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한 주를 끝냈고, 다시 새로운 한 주를 맞는다.

서울과 전남에서 위탁교육 온 고교 남학생 둘,

2주 일정의 10학년 콩쥐는 중간고사 일정 때문에 한 주를 당겨 오늘까지,

11학년 팥쥐는 2주차에 접어든다.

 

창고동에서 해건지기를 하고,

아침을 먹은 뒤 아침뜨락을 걷다.

오전에는 한 주를 보낸 공간을 털어내고 다시 한 주를 맞을 청소; 먼지풀풀

내가 하지 않았어도 내가 쓸 때 바로 쓸 수 있었던 것처럼

어느 누가 쓰더라도 잘 쓸 수 있게.

햇발동에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을 하고 욕실을 치우고 선반 위 먼지들을 닦고.


오늘도 걸어서 달골 다리를 지나온다. 사흘째 다리 보수 공사 중.

저녁이면 차가 다닐 수 있단다.

책방 먼지도 털어낸다.

지난 주 내내 교과학습을 하는 교실로 쓰였다.

우리 썼던, 쓰는, 쓸 공간 우리 손으로 치우기.

샘이 많이 하시는 것 같아서 저도... ”

먼지풀풀 갈무리 시간에 콩쥐가 말했다.

그 아이를 보며 사람의 마음’(사람이 지녀야 할 마음; 연민과 배려와 나눔과 염치?)을 자주 생각한다.

또한 적절한 때 자신의 마음을 잘 표현하는 슬기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낮밥에 앉은 사람들이 많았다.

아침 8시부터 학교는 작은 굴착기와 인부들이 들어와 있었다.

씻는 곳이 있는 흙집에 양변기를 둘 들이기로 했다.

여자 쪽과 남자 쪽에 예전 생태화장실을 한 칸씩 두었으나

많은 아이들이 모였을 때 냄새를 감당할 수 없어

결국 아이들 뒷간은 부엌 뒤란 비닐하우스로 빠졌더랬다.

생태화장실로 쓰였던 칸은 내부 창고가 되었고.

다시 그 공간으로 양변기를 들이기로.

아이들 뒷간 뒤로 구덩이를 파고 정화조를 묻고,

각 공간에 배관을 설치 중.

 

낮밥 설거지를 끝낸 아이들과 차를 마시다.

지난 1주 갈무리.

콩쥐는 말했다,

평소 자신의 하루는 하루가 지나간 느낌이지만 여기서는 하루를 산 느낌이라고.

밀도 있고, 밤에 피곤이 몰려와 잠이 달고 알찬 느낌.

잘 살았구나 싶은 하루 하루라고.

팥쥐는, 책임감이 생긴다고. 예컨대 일이라던지, 잘 때 양말을 빨아야 하고...

머릿속에서 뭘 해야 하나 생각해서 미리 자신의 움직임을 그리게 된단다.

중간고사 일정 변경으로 2주 일정을 한 주로 당겨 바삐 떠나게 된 팥쥐라.

 

대처식구들 반찬을 싸서 보내며

영동역을 좀 돌아서 가라 부탁을 했더랬다.

그 편에 팥쥐 실려 보내다.

책을 읽는 저녁, 하루재기를 하고 호흡명상을 하고, 손빨래를 끝낸 뒤

10:28 햇발동 거실에서 콩쥐의 질문에 긴 답을 하고 있을 적

먼저 간 팥쥐의 전화가 들어왔다.

잘 갔노라고, 여기서 즐거웠노라고, 그리고 차 마시러 다시 오고 싶다고 했다.

 

밤이면 사이집으로 넘어가 책상 앞 작업을 하기도 하였으나

이삿짐 마냥 책상 위 참고도서며들을 다 챙겨 햇발동 거실 입주라.

11학년 사내애가 무서울 거야 없다지만

물꼬에서 사람들이 지내는 동안에는

목소리가 닿는 곳에 안내자가 있는 걸 원칙으로 하는.

 

아침: 토스트와 잼, 우유,

낮밥: 잡곡밥과 김치찜, 고기볶음, 두부조림, 파래무침, 젓갈 둘, 호박볶음, 줄기김치, 그리고 물꼬 요걸트

저녁: 김치볶음밥과 스테이크, 달걀후라이, 점심에 남은 반찬들과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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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탁교육 1주차 갈무리글.

