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4.25.달날. 바람 바람

조회 수 1195 추천 수 0 2011.05.07 02:25:35

 

 

“저희 한 것 보셨어요?”

“실력이 엄청 늘었어요!”

“지난번엔 오전 오후 다 해서 이랑 3개를 만들었잖아요...”

이제 반나절 만에 그것보다 더 많은 양을 한다 합니다.

호미질, 괭이질 하고 있는 오전,

파이와 포도효소로 참을 냈더랍니다.

바람 많아 빨래방으로 가서 먹었지요.

 

오늘은 종일 일을 하는 날입니다.

오후에는 장독을 닦고 효소를 걸렀지요.

“항아리는 숨을 쉬어야 하니까...”

“몇 번을 닦아요?”

“글쎄, 서너 차례는 닦아야잖을까...”

네 곳으로 나뉘어져 있는 항아리 군락을 닦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여럿이 일하다 보니 닦은 놈과 닦지 않은 놈 구별이 어렵지요.

아이들이 방법을 냈습니다.

어마어마한 항아리들을 놓고 장류 사업을 하던 어느 종가댁처럼

뚜껑 위에 자갈을 올려놓아 표시를 하데요.

그 한쪽에서 효소를 거릅니다.

그런데, 포도효소 항아리 바닥에

녹지 않은 설탕이 깔려 있었지요.

아이들 마치 들어가기라도 할 듯

항아리에 머리 들이밀었다 손가락으로 찍어 올립니다.

머리는 설탕 떡지고

팔에도 흐믓흐믓 단물이 묻어있었지요.

그 곁에선 항아리 닦던 걸레를 한 손에 들고

걸려놓은 포도알을 집어먹기 시작합니다.

“이거 발효된 거라...”

아무래도 취기 돌겠습디다.

아니나 다를까, 진하와 김유가 어질어질하다 호소를 하였더라지요.

어린 날 술찌끼에 취했다던 동무들이 생각나데요.

새참으로는 떡을 쪄서 내고 효소 또한 물에 타서 먹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괜한 일 시킨 건 아닌가 몰라...”

큭, 말이 씨 되어 그만 장독 뚜껑 하나 깨졌습니다.

“금이 가 있었어요.”

“하지만 깨지진 않았었잖아.”

어제는 준이 현관문을 깰 뻔하더니

오늘 점심 때 공으로 그예 고래방 유리창을 깨고

오후엔 이리 된 것입니다.

“네가 오늘 날이구나!”

그럴 적 준환샘은 바람이 들썩이는 되살림터 지붕을

사다리 타고 올라가 못질해주었지요.

때로, 예 살러 들어온 아저씨 하나한테 딸린 애들이 많겠거니,

그런 재미난 생각이 들고는 한답니다.

자주 든든하고 고마운 그입니다.

 

머무는 이들을 위한 몇 가지 약을 마련해봅니다.

이곳에서 늘 참고로 하는 책들과 경험,

한의사로 있는 벗과 소아과를 운영하는 선배의 의견도 더했지요.

해수 비염은 생강과 인삼과 황기로 다스리려 합니다.

인스턴트식품이 있는 밥상이 아니니 도움이 더욱 클 것입니다.

발뒤꿈치가 갈라지는 문제는 결국 영양부족이라 진단하고

해수의 편식을 관리해 들어가리라 하지요.

해수 저도 토마토는 빼고 다 먹겠다 약속합니다.

(토마토도 먹을 날 올 겝니다.)

그와 함께 당귀 뿌리를 좀 달여 볼까도 합니다.

승기는 감기 기운이 있습니다.

감잎차와 따뜻한 꿀차를 멕입니다.

준환샘은 내내 기침을 달고 있는데,

눈까지 열이 나고 따갑다 합니다.

간장열이 치솟는 것은 흔히 과음과 긴장이 원인이라 했습니다.

결명자를 우리고 달였지요.

바늘로 눈꺼풀 뒤집어 실핏줄을 터뜨려주고자 했으나

쉽지 않았네요.

다들 좀 나아지기를, 마음 모읍니다.

 

저녁밥을 9시 다 되어 먹었습니다.

사단이 있었던 게지요.

문제의 밥바라지 3모둠이 점심밥상을 차렸더랬습니다.

그런데 희진샘, 저녁에 다시 하라 했지요.

서로 협동 하지 않고, 마지막 하는 대걸레질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쩌다 일어난 일이 아니라 늘상 그래왔던 일을

그예 더는 두고 볼 수 없다 생각한 게지요.

이 모둠은 근본적으로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깨끗이 승복한다고는 하지만

저들이 생각하는 공평함, 즉 가위바위보로 일을 나누니

일이 순조롭기 어려웠지요.

그런데, 저녁, 안 하겠다 버팅긴 것이지요.

“하기 싫다는 내 감정에 솔직한 것 중요하지 않냐?”

