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1.22.흙날. 맑음 / 산오름

조회 수 1299 추천 수 0 2008.12.06 16:54:00

2008.11.22.흙날. 맑음 / 산오름


진악산(732.3m)에 다녀왔습니다.
방학에 주마다 한 차례씩 오르는 산오름 말고도
학기 시작과 끝에 산을 오르지요.
백두대간을 끊어서 종주하기도 하고
큰 산을 오르며 마음을 다잡거나 정리하던 것인데,
올 가을학기는 시작하면서는 건너뛰었더랍니다.

오전 느지막히 금산으로 넘어가 군청에 들러 안내를 받고
점심을 꾹꾹 눌러 뱃속을 채우고는
군청에 차를 둔 채 택시를 타고 ‘수리넘어재’까지 갔습니다.
산 들머리에 서니 이미 시계는 오후 1시를 넘어가고 있었지요.
워낙에 1000미터 넘어 되는 산들만 타고 다니다
가까이 있는 산인데다 높이도 만만하다고 여유를 부린 까닭이었겠습니다.

대전에서 왔다는 어른 세 분이 함께 길을 시작합니다.
근교 산들을 가벼이 이리 오르신다지요.
곧 왼편 어디쯤에 있다는 관음암 빈대바위와 빈대굴을 지나고
얼마쯤 가서 오른편으로 원효암을 두고 지나다
길을 조금 벗어나 우뚝 치솟은 바위산 하나에 올라도 봅니다.
금산이 다 내려다보였지요.
거기 몇 어른이 모여앉아 고기를 굽고 있었습니다.
불판을 거기까지 바리바리 싸들고 왔다는 게
아무래도 재미납니다.
“여기 찾을라고 두 시간을 헤맸어. 이게 우리 낙이야.”
재밌는 사람들 참 많습니다.

1시간여 올랐나요,
진악산 정상입니다.
운장산과 마이산이 저어기 있습니다.
가로질러 펼쳐진 대둔산도 보이고
시가지 건너 저 산은 서대산쯤 되려나요.
먼저 닿아있던 세 분을 다시 만납니다.
다리쉼을 같이 하다보면
먹을거리도 나누고 무슨 일을 하나도 알게 되지요.
충남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합니다.
숨을 몰아쉴 길은 아니었으니
금새 다시 길을 잡지요.
이제부터 올라온 길보다 더 긴 길을 걸어
저 편 너머로 내려가게 될 것입니다.
산 높이로야 그리 높을 건 아니나
산오름 맛으로야 그리 밀리지 않습니다.
가는 내내 바위투성이 산이 적당히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하지요.
한편 반나절을 걷기에 딱 좋은 산이기도 합니다.
내년에는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또 별 높지 않은 산들을 두루 타는 것도 좋겠다 싶데요.
아이랑 걷는 길은
아이의 세상으로 들어가는 좋은 문이기도 합니다.
얼마나 얘깃거리가 많은 그들인지요.
심지어 세상 소식도 그 아이로부터 듣습니다.
산골로 우편을 통해 배달되는 신문도
일에 좇긴 어른들보다 그가 더 챙겨 읽기 마련이지요.
찾아오는 사람들을 통해 듣는 세상 소식도
그가 더 많이 듣습니다,
이미 세상일에 일정 정도의 거리를 두고 사는 산골 어른들의 삶이니.
노는 거라곤 흙일이거나 책이 젤 큰 소재이니
이래저래 아는 단편적 지식 역시 또 많이도 담겨있지요.
“만리장성을 쌓을 때...”
돌덩이와 돌덩이를 시멘트처럼 메운 게 찹쌀가루였다나요.
“그 귀한 걸...”
“그러니까 망했지!”

