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마당의 살구꽃이 절정이다.

오전 세 시간 사이집 울타리, 마저 패고 가장자리에 돌을 이어 쌓고 있다.

오후 세 시간은 아침뜨樂의 옴자를 다시 그리고 패고 있다.

유채꽃과 카모마일을 심어볼까 한다.


일러주겠다.

오늘 남자 두어 무리가 아침뜨樂 들머리로 갔다.

아래에서 밭을 매다 묻는다, 누구시냐고. 거기 사유지라고.

두 명과 세 명의 무리 가운데 두 명은 벗어나서 다른 길로 간다.

다른 길로 가는 이들이 아침뜨樂을 가로지르는 무리에게 소리친다.

“사유지라는데요!”

남자 셋은 무시하고 계속 간다.

아주 조금 돌아서 가야하기는 하지만, 곁으로 길이 나있는데도.

사유지라고 하는 데도 굳이 지나가는, 도대체 저러는 이들이 누구란 말인가.

멀어서 누군지는 알아 볼 수 없다.

좇아간다.

“동네사람이요. 여기 해코지 할라고 온 게 아니니까 하던 일이나 해요.”

일반적으로 이럴 때 미안하다고 하는 게 맞다.

그런데, 하던 일이나 하라니!


계속 일러주겠다.

시골마을에 그런 사람 하나는 꼭 있다는 그런 사람이 우리 마을에도 있다.

오랫동안 우리를 힘들게 했다.

없던 문제도 만들어 찾아오는 때가 꼭 우리 행사 있는 날.

그래서 오랫동안 일정이 시작되면 또 무슨 일로 들이닥치나 긴장이 있었다.

와 있는 사람들은 무슨 일인지 잘 모를 테고, 누구나 시끄러운 상황을 편안해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하고만 하는 갈등이라면 우리에게 무슨 원인제공이 있겠거니 하겠지만

그게 또 두어 집을 빼고 온 동네가 다 그를 반기지 않기는 매한가지라.

예컨대 그의 행보는 임기가 끝난 전 이장님의 고별사에서도 드러난다.

“제가 부탁 하나 드리겠습니다, 제발.”

누가 감나무에 올라가 있는데 밑에서 흔들면 위험하고 떨어질 수도 있지 않느냐,

누가 이장이 되더라도 밑에서 좀 흔들지 말라고.

그 흔든 양반이 누구였겠는가.

눈물을 글썽이던 전 이장님을 보며 덩달아 눈시울이 붉어졌더랬다.

산마을에서 글 읽을 줄 아는 몇 사람 중 하나라고

‘똑똑해서 잘 짖긴다’(여기는 말하다를 짖기다라고 표현한다)는 그는

이장을 할 때 마을 사람들 도장을 자꾸 맘대로 찍어 자리에서 끌려 내려온 적이 있고,

이후 지금까지 10년을 넘게 이장을 하고 싶어 하지만 마을사람들 생각은 다르다.


이곳에서 물꼬는 외지인도 아니고 ‘외지것’으로 오래 살았는데,

20년 되어도 이웃이기는 하나 여전히 어느 한 순간이면 외지것일 줄 안다.

없던 아이가 여기서 태어나 20년을 살아도 말이다.

물론 대부분의 어르신들과 살갑기는 하나.

그런데 부모가 젊은 날 밖으로 나가 거기서 아이 놓고 키워 나이 서른이 되었는데,

그 아들은 마을 사람인 게 시골 마을 정서다.


그이가 사람을(뭐, 나를) 얼마나 함부로 대하는지 단적인 예가 미등기 땅에 대한 등기이다.

우리가 그의 미등기 땅을 샀는데, 10년마다 특별법이 발효될 때 등기가 가능.

사이집을 지으며 그 땅을 가로지르는 길을 내야 해서 등기가 필요하게 돼 등기소 갔더니,

“어, 선생님, 등기가 되어 있는데요...”

그네 이름으로 이미 6년 전에 등기가 되어 있었다.

내가 팔아먹은 땅 등기하기 쉽게 해 줄라고 그랬다, 당장 쫓아갔더니 그이의 답변이 그랬다.

그렇게 우리 생각을 해준 양반이 6년 동안 우리 모르게?

그 땅이 필요할 일이 없고 우리에게 매매서류가 남아있지 않았다면

우리 손에서 날아가 버려도 할 말 못할 땅이었던 것.

숭악허다.

같은 동네 얼굴 맞대고 살면서 이런 일이 다 있다니.

우리가 원주민이라도 그랬을까?

(하기야 사실 원주민 할머니들도

비슷한 일들로 그로부터 입은 억울함을 내게 호소한 바도 있다)

그나마 그 문중 어르신 한 분이(물꼬를 늘 이러저러 살펴주신다) 나서서,

그거 사기다, 어서 등기 넘겨줘라 해서 일단락되었다.


바로 또 그 양반이었던 거다, 밭에다 뭔가 작업을 해놓은 걸 보면서도 무시하고 지나는.

언성 높일 일이 있다가도 다음 날 또 반가이 인사 건넬 수밖에 없는 시골이다.

세월이 흐르며 나이에 가는 연민도 생겨

이러거나 저러거나 넘어오던 날들이었다가

이런 일이 생기면 또 성미가 난다.


하지만, 변화가 생긴 걸 알았다, 내게.

예전에 이렇게 서로 갈등하는 일이 생기고 나면

갈고리 세운 그 양반이 또 언제 공격하나 긴장했다. 무서웠다.

그런데, 무섭지 않았다.

하하, 죽으면 된다고 생각했거나 죽이면 된다고 생각했을까?

만사가 다 헛된 일이므로 욕하거나 말거나 아무래도 된다거나,

내가 사는데 그것들이(그런 일들이) 다 무어냐,

아쉬운 소리 해야 한다면 하고, 까짓거 말하고 안 해주면 말지, 그런 생각들이었나?


나는 살아남았다, 지난 20년 이 산마을에서, 그것도 나름 품격을 잃지 않고. 장하다.

물꼬도 그렇게 남았다, 지난 세월, 나름 차곡차곡 자신의 이력을 쌓으며. 장하고 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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