늘처럼 맞춤법이 틀리더라도 고치지 않았으며,

띄어쓰기도 가능한 한 원문대로 옮김(그게 아니라면 한글 프로그램이 잡아주었거나).

다만 의미 전달이 어려운 경우엔 고치고, 띄워줌.

괄호 안에 ‘*’표시가 있는 것은 옮긴이가 주()를 단 것.

 

10년 남학생:

일단은 물꼬에서 열흘도 채우지 못하고 떠나서(* 중간고사 때문에 2주 일정을 다 채우지 못하고 떠나게 된) 아직은 내 평가가 계속 갈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느낀 느낌은 여기가 되게 하고 싶은 것을 편하게 하기에 되게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에 있어서 부담이 적다. 모두 무겁지 않은 분위기로 편하게 활동에 임한다. 그리고, 할 수 있는 게 되게 많다. 공방에서는 만들고 싶으면 만들어도 좋고, 창고에 들어가든 무엇을 하든 터치는 안하신다. 이런 캠프는 본 적이 없다.

하지만 경험해 본 봐 단점도 없지 않다. 일단은 밥을 먹으러 왔다갔다 하는 것이 힘들다. 거기다 다리 공사 때문에 차가 들어가지 못하니 밤에 걸어서 올라가야 했는데, 여럿이서 같이 가서 망정이지 혼자였으면 나는 올라가지 못했을 것이다.

1주일이라는 시간동안 되게 부지런하게 움직였다. 허나 온라인수업 때문에 시간 대부분을 허비했고, 그래서 할 수 있는 것을 대부분 해보지도 못한 채 원래 일정도 못 채우고 서울로 올라가게 되었지만 그래도 다음에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값진 시간이었다.

 

11년 남학생:

집에선 언젠가부터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생활패턴이 깨진 대책 없고 무기력한 삶을 살아왔다. 매일 하루하루가 의미없이 지나가고 날 응원해주는 모든 사람에게 눈치 보이고 미안하면서 살아왔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에겐 내가 되게 부지런하게 사는 사람마냥 이럴 땐 이래야 한다, 저럴 땐 저렇게 하는 게 좋다 등등 그때의 나로선 말할 자격도 없는 말을 했다. 그래도 내가 그런 사실을 모르고 살진 않았다. 매일 밤마다 나를 돌아보게 됬다. 하지만 결국 몇 달 전 진짜 열심히 살았던 시절을 매일 추억하고 생각만하고 다시 그렇게 살아보자고 다짐만 할 뿐 내몸은 내 다짐을 들어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결국 나태함과 무기력함은 내 몸을 지배하게 됐고, 매일 계획하지만 실천하지 않는 악순환만 반복됬다. 내 삶을 내가 사는 것이 아닌 코로나 때문에 계속해서 무기력증과 우울감, 나태함 등을 주는 내 삶의 환경이 날 컨트롤하며 내 인생을 대신 살아주었다. 내가 하루를 보낸 것이 아닌 하루가 날 지나간 것이였다. 나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내 삶의 문제점을 난 거의 알고 있었고, 내가 그에 극복하려고 노력도 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나는 그에 따라 더더욱 절망감과 슬픔, 우울함 등의 감정이 날 찾아오게 되었고 그렇게 내부적으로, 정신적으로 쓸데없이 지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런 삶을 살던 날 물꼬에 한 달 살아보자는 엄마의 제안에 기껏 응했고 결국 104일에 도착해서, 다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됬다. (* “시간을 생각 못하고 서두가 너무 길었어요...”)

난 물꼬가 낯설지 않았다. 5년 전에도 일주일동안 지냈던 적이 있고 한달 전에도 12일 동안 지냈던 적이 있다. 5년전도 한달 전도 나름대로 그때의 생각수준에 따라 얻어간 것이 있었기에 지금의 나에겐 거절할 이유가 없었었다. 일요일엔 쉬는 시간도 많고 그래서 편하고 느슨하게 보냈지만 월요일부턴 내가 하는 거를 떠나 일정 자체가 정말 알찬 삶을 살았다. 아침수행부터 일, 설거지, 공부 등등을 하며 한국 와서 사라졌던 열정과 의지가 점점 살아나고 있는 것 같다. 그 의지와 열정을 바탕으로 앞으로 밝은 미래를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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