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내내 목탁소리가 넘친 가마솥방이었다.

이웃 절집에 혹여 노는 목탁 없으신가 여쭈었더니

창고 깊숙이 들어있던 것이 지난 2월 나왔다.

좋은 악기였다.

수행자처럼 때때마다 치기도 하던 것을

고대로 밥상머리 무대에 두고 있었다.

새끼일꾼들이 처음에는 호기심에 한번 쳐볼까 하더니

어느새 이어달리기로 두드렸다.

성빈이가 특히 아주 열심이었다.

어릴 적 상주의 어느 절집에서 여러 날을 묵었던 하다샘이

목탁 소리에 맞춰 부엌 바닥을 닦으며 반야심경을 외웠다.

순간순간이 명상이었던 2월 어른의 학교였다.

또한 목탁을 두드리는 일은 새 날에 대한 달구질에 다름아니었다. 


간밤에 우리 차 한 대가 달골 도랑에 바퀴를 걸쳤다.

얼마나 놀랐을까.

한 사람이 밀고 다른 이가 가속 페달을 밟으며 힘을 썼다 한다.

차는 무사히 안전선으로 돌아왔다.

공들여 하는 수행기간이라 그 덕이었는가 싶었다.

기적이 어디 광대한 일에만 있겠는가.

고맙다, 이 순간들.


바닥을 쓸고 난로에 지핀 불로 공간이 데워졌을 무렵

사람들이 창고동으로 건너왔다.

전통수련으로 몸을 풀고, 티벳 대배 백배가 이어졌다.

온전히 삶에, 자신에게, 타인에게 엎드리는 그 시간의 가지런한 결을

어찌 다 전할까.

이 순간이 우리의 다른 삶에도 확장되기를.

수련이었고, 기도였고, 수행이었고, 그리고 결심이었다.

정녕 강건할 수 있기를.

대배는 치료법으로서도 탁월하다.

쓰지 못하던 왼팔이 몸을 받쳐줄 수 있게 되더라.


다시 저마다의 삶터로 돌아간다.

흠뻑 젖다 간다.

보내고 가는 인사가 길지 않다, 물꼬는 우리들의 영혼의 집이니까.

고향이라고 말하기엔 모자라는.

들어오는 이들이 가져온 먹을거리가 넉넉해 밥바라지도 어려울 게 없었다.

이번 일정에 동행하지 않은 이들이 보내준 것도 있었으니.

유설샘네가 보내온 유기농 한라봉, 이웃마을에서 어르신이 담가준 물김치,

여러 벗들이 가져온 김장김치, 이웃에서 나눠준 배추, ...

물꼬는 또 그렇게 살아간다.

느슨했던 2년여, 물꼬가 다시 기지개를 켠다.

내가 돌아온 게 아니라 사람들이 돌아왔다고 해야지 않을지.


사람들을 보내고서야 알았다.

으윽, 바깥해우소 남자 쪽이 전혀 청소에 손이 못 갔더라는; 죄송합니다!

물꼬에 익숙한 이들이어 얼마나 다행했던지.

그래서 아무도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미처 닿지 못한 손이었겠거니, 하고들 썼을.

덕분에 대대적으로 벽이며 바닥이며 변기며 덮개며 다 닦고

휴지통과 화장지통 정리도 하고.

겨울에 묵혔던 바깥수돗가도 김치통 뚜껑에서부터 청소.

그 사이 대전을 나갔다 다시 들어온 류옥하다를 비롯 남자들은

장독대와 비닐하우스 통로며 마른 낙엽들을 긁어냈다.


퍽 오랫동안 우산꽂이가 현관에 있어왔다.

언제든 비가 내리면 쓰기 좋게 우산들이 담겨있었다,

라고 하면 좋겠는데, 자주 먼지 뒤집어쓰고 있었다.

두 개 가운데 등나무로 엮인 바구니는 볕에 바래고 바래 자세가 무너졌다.

아들이 말했다.

“대해리에 일 년동안 비가 얼마나 와요?”

아차! 그렇다. 비 오는 날보다 맑은 날이 많다.

그런데도 굳이 현관이 자기 자리이겠거니 두고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얼마나 많은 일이, 물건이 그러할진가.

비닐하우스 창고로 옮겼다. 비가 내릴 때 내면 될 것이다.


사이집은 당장 다락방 창을 좀 가려야겠네.

그래야 제대로 잠자리의 기능을 할 수 있겠는.


내일은 물꼬에서 특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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