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4. 2.나무날. 따뜻하네요

조회 수 1024 추천 수 0 2009.04.12 23:04:00
2009. 4. 2.나무날. 따뜻하네요


일찍 뜬 달빛이 마을을 싸안은 저녁
식구들이 마당을 거닐었습니다.

2년을 넘게 드나든 복사집이 있습니다.
물꼬 교무실에도 프린터기와 복사기가 있기는 하나
양이 많을 때나 읍내를 나가서 급하게 필요할 때 가는 곳이니
심심찮게 드나드는 거지요.
“얼마예요?”
아주 아주 양이 많아서 에누리를 해줄 요량이 있느냐 살피는 것도 아닌데
댓 장의 프린터물을 들고 물었습니다.
“맨날 물어 봐...”
오늘 주인장은 다른 때와 달리 이리 답하고는
제본하던 일을 계속 하고 계시는 겁니다.
아...
그 순간 알았지요.
세상에, 제가 그 집에 가서 하는 일이란 게 그리 복잡하냐 하면
딱 두 가지 일밖에 없습니다,
복사와 프린터.
그것도 해주는 것 받아 돈 주고 나오는 일이지요.
끝자리라도 껴 있어 계산이 복잡하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복사비 30원, 프린터값 50원!
세상에 그걸 지난 2년도 넘어 세해 째 묻고 있었던 겁니다,
잊을 만치 아주 듬성듬성 가는 것도 아니면서.
순간 자신이 관심 없는 일에
얼마나 지독하게 신경줄을 놓는가를 본 거지요.
사십 년을 넘어 살아도 자신의 어떤 면을 또 생각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 긴긴 세월을 살아가는 갑다 싶어요,
새로운 맛에.

포트에 수세미 가지 오이 호박을 심어
책방의 마당 쪽 현관에 늘여두었습니다,
물 담뿍 주어.
자잘한 봄농사를 밭에서 포트에서 하고 있지요.

나무날 저녁이면 바깥 장을 봐 옵니다.
이제는 하나로의 손영현 상무님도 기억하셔서
아예 나와 기다리고 계십니다.
늘처럼 요긴한 것들을 챙겨주시지요.
오늘은 식구들을 위한 주전부리까지 실어주셨습니다.
덕분에 모여들 곡주 한 잔한 밤이랍니다.

주에 한 차례 영어를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몇 주 전 단지 저시력 장애인 친구 하나로 시작한 일이었는데
(그것도 그가 점자를 가르쳐주겠다며 영어를 좀 가르쳐달라 한 부탁으로)
수업을 한 그 친구의 반응이 좋더니 어째 소문을 듣고
하나가 왔고 또 하나가 왔고 또 다른 이가 찾아왔더랍니다.
발음기호 하나 못 읽는데
늘 하는 영어는 벌써 저만큼 진도가 나가 있고
그러니 계속 모르고 알 기회를 놓치고
그렇게 언제나 스트레스만 받고 해결할 길이 없더니
속이 다 시원하다고, 고맙다고들 수업한 소감을 전하였지요.
역시 아는 것과 가르치는 건 다른가 봅니다.
저 역시 영어가 원활치 않은데
그들에게 도움이라 하니 좋지요,
선생에게 그만한 기쁨이 어딨겠는지요.
즐거움입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
1914 2009. 5. 2.흙날. 흐리다 비 오락가락 옥영경 2009-05-12 1225
1913 2009. 5. 1.쇠날. 햇살 따갑고 옥영경 2009-05-12 1181
1912 2009. 4.30.나무날. 맑음 옥영경 2009-05-12 1017
1911 2009. 4.29.물날. 맑음 옥영경 2009-05-12 1028
1910 2009. 4.28.불날. 맑음 옥영경 2009-05-12 1010
1909 2009. 4.27.달날. 날 차다 옥영경 2009-05-12 1251
1908 2009년 4월 빈들모임 갈무리글 옥영경 2009-05-10 967
1907 4월 빈들 닫는 날 / 2009. 4.26.해날. 는개비 멎고 옥영경 2009-05-10 1310
1906 4월 빈들 이튿날 / 2009. 4.25.흙날. 비 오다가다 옥영경 2009-05-10 1201
1905 4월 빈들 여는 날 / 2009. 4.24.쇠날. 흐리다 간간이 빗방울 옥영경 2009-05-09 1200
1904 2009. 4.23.나무날. 바람 많은 맑은 날 옥영경 2009-05-07 1254
1903 2009. 4.22.물날. 가을하늘 같이 맑은 그러나 바람 거친 옥영경 2009-05-07 1329
1902 2009. 4.21.불날. 바람 불고 간간이 빗방울 흩뿌리다 옥영경 2009-05-07 1326
1901 2009. 4.20.달날. 태풍이라도 지나는 것 같은 옥영경 2009-04-29 1158
1900 2009. 4.19.해날. 바람 부는 날 옥영경 2009-04-29 1130
1899 2009. 4.18.흙날. 맑음 옥영경 2009-04-29 1079
1898 2009. 4.17.쇠날. 맑음 옥영경 2009-04-29 1063
1897 2009. 4.16.나무날. 흐림 옥영경 2009-04-25 1190
1896 2009. 4.15.물날. 간간이 비, 제법 굵어지기도 하고 옥영경 2009-04-25 1042
1895 2009. 4.14.불날. 흐림 옥영경 2009-04-25 1008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