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티 바르게 개는 법>(미나미노 다다하루/공명, 2014)


손질· 수선· 수보 ·개수 ·개량· 수정· 공사,

그 동류로 덕지덕지 기운 옷 같은 살림을 산지 이십년도 더 넘어 되었다.

그렇잖아도 일 많은 산마을에서 자유학교 물꼬는 더욱 일이 많다.

낡고 오래된 너른 살림은 끊임없이 고치고 바꾸고 뒤집고 세우기를 요구한다.

자고 일어나면 또 어떤 일이 블랙홀처럼 우리를 빨아들일 것인가,

긴장의 연속이었다.

아무리 여며도 어느샌가 틈이 생기고

물밀듯이 쏟아지는 일은 꼭 모진 겨울에만 한정된 게 아니었다.

사는 게 지겨울 만했다.


문제가 생기면 경제적 어려움이 다가 아니었다.

웃돈을 얹어도 이 골짝까지 들어오는 작업자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어느 날 나는 연장을 손에 잡았다.

겁이 많지만, 해보지 뭐. 분명 누군가는 하는 일인데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목공작업을 시작했다.

필요한 선반이며 책상, 의자는 물론

살림 구석구석 못질 망치질을 하는 걸 보던 선배들이

하나둘 공구를 기증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내 손으로 모든 일을 다 할 수는 없었지만

전체 공정 가운데 일부를 담당할 수도 있고,

적어도 더럭 겁부터 나고 낙담이 찾아드는 일은 줄었다.

무엇보다 자신감이 붙었다.

그것은 산골에서 살아내는 자신감이고 나아가 삶에 대한 자신감으로 번졌다.

얼마 전 기숙사로 쓰이는 공간 현관 바닥에 물이 샜다.

“이 큰일을 보고도 담담하게 말해서 놀랐다...”

찾아왔던 벗이 내 태도를 보고 말했다.

해결할 문제라면 걱정이 없고 해결 못할 문제라면 또한 걱정이 없다,

티베트 선인들의 말이 아니어도 대개 낙관적인 태도를 지니기도 했지만

고쳐야 하는 일 앞에 예전처럼 태산 같은 걱정부터 하지는 않았다.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기도 했지만

일정 부분은 외부사람에게 맡기고 나머지는 내가 마무리하면 될 것이었다.

미장일과 바닥, 벽지일 같은 것 말이다.

스스로 할 수 있는 목공작업은 삶에 대한 태도까지 바꿔 놓은 것이다.


이 같은 자신감을 청소년들에게 전하는 책 한 권이 여기 있다.

‘생활력이 있으면 매일 기분 좋게 생활할 수 있습니다. 사소한 일에는 쉽게 굴복하거나 꺾이지 않습니다. 자기 생활을 꾸려온 자신감이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낳기 때문입니다. 청소년 여러분은 삶의 방식에 도움이 되는 기술과 지식을 많이 체득해 인생을 마음껏 즐기시기 바랍니다.’(겉표지 글귀)

고등학교 영어 교사로 10년간 재직한 후 기술과정과 교사가 된

미나미노 다다하루는 말한다.

생활자립, 경제적 자립, 정신적 자립, 성적 자립, 4대 자립을 다루며

결국 자립을 통한 자신감은 행복으로 이어진다 맺었다.

'오늘은 완벽하게 숙제를 끝냈다든지, 저녁식사를 준비해 주었더니 가족들이 기뻐했다든지, 방 청소를 했더니 기분이 좋아졌다든지 등 소소한 ‘좋은 일’을 발견할 때마다 자신 안에서는 작은 ‘자신감’이 쌓여갑니다. 사소한 것 하나가 작은 ‘자신감의 파편’과도 같은 것들입니다. 하지만 매일 조금씩 쌓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커다란 ‘자신감’의 산을 이룹니다. 이 산은 눈에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천천히, 그렇지만 하루하루 커져가는 건 분명합니다. 어제의 산보다 오늘의 산이 확실히 높습니다.’(p.249))

자신감이 준 행복은 아집형 행복이 아니다.

