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벽을 타야지 했던 날이었다.

비가 온다 했고, 비가 왔으니 접은 일이었다.

하지만 가벼이 산언저리를 서성이다만 와도 좋겠다 했다.

 

대둔산 오르다, 완주 쪽 대둔산 주차장에 차를 두고.

20166월께 대둔산에 올랐더랬다.

호남의 금강산이라 불릴 만치 천여 개의 암봉이 6km에 걸쳐 있다는.

대둔(大芚)이란 인적 드문 벽산 두메의 험준하고 큰 산봉우리.

전북 완주, 충남 논산과 금산에 걸쳐있고,

모악산의 두리두리하고 너른 어미 품에 견주어 엄격하다고들.

태고사로 올랐던 대둔산은 성큼성큼한 아버지 걸음처럼 몇 걸음 되지 않는 대신

바위투성이로 거칠고 가팔랐다 기억한다.

발해역사모임을 같이 하던 산꾼 선배들과 동행했던 길이었다.

낙조대 아래 태고산장에서 하룻밤 야영을 했고,

산장 너머 소박한 마애불을 보고 내려와 태고사 경내를 들었다가 내려왔더랬다.

 

케이블카나 타자 했다.

산에 오르내리면 케이블카를 탈 일이 잘 없지.

딱 오늘이 날이다 했다.

젖어있는 아침이었다. 비소식이 있었지만 케이블카 타는 것으로야 걸릴 게 없을.

케이블카를 타고 갔으니 전망대까지 계단 몇 쯤이야.

평소차림으로 치마에 운동화.

케이블카를 오르면서도 보았지만,

전망대에서 바위산을 배경으로 앞으로 툭 나와 있는 동심바위가 큰 구경거리였다.

보는 이에 따라, 보는 지점에 따라 달리 보인다는.

, 고양이 한 마리 같기도 하고, 그것도 눈 코 입 다 제대로 갖춘.

위치를 잘 잡아 마치 그를 쓰다듬거나 턱을 만지거나 입을 맞추는 모양을 잡아보기도.

여기까지 왔으니 구름다리까지만 가볼까?

구름다리 앞에서는 또 생각했지.

짧지 않았다면 아찔해서 저 깊은 아래 계곡을 둔 출렁다리를 건너가볼 엄두를 내지 않았을 것.

구름다리 건넜는데, 약수정휴게소까지만 몇 계단 더.

비 쏟아졌다. 휴게소 정자 아래로 피하다.

다시 몇 걸음, 길은 두 갈래.

정상 마천대로 바로 오르는 길과 가파른 삼선바위 위 철제 계단으로 오르는 길.

삼선바위에서 쳐다보는 철제계단은 각오를 요구했다.

하지만 정작 그 계단 위에 서면 그저 기어 올라가면 되니 괜찮았다.

땀에 전 치마가 감겨 조금 불편한 정도.

앞서 올랐던 부부가 아직 그 위의 난간에 머물고 있었다.

먼저 오르신 덕분에 뒤에서 용기내고 올랐노라 말씀드렸다.

두 분이 물을 나누어주셨다.

산에서는 이렇게 준비 없이 오른 자가 민폐인 줄 안다, 고 극구사양 했으나

넉넉하다 주시었다. , 고마워라.

, 이제는? 뭐 마천대까지 내리 가는 거다.

마천대 직전 계단에서 다시 비 세차졌다.

우듬지 아래 섰더니 피해지는 빗줄기였다.

마천대에 이르러 잠시 걷힌 구름으로 아래 마을을 볼 수 있었지만

금세 비 다시 몰아쳤다.

마천대에 선 탑 이편으로는 용하게 비가 또 피해졌다.

앞서 올랐던 부부가 커피를 타서 나눠주었고,

떡과 초컬릿도 쥐어주었다.

게다 비상용 일회용 비닐비옷이 하나 있노라며 꺼내주시까지. 거참...

덕분에 여기까지 왔고, 덕분에 또 내려가겄다.

돌아가는 길.

삼선계단을 다시 타지는 않아도 되는 내림길이었다.

약수정 휴게소 누각에 이르렀을 때 다시 굵어진 비.

또 비를 피하다.

 

약수정 휴게소 누각 앞에는 동학농민항전지를 알리는 현판이 있었다.

189411월 공주 우금치전투와 청주성전투에서 패배한 뒤

전라도 진산(충남 금산)과 고산(전북 완주) 등 인근 지역에서 활동하던 동학농민군 중 일부가 

대둔산 정상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일본군에게 항쟁했다 한다.

일본군과 관군이 연합해 1895217일 대둔산에 총공세를 감행했고,

이튿날인 218일 거점지인 대둔산 석두골(798m)에서

농민군 지도자급 25명이 끝까지 싸우다 장렬한 최후를 맞았다고.

이때 동학 접주 김석순은 돌배기 여아를 품에 안고 150m 절벽에서 뛰어내렸단다.

아이를 두고 갈 수 없어 안고 떨어졌을 그 마음을 짚어보면...

항전에 대한 기록이나 그 어름께에 항전지를 알리는 팻말은 있으나

정작 항전지를 찾은 건 1999년이 일이라 들었다.

대둔산 최후항전지에서 비박을 하며 새해를 맞을 생각을 해본다.

어른의 학교 일정으로 한 이틀 잡으면 좋겠네.

 

다시 태고사에 발을 들였다.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아미타와 약사여래가 나란히 앉은 대웅전 법당에서

부처님들을 등지고 첩첩산세를 보았다.

한용운이 대둔산 태고사를 보지 않고 천하의 승지를 논하지 말라 했다더니.

절을 떠나 일주문 같은 석문을 지나 돌아오다.

진악산을 지났다. 2008년 올랐더랬다.

산을 말하지 않고는 살아온 날을 읊기 어렵겠네 하였더라.

산에서 배웠고, 그래서 아이들과도 산에 부지런히 오르는 물꼬이다.


금산 백령성을 지나 읍내를 들어섰다.

무지개가,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완전하게 원을 그린, 완벽한 무지개가 걸렸다.

더 잘 보려고 약간 언덕진 곳을 두리번거렸는데,

종교시설 하나가 보였다.

텅빈 너른 주차장이었다.

한껏 무지개를 안았다.

겹무지개였다.

사라질 때까지 있었다.

일종의 경건의 시간이 되었다.

석두골을 내내 생각하고 있었다...


 

어제 우체국으로 보낸 택배가 잘 닿았다는 문자.

계자를 거드는 학부모 댁에 보낸 물꼬산 몇 가지 먹을거리였다.

도착한 물건들을 찍어 보내온 사진 곁에

그간 연이어 낸 이곳의 책 네 권이 쌓여있었다.

아이편에 책 얘기를 들었지만,

그 댁에서 보내온 물꼬에 대한 관심과 지지를 또 한 번 생각하였더라.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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