늘처럼 그렇게 주장하는 한 아이의 저항이 특히 거셉니다.

하라는 샘과 못하겠다는 아이들 틈에서 아무래도 중재 역할이 필요하게 됐지요.

 

모두 불러 모았습니다,

밥의 문제이니 모두가 관련 있다는 명분으로.

먼저 희진샘이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가 하는 정황을 듣고,

희진샘의 뜻에 동의한다는 준환샘의 의견도 듣고,

그리고 저녁을 먹을 수 있도록 모두 머리를 맞대보라 하며 자리를 비킵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참 놀랍습니다.

문제가 된 모둠을 비난하거나 미워하지 않습니다,

물론 어떤 아이에게는 그것이 적용되고

누구에게는 그렇지가 않다는 한계는 있었지만.

3모둠 너희가 하는 게 맞다, 왜 그런가,

아니다, 못하겠다, 왜냐하면,

이야기는 끝이 없었지요.

양해를 구하며 중간에 다시 개입합니다.

먼저, 샘이 제기하는 문제를 기꺼운 순종으로 받지 못하는 부분에 대한 아쉬움,

그리고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지지 않으려하는 치사함과 치졸함에 대해,

또, 다른 애들이 기꺼이 나서서 내가 한다 할 수도 있는데 그런 이가 없는 것

(사실 그러기 어려운 사안이었지만),

그런 것들에 대한 실망스러움을 전했습니다.

바로 그때 상황을 보고 있던 준환샘,

“다들 나와. 오늘 밥 먹지 마.”

단단히 화가 나셨지요.

“얼른 가서 잘못했다 하고 다시 잘 얘기들을 나눠보겠다 해라, 어여.”

다행히 말미를 얻어왔고,

결국 긴긴 시간 뒤 3모둠이 밥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협동에 대한 의견차며, 마지못해 한 일이어

아마도 한참은 더 이 모둠의 밥을 얻어먹는 일이

편치 않을 거란 예감 들었지요.

 

아이들의 전체 흐름을 보며 조금의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한데모임이 좀 구조화되면 좋겠고,

논의와 회의의 구분이 필요하잖을까 생각도 듭니다.

회의가 너무 깁니다, 회의주의자들 같으니라고.

움직이면서 ‘말’하길 권했지요.

 

오전, 은사님의 전화가 있었습니다.

이제는 일단락 된 일인데, 지난 몇 달을 속 썩인 일이 있었고

내막을 다 모르시지만 감지한 분위기 있어 안타까워하셨던가 봅니다.

“원칙을 정하고 굳건히 해나가면...”

세상은 그렇게 이겨나가는 거다, 그런 말씀이셨지요.

그리 지나왔고,

그리 살아갈 것입니다.

그나저나 나이를 먹어도 어째 어른이 늘 필요한 삶이라니까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4976 108 계자 닫는 날, 2006.1.16.달날.흐림 옥영경 2006-01-19 1202
4975 2005.12.11.해날.맑음 옥영경 2005-12-13 1202
4974 2011. 5.11.물날. 비 오며가며 옥영경 2011-05-23 1201
4973 135 계자 이튿날, 2010. 1. 4.달날. 눈, 눈, 눈 옥영경 2010-01-07 1201
4972 2009.10.17.흙날. 변덕 심한 하늘 / 산오름 옥영경 2009-11-04 1201
4971 2009. 4. 4.흙날. 바람 몹시 불고 천지 황사 옥영경 2009-04-14 1201
4970 2007. 9. 1.흙날. 구멍 뚫린 하늘 옥영경 2007-09-23 1201
4969 2007. 3. 5. 달날. 눈비, 그리고 지독한 바람 옥영경 2007-03-15 1201
4968 4월 20일 물날 지독한 황사 옥영경 2005-04-23 1201
4967 2월 9일 물날 맑음 옥영경 2005-02-16 1201
4966 2011.11. 8.불날. 입동, 안개 자욱한 아침 옥영경 2011-11-17 1200
4965 147 계자 닫는 날, 2011. 8.19.쇠날. 맑음 옥영경 2011-09-06 1200
4964 2011. 6. 7.불날. 맑음 / 단식 2일째 옥영경 2011-06-18 1200
4963 143 계자 닷샛날, 2011. 1.13.나무날. 맑음 / 노박산 옥영경 2011-01-18 1200
4962 2010.12.17.쇠날. 눈 옥영경 2010-12-31 1200
4961 2008. 6.20.쇠날. 비 옥영경 2008-07-06 1200
4960 2006.11.23.나무날. 아주 잠깐 진눈깨비 지나고 옥영경 2006-11-24 1200
4959 2006.8.27-30.해-나무날 옥영경 2006-09-14 1200
4958 계자 104 닫는 날, 6월 26일 해날 꾸물꾸물 옥영경 2005-07-08 1200
4957 11월 27일 흙날 맑음, 밥알 반짝모임 옥영경 2004-12-03 1200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