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로 압송되던 전봉준이 앉아있다.

사진 속에서 나와 종로네거리에 앉아있다.

1894년 겨울의 그를 2019년 서울, 옛 전옥서 터에서 본다.

그의 굽은 등을 타고 흘러내린 비가 종로 바닥에 떨어진다.

그의 시선은 어디로 떨어지는가,

구걸을 위한 엎드린 자의 등에, 밥벌이를 끝낸 지친 발들에 전봉준의 눈이 가 있다.


1854년생.

키가 작아 다행이었다.

녹두장군 아니라 강낭콩장군이었으면 일제가 어찌 당해냈을까.

고부군수 조병갑의 모친상에 부조금을 못 거둬 곤장 맞았던 아버지만이 이유는 아니었다.

외세는 밀물처럼 밀려왔고

나라가 망한다 흉흉한 소문,

탐관오리 아닌 벼슬아치가 없었다.

1890년 서른여섯에 동학에 입문한 그였다.


전봉준의 이름은 남루한 옷으로 죽창을 든 동학군 모두의 이름이고

우리를 지키는 모든 아비들의 이름.

제국주의 아래 목숨을 걸었던 건 지키고 싶었던 것이 있어서였다.

아버지였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1년여 연인원 30만 명의 농민대중이 참여한

세계사에서도 유례가 없는 뛰어난 사상적 운동·투쟁이라 했다.


우금치전투 다음 금성산성 전투가 최후의 격전지였다.

담양 광주 장수 순창의 1천여 명의 동학농민들이

20여 일간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벌이다 일군에 흩어졌다.

그 선봉에 있었던 전봉준은 옛 친구의 밀고로

1894년 12월 2일 순창에서 관군에 잡힌다.


1월 24일 경성으로 압송된 전봉준에게

26일 일본군 사령관 미나미가 묻는다,

백성을 선동하고 난을 도모한 이유가 무엇이냐고.

“네가 경성에 쳐들어온 후 도대체 누구를 추대할 생각이었느냐.

병을 물러나게 한 뒤 부패한 관리를 쫓아내어 임금의 곁을 깨끗이 한 연후에 몇 사람 주석柱石의 선배를 내세워 정치를 하게 하고, 우리들은 곧장 시골로 돌아가 상직인 농업에 종사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국사를 들어 한 사람의 세력가에게 맡기는 것은 그 폐해가 크다는 것을 알기에 몇 사람의 명사들이 합의한 법에 의해 정치를 담담하게 할 생각이었다.”

서구의 입헌군주제를 일찌기 그는 어찌 알았을까.

당시 유교사회의 민본주의 이념과 부패한 정치현실에 대한 깊은 성찰 뒤의 결론이었다.

‘전봉준 장군의 통치체제구상의 핵심은, 지방은(실제 동학혁명 당시 전라도에서 광범하게 시행된 것과 같은) ‘집강소’ 체제에 의한 철저한 자치, 그리고 중앙은 ‘합의정치’에 의한 독재의 배제였다.’(녹색평론 김종철)

처절하게 투쟁해본, 그리고 자치와 합의의 정치를 실험해 본 뒤의 예지였다.


1895년 4월 날리던 벚꽃 사이로 전봉준이 그제야 훨훨 자유로운 나라로 떠났다.

한반도 최초의 근대 교수형이었다.

세상에는 깨뜨리려 했던 낡은 질서의 파편들이 다시 붙고 있었다.


그 전봉준이 다시 돌아와 종로에서 눈 시퍼렇게 뜨고 앉아있다...



물꼬 샘 몇과 하는 옥영경의 바르셀로나발 귀국환영모임이 종로와 신촌에서 있었다.

달마다 마지막 주 쇠날 저녁에 있는

시인 이생진 선생님과 가객 현승엽샘의 인사동 시낭송회도 동행했다.

이제 직장인이 된 기표샘이 모든 비용을 댔고,

‘사이집’에 풍경 하나도 기증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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