‘일상 생활을 스스로 꾸려 나갈 때 힘들지 않고 자신에게 맞는 속도와 감각으로 해낼 수 있는지, 또한 누군가와 함께 살고 있다면 상대방의 방식을 수용할 수 있는지 등이 중요합니다.’(p.209)

‘자신의 행복을 가족이라는 좁고 폐쇄적인 인간관계에만 의존하면 상대방을 조정하고 싶을 수밖에 없습니다. 상대방이 자기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자신이 불행해지기 때문입니다.’(p.241)

'혼자 즐긴다고 해서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 괴로운 건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즉 ‘혼자 있는 것도 즐겁고 둘이 있어도 즐거운’ 상황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혼자 있어도 즐거운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즐길 수 있으므로 자신의 행복과 인생을 타인에게 의지한다는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태도는 다른 사람을 제대로 존중하는 마음으로 이어집니다.‘(p.243)


책은, 대학입시를 정점으로 하는 입시 시스템에 중심을 두는 현행 교육제도에서

기타과목으로 분류되기 쉬운 과목들에 대해 다른 견해를 던진다.

자신의 흥미와 관심이 가장 집중되는 과목이야말로

그 사람에게 있어 참된 의미의 주요과목이 아니겠냐고.

신체의 감성을 가꾸는 보건체육과목,

마음의 감성을 가꾸는 예술과목,

생활감성을 가꾸는 기술과정 과목.

그것들은 시험에서 기타과목이었을 뿐, 우리 삶에서 그런 건 아니었다.

결국 전인(全人)이 되는 길이 그 모든 과목의 균형에 있는 게 아니겠는지.


책은 연애를 비롯한 관계에 좌절하기 쉬운 삶에 지혜를 전하기도 한다.

“(...) ‘100명과 결혼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면 모르지만 대부분 경혼 상대는 한 사람으로 충분하다고 여길 것입니다. 자신에게 맞는 멋진 사람이 이 세상 어딘가에는 분명히 존재할 것입니다. 자신에게 맞는 사람이 이 세상 어딘가에는 분명히 존재할 것입니다. (...) 세상의 유행이나 인기에 억지로 자신을 맞출 게 아니라 자기 그대로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결국 자신을 빛나게 하는 방법 아닐까요? 그리고 그 매력을 진심으로 이해해주는 사람이 세상에 1명만 존재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p.137)

'상대의 마음과 신체 상태를 확인하는 배려가 없는 사람과는 튼튼한 관계가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p.233)


스물두 살 아들에게 읽기를 권했더니 읽고 난 그가 말했다.

굳이 청소년용으로 하지 않아도

그 대상을 주요하게 삼은 두어 장을 과감히 빼고 성인대상으로도 좋겠다지.

“우리나라 20대도 생활이 잘 안 되잖아요. 그래서 결국 자기개발서를 읽는 거고.

이 책을 본질적으로 자기를 변화시키고 싶은 이들을 대상으로 해도 잘 읽히겠어요.”

탈 코르셋 흐름을 업고

진정으로 자기를 꾸미는 법으로 마케팅을 하는 건 어떻겠냐고도 했다.

“그런데, 뭔가 두 권의 이질적인 책이 합쳐진 느낌이에요.

조금 더 기술가정/생활 두 부분을 분리하는 건 어떨지,

아니면 기술기정을 좀 수정하는 건?”

그리고 덧붙였다.

“물꼬에서 늘 하는 이야기잖아요!”

그렇다. 결국 물꼬에서 하는 이야기를 담은 책이었더라.


일종의 직업의식 같은 건데, 역시 오타 집어내기.(말하자면 꼼꼼이는 읽었다는 의미?)

딱 한 곳 뿐이었다; ‘가족이 따로따로 식사는 것’은 ‘식사하는 것’으로.(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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