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황빛의 벽돌담은 화로 속처럼 달고 방속에는 똥통이 끓습니다... 한 달 동안이나 쪼그리고 앉은 채 날밤을 새웠습니다. 그렇건만 대단히 이상한 일이지 않겠습니까? 생지옥 속에 있으면서 하나도 괴로워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누구의 눈초리에나 뉘우침과 슬픈 빛이 보이지 않고, 도리어 그 눈들은 샛별과 같이 빛나고 있습니다.”

; 심훈, ‘옥중에서 어머니께 올리는 글월’ 가운데서


거친 바람 속에 빗방울은 비바람이 되더니 우박이 한바탕 몰아치는 서울이었다.

어제는 500년간 사용된 종로 전옥서 감옥 터에 있었고,

오늘은 옛 서대문형무소 터인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 있었다;

(경성감옥-서대문감옥-서대문형무소-서울형무소-서울교도소-서울구치소)

건물은 감탄과 동시에 죄책감이 들게 하는 공간으로 치밀하게 설계 되었더라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현저동 101번지.

일제 당시 번화가의 하나였던 이곳에 일본은 감옥을 짓고, 사형장을 만들었다.

최소한의 적법절차도 없이 조선인들의 즉결처분이 이어지자 국제여론의 비난이 높았고

이를 피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건 어디서 들었던 이야기였더라?

대한제국 말 의병탄압에 쓰이기 시작해서

1987년 서울구치소가 경기도 의왕시로 이전할 때까지 80여 년 동안

우리 근·현대사 격동기와 함께했던 곳이었다.

1940년대 중반 반민족행위자와 친일세력들이 대거 수용된 적이 있지만

일제강점기엔 독립투사들이, 독재정권에서는 정치범과 양심수가 주로 수용되었다.

3.1운동이 있었던 1919년에는 3,000명의 조선인이 한꺼번에 들어갔다 한다.

1945년 독립을 했지만 수감한 자와 수감당한 자는 바뀌지 않았다.

일제든 미군정이든 독재정권이든 여전히 지배세력의 구미로 채워진 감옥이었다.


상설전시관에는 독립운동가의 기록 가운데

현재 남아있는 5천여 장의 수형기록표를 전시하고 있었다.

그들 포함 4만 명의 민족해방운동가들이 투옥되었던 이곳이다.

여느 감옥과는 달리 18세 미만의 한국 소녀수(少女囚)를 모두 수감하고 있었기 때문에

류관순 열사 역시 이곳에서 옥사했고,

3대 총독으로 부임하는 사이토의 마차에 폭탄을 던진 강우규 열사도 여기서 사형됐다.

그는 당시 65세였다는데,

청년일 거라 생각해 용의선상에 오르지 않아 한참 뒤에 잡혔다고.


사형집행장으로 가는 벽 너머에는 높은 아파트들이 100년을 건너 줄을 서 있었다.

사형장에서 사형집행을 바라봤을 긴 의자를 보고 나와

다시 아파트 쪽을 보았다.

그때 이곳에서 죽어간 이들이 지키고자 했던 것,

그리고 지금 저곳에서 살아있는 이들(물론 우리들)이 지키고 싶어하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관람객이 많아 놀랐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의 의미를 곳곳에서들 찾고 있었다.

무엇에, 어디에 사람이 모이는가, 그런 것에도 유행이 심한 대한민국이라.

이런 유행이라면 반가울.

그 뒤엔 현 정부의 의지가 반영되어 있을 테지. 고마울.


그런데,

이곳에 현대사를 다룬 공간들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이 역사관이 여전히 일제 대 대한민국이라는 대결구도에 지나치게 집중한 건 아닐까,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를 부추기며

지금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은 슬쩍 비껴가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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