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 9.쇠날. 구름과 바람

조회 수 410 추천 수 0 2020.11.18 22:46:21


 

오늘도 바람찬 날이었다.

크레졸이 담긴 작은 생수통을 아침뜨락 둘레로 띄엄띄엄 매달아놓다.

멧돼지들의 습격을 어찌 피하나,

여러 해 숙제이고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아보고 내린 결론이었다.

울타리를 치고 전기를 흐르게 하는 건 비용도 비용이고 받아들일 수 없었던.

심은 잔디를 꽃들을 나무를, 닦아놓은 길을 헤집어놓기 일쑤인 그들에게

속수무책이었다.

다시 심고 다시 닦고 할 밖에.

이 방법도 안 되면 학교에 있는 진돗개 제습이를 달골로 올리려 한다.   

크레졸향이 너무 강해서 멧돼지보다 사람 먼저 잡겠는.

하지만 오늘 2차 작업을 했다.

이젠 아침뜨락 안 쪽에 있는 몇 그루 나무의 가지 사이에 끼우기.

하얀샘이 애썼다.

 

오늘부터 해건지기 둘째마당으로 하는 대배를 백배로 온전히 하기.

제 몸이 할 수 있는 만큼 하다 앉아 호흡명상을 먼저 시작할 수도 있다 했다.

그렇다고는 하나 미리 선을 긋고 앉았거나

그래도 마음이라도 세운다고 서서라도 손을 모으고 있거나.

안 할 수도 있지만 할 수 있는 쪽으로 자신을 가져가 보았으면.

해보면 거기까지 이를 때 얻을 수 있는 것이 있으므로.

 

아침뜨락을 걷다 아가미길에 이르렀을 때
자잘하게 발에 채이는 돌들이 자꾸 걸렸다.

손댄 김에 좀 더 치우자고 몇 번 몸을 눕혔다 세웠다 하며 줍자

콩쥐가 말했다.

언제 하루 시간 내서 날을 한번 잡아 하잔다.

제 일처럼 앞에 놓이는 일들에 마음을 쓰는 아이라.

따뜻한 이 아이의 품성은 아들 잘 키웠다는 소리를 절로 나오게 하는.

 

각자 쓰는 방은 알아서들 정리하겠거니 했다가

이불이 아무렇게나 말려있는 걸보며 방청소부터 하라 일렀더라.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콩쥐가 말했다,

맞아요, 이불만 개도 방청소 반은 돼 보인다고.

요새는 그의 어록집을 만들어야겠다 할 정도.

 

낮밥으로 수제비를 끓이다.

엊저녁 아이들이 반죽을 해두었더랬다.

아이들보다 먼저 내려와서 밥상을 준비한다지만

혼자 반죽을 했으면 힘도 들고 더디기도 했을.

감자를 넣고 애호박과 양파와 파도 넣고 시원하게 먹었네.

살짝 달걀도 풀어 끼얹었더라.

 

제습이와 가습이가 웃기기도 하지.

이제 아이들과 낯을 좀 익혔다.

그러니 일로 좀 와보라고 아이들을 자주 부른다.

기락샘이 일찍 들어와 습이들 산책을 시켰네.

 

저녁밥상을 준비하는 시간 오늘도 아이들은 고구마줄기를 벗기고 있다.

또 한아름 데쳐 넌다.

오늘은 기락샘이 저녁 설거지를 맡았는데,

콩쥐가 그랬지,

뭐라도 해얄 것 같아요, 하고 가마솥방을 서성였다.

사람의 마음을 지닌다는 게 그런 것일 터.

 

넷이서 달골을 걸어 오르는 저녁.

불빛을 끄고 걸었다, 별빛에 의지해 걸어보자고.

달골 계곡 다리 보수 공사 중.

오늘은 콘크리트를 부어놓았더라.

일부만 하는 것이라 지나다닐 수는 있는.

혹 차라도 지날세라 차로 막아놓고 있었다.

우리집 아들 어릴 적 둘이 겨울바람을 뚫고 오를 때 희망의 등대라 부르던,

절반쯤에 있는 가로등 아래서 쉬어갈까 하는데,

눈 속을 헤치고 가는 건 아니라 내리 올라도 될 만했네.

 

책을 읽고 각자 읽은 책을 나누고, 그것이 각자에게 다가가는 것들을 또 나누고.

얼마쯤을 남겨놓고 내내 책상에 올려두었던 책 한 권을 마저 읽고 덮으며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자기 인생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갖는 표정에 대해 말했더랬다.

물꼬에서 사는 것도 그런 표정을 짓게 하는.

내일 움직임도 확인하다.

내년에 내려는 책 하나를 출판사와 대전역에서 만나 계약하기로.

해건지기를 하고 아침을 먹고 내가 나가면 저들끼리 각자 오전을 누리고,

점심에 학교로 내려가 준비해둔 낮밥들을 챙겨먹고 오후는 교과학습을 하기로.

늦어도 선생님 오시면 먹을래요.”

저녁을 그러기로 하였네.

 

아이들과 읽던 책을 마저 읽고 덮는 늦은 밤.

한 때 우리 사회를 ○○사회라도 규정짓는 책들이 쏟아져 나올 때

니콜라스 디폰조의 <루머사회>도 나왔더랬다.

소문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퍼지고 그것을 또 사람들이 왜 믿는가를 다룬.

그래서, 결국 어떻게 소문을 통제할 것인가?

구성원들 간의 원활한 의사소통, 불안해소, 반박, 그리고 법적인 처벌로 접근하고 있었다.

구성원들과 밀접하게 관계를 맺고 있는 의사소통의 허브와 동맹관계를 맺고

스스로 정확한 내용의 소문을 유포하거나

사람들이 상황에 대한 사실을 정확하게 이해하도록 적절한 정보를 제공하라지.

근거 없는 불안으로 일어나는 거라면 이성적인 접근으로 위험요소와 현실을 직시하면 될 것.

적절한 반박이라면; 진실에 근거해야 하고, 믿을 만한 매체 혹은 사람을 통해야 하고,

초기에 대처해야 하고, 맥락과 함께 이루어져야(왜 반박하는지) 하고,

소문이 거짓인 이유에 대해 강력을 증거를 들어 명백하고 상세하게 설명해야 하고,

사람들에게 소문을 듣게 됐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명백한 방향성을 전달해야.

 

아침: 미소두부국

낮밥: 수제비

저녁: 고구마밥과 어묵국, 고기볶음, 고추장게장, 줄기김치, 오징어채볶음, 고구마튀김 그리고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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