그러는 사이 ‘첫번째봉우리’라 불리는 737m 봉우리에 닿습니다.
(그런데 옛봉화터자리이자 진악산 최고봉인 이 봉우리는
어이하야 주봉자리를 5m나 가까이 낮은 봉우리에게 내놓게 된 것일까요?)
같이 오르던 세 어른은 다시 차가 있는 수리넘어재를 향해 돌아가고
우리는 공터에 좀 더 앉았다 계속 보석사를 향해 가려지요.
노닥노닥하고 있다 하늘을 봅니다.
“까마귀다!”
군무를 추고 있었습니다.
그걸 세겠다고 목이 부러져라 그들을 좇는데
자꾸 자꾸 더 높이 오르며 진을 짜고 풀고 있는 그들이었지요.
“스물여섯이네.”
“일곱이야.”
여덟 같기도 하구요.
그런데 어느 순간 갑자기 그들이 직강하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멀리서 넘어오는 엄청난 바람소리!
으악, 그들이 뚝 떨어집니다, 땅을 향해 곤두박질합니다.
그들이 내는 소리였던 겁니다.
그리고 시야에서 사라져버렸지요.
“우와, 처음 봐!”
“나도!”
“소리 굉장하지?”
“응.”
장관이었지요.

다시 걸어 ‘도구통바위’를 만났습니다.
일부러 거꾸로 세워놓은 듯한 바위 곁에는
나 죽어 바위가 되리라던 유치환의 ‘바위’를 새겨놓고 있었습니다.
“사람 얼굴 같기도 하지?”
“정말 그러네.”
그때부터 길은 내리막입니다.
보석사로 내려오는 지그재그길은 산사람들에게 제법 알려져 있기도 하지요.
길에서 두어구 무덤도 만납니다.
“더러 시끄럽기도 하겠지만 심심치는 않겄소.”
그리 말을 붙이기도 하였지요.
경사진 길은 다리에 여간 힘이 들어가게 하지 않습니다.
급기야 털썩 가방을 진 채 마른 잎들 위로 누워버렸지요.
잠시 붙이겠다는 눈이었습니다.
“엄마, 30분이나 잤어.”
날이 꾸물럭거리고 있었네요.
정확하게는 저물어가더라는 말이 옳겠습니다.
겨울산이니까요.

영천암을 지나고
글씨바위도 샘물바위도 왼편으로 두고 지나
보석사를 앞에 둡니다.
천년 은행나무 거기 섰습니다.
천태산 영국사 앞에도 그 세월만큼 산 은행나무가 있었지요.
이것만 보려 하루를 다 수고해도 될 큰 수확이겠습니다.
절 앞산에서 금을 캐내어 불상을 만들었다고 보석사랍니다.
신라 헌강왕12년 866년에 창건한 유서 깊은 절이라지요.
순둥이 차우차우가 어김없이 짖어댑니다.
중국 왕실에서만 길렀다는 귀족견이라나요.
대웅전과 삼신각에 절 올리고
의병승장비를 지나 마을로 내려섰지요.
주차장을 지나니 곧 큰 길입니다.
8.5km를 걸어온 끝이랍니다.

그런데 큰 길에 서서 화들짝 놀랐습니다,
뭐 별 큰 일은 아니고 다만 전혀 생각지 못했던 걸 만나서.
영동에서 군위에서 다시 금산으로 이사를 가며
자리잡기를 하던 ‘숲속마을작은학교 금산간디’가 거기 있었지요.
쥐가 고양이 생각한다더니, 왠지 짠합디다.
아마도 휑한 겨울 초입에 드러난 학교라서 그럴 겝니다.
왠지 이 땅에서 조금만 다른 길을 걸어도 쉽지 않은 삶이라는 짐작과
도대체 뭘 위해서
다들 대안학교라거나 하는 일들에 그토록 매달리나 싶은 궁금증과
그건 또 다른 이기들과 무에 다르겠는가 싶은 마음까지 더해져
마음 휘휘 돌아 그렇기도 하였겠습니다.
최근 공식화하지 않았더라도
새로운 학교를 여는 일에서 마음을 접으려는 물꼬여서
더욱 그랬는지도 모를 일이지요.
이 땅의 새로운 학교에 대한 반감 같은 게 드러난 감정이었는지도
또한 모를 일입니다.

