대한 얘기들이 오갔지요.
“에고, 사람들이 엄마 같은 사람을 무정부주의자로 만들었네...”
여권을 들고 나라와 나라를 건너다니던 때
그런 생각 참 많이 했던 듯합니다.
아이랑 사람들이 느끼는 삶의 질, 행복도에 대해서도
얘기 늘어졌지요.
인도에서 만났던 사람들,
그리고 최근 가장 행복도가 가장 높다고 알려진 코스타리카인들,
그리고 우리가 느끼는 행복도의 기준에 대해서도.
아이랑 걷는 길이 참 좋습니다.
고리봉을 지나 완경사길을 내려서니 묘봉치.
왼쪽으로 급경사가, 오른쪽으로 완만한 경사지가
계속 이어집니다.
만복대(1,438m)까지 우거진 억새가 장관입디다.
헬기장에 잠시 퍼질러 앉아 다리쉼을 할 적
만복대 쪽에서 내려온 산악회원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편한 사람들 같네요.”
같은 산을 오른다는 것만으로
모두 금새 친구가 되지요.
오름길 끝에 만복대가 맞았습니다.
5.3km를 걸었네요.
도시락을 열었습니다.
달골 식구들이 싸준 사과도 있고
산을 같이 오르려던 일행들이 나눠주고 간 먹을거리도 있고
그리고 급히 말아온 김밥도 있었습니다.
바람은 여전히 거칠데요.
하지만 비는 완전히 물러간 듯하였습니다.

다시 정령치까지 2km.
거기까지 관광버스가 올라오지요.
벌써 해는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휴게소에서 따뜻한 차로 몸에 온기를 넣습니다.
고기리까지 3km가 조금 넘으니
아무래도 어두워지고도 한참 뒤에나 닿을 량이지요.
시계는 5시 가까이에 이르렀지요.
정령치휴게소 주차장 왼쪽 전망대에서
능선을 타고 이어진 계단을 올라
800m쯤 경사 급한 산길을 오르면 1,304.8m의 큰고리봉.
갈림길,
계속가면 세걸산과 바래봉 능선이 이어질 것인데
우리는 소나무 숲길로 내려섰지요.
벌써 어둠이 내립니다.
지대가 낮아 눈에 뛰는 지형지물도 없었지요.
1km쯤 가자 주위가 평형해지고 작은 지능선들이 나타납니다.
무덤 하나를 지나 오솔길을 따라 내려가니
오른쪽으로 목장 철조망이 처져있다.
이미 보이는 것은 한계에 이르렀습니다.
눈이 아무것도 분간하지 못하는 지점에 이르기까지
불을 켜지 않기로 하고 걷고 있었지요.
그런데 어느 순간 길이 막혀버립니다.
직감적으로 멀지 않은 곳에서 놓쳤다 싶었지요.
10m되짚어 오르니 다시 길이 이어집니다.
비로소 렌튼을 켰네요, 야간산행입니다.
500m면 도로에 내려설 것이지요.

저어기 등을 켠 보입니다.
우리를 부려주었던 차가 산길 들머리에서 기다리고 있었지요.
이 고촌에서 주촌, 가재마을로 이어지는 730번 지방도로가
대간의 주능선,
길 오른편으로 진일로 가로수가 멋진 운천초등은
결국 들여다보지 못하고 떠납니다.
너무 어두웠습니다.
그 학교는 아직 아이들이 있을까요?
7시에 거의 이르고 있었지요.
늘 하늘이 고맙습니다.
날 거칠다더니, 그리 나쁘지 않았던 날씨였지요.

늦은 밤 대해리에 들어섰습니다.
남아있던 식구들은
마을길에 나락을 말렸고
그리고 은행을 주웠다 합니다.

다음엔 1박 2일로 백두대간 제1구간을 밟을까 한다지요.
산오름이 얼마나 큰 공부인지
무슨 말이 필요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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