차를 얻어 타고 금산시내로 넘어옵니다.
군청에서 차를 끌어냈지요.
저녁도 밖에서 챙겨먹자며 시내를 한 바퀴 도는데
거리에서 옷을 팔고 있었습니다.
아이가 바지 하나와 셔츠를 사주었지요.
혹독한 대해리의 겨울을 맞는 추위 많은 엄마가 아이도 늘 걱정인지
바지가 참 따숩겠다 했더니 사준 것입니다.
만원이면 아이가 공동체에서 받는 한 달 용돈의 전부이지요.

“금산은 인구가 얼마죠?”
저녁을 먹으며 가게 주인에게 아이가 묻습니다.
5만 7천여 명.
인구 5만의 영동과 나름대로 견주어지는 모양입니다.
“금산은 세금을 허투루 새지 않게 쓰네.”
아이의 평가입니다.
무엇을 근거로 하는 말일까요?
“건널 수 있는 시간을 알려주는 초가 달린 건널목도 그렇고,...”
아이 눈에도 짐작이 가는 세상살이랍니다.

어느 때고 다르지 않았던 대로 아이는 팔팔하고
어른은 죽겠다고 쓰러집니다.
학기로 따지자면 산오름으로 한 해를 마무리 지었습니다.
다음 주면 ‘낙엽방학’이고
12월은 갈무리달이니
학기일정으로는 끝입니다.
봄학기는 세 아이가 상주하며 시작했고
예닐곱의 아이가 머물다 갔으며,
가을학기는 장애관련 일을 하며
바깥에서 보낸 일이 더 많았습니다.
산골 아이는 세상과 만나며
자신의 산골 삶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는 시간도 되었지요.
우리는 내일을 알지 못합니다.
다만 오늘 풍성하게 살아가는 날들이 쌓여 우리들의 과거가 되고
그것이 미래를 어떤 방향으로든 옮겨갈 테지요.
산 하나를 넘으며 또 우리의 한 해를 넘겼답니다.
늘 그러하듯
하늘이 고맙고 세상이 고맙고 산이 고맙고 사람들이 고맙고 또 고맙지요,
그리고 누구보다 아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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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22.흙날. 화장함
<진악산 730m>
오늘은 지지난 달부터 계획한 ‘산행’을 실천에 옮겼다. 이번에는 엄마랑 나랑만 가서 재밌을 것 같다.
엄마가 어젯밤에 찾아본 결과 무지하게 낮은 산인 ‘진악산’(730m)에 가기로 했다. 길도 쉽고 2~3시간이면 된다고 한다.
이 산은 금산에 있는데 금산이 꽤 커서 놀랐다. 내 생각과 많이 달랐던 것이다. “내가 이렇게 낮은 산도 다 가보네.”하고 말하자 엄마도 맞다고 했다.
이번에는 여유부리고 늦게 도착해서 점심을 사먹었다. 그런데 배가 불러서 힘들었다.
산을 오르기 시작해서 능선을 타고 가는데 여기도, 저기도 산이 있는 것이었다. 금산은 산에 둘러싸여있는 커다란 평지인 것 같다. 거기다가 인삼이 특산품이라서 이 군은 돈도 많아서 도로, 신호등 등이 아주 좋다. 되게 좋고 인삼밭이 많아서 놀랐었다.
여기는 정상, 어떤 분들이 불판을 들고 여기까지 와서 엄마가 물었다. “와 불판까지 들고 오셨네요.” 그러자 그분들은 “이게 저희들한테는 낙이에요.”라고 하셨다. 참 웃겼다. 그래도 정산은 참 ‘C졌다.
“휴~ 이제야 산 반대쪽에 도착했다.” 내가 말했다. 그러는 우리를 반겨주는 것이 있었다. 바로 보석사 은행나무였다! 1080년 동안이나 유지해온 나무 둘레는 10m 높이는 30m가 넘었다. 캬~ 넘어온 보람을 느꼈다. 이런 나무만 보고 살아도 큰 공부다.
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내려와서 차를 얻어 타기 위해 도로로 내려왔는데 ‘금산간디학교’를 보게 됐다.(공동체학교이다.-註. ‘대안학교’라는 의미로 쓴 듯). “코끼리 뒷거름치다 쥐 밟았다.” 내가 말했다. 이렇게 해서 3시간(註.4시간은 걸렸지 않았나...) 대장정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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