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탁교육 2주차.

공부 열심히 해!”

성적이 갖는 의미에 대해 오늘은 얘기를 나누었네.

기업에서도 채용 시 왜 성적표를 요구하는가?

실력과 성적이 꼭 상관관계를 다 가지는 건 아니지. 성적과 인성 역시.

 하지만 누가 인재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뭘 가지고 그 사람을 진단하겠어?

 나름 성실의 척도인 거지.”

물꼬에서 

일에 대한 자세(잘하고 못하고가 아니라. 일이야 안 해봤던 일이니 못할 수도)

대배에 대한 태도로 그의 성실을 보듯이 말이다.

그러니 공부 좀 하자. 성적 좀 올리자니까.

 

해건지기를 하고,

아침 밥상을 물린 뒤 모두 달골에서 일하다.

오늘은 아침뜨락을 걷지 않기로.

기숙사 뒤란 석축 마른 풀들도 정리하고

밭도 패고.

쇠스랑으로 땅을 패고 호미로 쪼개고 장갑 낀 손으로 흙을 으깨가면서

풀을 뽑고 잔돌을 골라내고 흙을 고르고.

안돼요!”

쇠스랑을 받아쥐고 저도 파보던 11학년 남자애가 말했다.

힘은 그대가 더 좋은데 왜 나는 되고 그대는 안 되는 걸까

 과학이야. 정성의 문제인가... 하하

가을 가뭄은 길었고, 땅은 단단했다.

쇠스랑을 들고 땅 가까이에서 깔짝깔짝 하는 것으로 그 땅이 응답할 리가 없었다.

쇠스랑을 높이 들고 그 무게로 땅을 내리쳐야 한다.

장구 궁편도 궁채를 손목의 힘으로 장구를 때리는 게 아니라

어깨에서 궁채를 내리는 그 힘으로 소리를 내듯.

그래야 힘도 덜 들고 소리도 좋은.

그런데 엇! 자꾸만 손잡이 나무에서 쇠로 된 쇠스랑 쪽이 빠지는.

이러다 다칠 수도 있겠다.

거꾸로 잡고 돌에 나무 부분을 툭툭 내리쳐서 고정해가며 살살 썼네.

뒤늦게야 옛적 괭이며 쇠스랑이며 쓰던 외할아버지를 떠올렸더라.

손잡이 나무가 부러지면 철물점에 달려갔던 게 아니었다.

뒷산으로 올라가서 툭 나무 하나 잘라와 바로 손잡이를 만들었고,

그것을 끼우고 쓰기 전 미리 물에 불리셨다.

쇠스랑과 나무가 만나는 지점에 있는 쇠에 난 구멍에 못이나 피스를 박으려고만 했는데,

그러면 나무가 갈라지기 쉽다는 것도 나중에야 깨달았고나.

그러면 못 써! 나무 다 갈라져!”

이제야 생각났더라니까.

몸으로 익힌 일이 아니니 이리 더디게 떠오른 생각.

호미야 늘 쥐어도 쇠스랑 쓸 일이 얼마나 있었더냐.

삼거리 장승 뒤로도 분꽃 한 무더기 심을 수 있게 구덩이 넓게 하나 파두다.

거긴 거름을 좀 뿌려 녹은 뒤 한 이틀 지나 뿌리 넣기로 하였네.

어제 심던 분꽃이 남아 있었던.

 

저녁 밥상.

남은 반찬들을 쓸어 먹었다, 11학년 아이가.

숟가락을 놓은 지도 진즉이었는데.

그렇게 내가 살이 쪘어!”

밥상을 준비하는 사람이 되면 남는 것들에 그렇게 된다.

주부가 되어가는 아이라, 하하.

근데, 좀 품격있게 먹으면 아니 되실까?”

아잉가 너무 빨리 먹어서 하는 소리다.

그 아니어도 바깥에서 들어오는 이들을 보면 대체로 음식을 빨리들 먹는다.

이곳에서는 음식도 그 맛으로 찬찬히 먹어보기로 하지.

 

오후 책방에서는 교과학습이 이어지고,

밖에서는 습이들이 산책을 하고.

저녁답에는 오늘도 고구마줄기를 한아름 따와서 또 벗기는.

아주 직업 삼아 나물 파는 이들이 다 되었더라니까.

 

,

아이랑 같이 있는 책 가운데 한 구절을 읽으며 속이 쓰렸다.

좋은 취지라고 해서 다 되는 게 아니야. 너는 불우 이웃 돕기 행사를 하는데,

주차 질서는 개판이고 매장은 너저분하게 되어 있으면 좋겠니? 아니지? 바로 그거야.

아주 세심하게 여러 요소를 배치해야 사람들은 행사의 원래 취지대로 좋은 인상을 받아.

좋은 일을 한다고 해서 일하는 사람이 서로 봐주면 다른 사람들이 불편하게 마련이거든.

일하는 사람이 빡빡하게 일해야 다른 사람들이 편한 거야.’

책 속의 주인공은 정신이 바짝 났다고 했다.

덩달아 새삼 정신이 바짝 난 자신이었더라.

 

물꼬의 논두렁이기도 한 선배 하나가 

멀지 않은 곳으로 출장을 와서 들리겠다 연락 들어오다.

가족들과 불화를 겪고 있고,

지난 학기에 제도학교에 지원수업을 나가고 있는 시기에도 상담을 왔던.

지금은 위탁교육기간.

마음을 쓰는 일이 쉽잖겠기 그냥 지나십사했네.

이제 가족의 문제를 당사자들과 마주해서 풀어가셨으면 하는 바램에서도.

 

아침: 삶은 고구마와 우유

낮밥: 고추장게장비빔밥

저녁: 양푼이비빔밥과 된장국, 달걀후라이, 김치부침개, 그리고 참외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
5442 2020.11. 3.불날. 맑음. 와, 바람! 옥영경 2020-12-03 386
5441 2020.11. 2.달날. 흐림 옥영경 2020-12-03 305
5440 2020.11. 1.해날. 비 / 내가 어려서 부모님께 하던 대로 옥영경 2020-11-30 372
5439 2020.10.31.흙날. 맑음 옥영경 2020-11-30 332
5438 2020.10.30.쇠날. 맑음 / 계단에 앉다 옥영경 2020-11-30 403
5437 2020.10.29.나무날. 맑음 / 용암사 운무대에서 본 일출 옥영경 2020-11-30 381
5436 2020.10.28.물날. 안개의 아침, 흐려가는 오후 / 위탁교육의 핵심이라면 옥영경 2020-11-30 331
5435 2020.10.27.불날. 맑음 / 마음을 내고 나면 옥영경 2020-11-30 334
5434 2020.10.26.달날. 맑음 / 어떤 일의 성실이 옥영경 2020-11-30 354
5433 2020.10.25.해날. 바람과 해 옥영경 2020-11-30 376
5432 2020.10.24.흙날. 맑음 / 민주지산 산오름 옥영경 2020-11-29 348
5431 2020.10.23.쇠날. 흐림, 상강 / 일단 책상에 가서 앉기 옥영경 2020-11-29 345
5430 2020.10.22.나무날. 젖어있다 갬 / 제도학교 특강 이튿날 옥영경 2020-11-25 342
5429 2020.10.21.물날. 흐리다 저녁답 비 / 제도학교 특강 첫날 옥영경 2020-11-25 405
5428 2020.10.20.불날. 맑음 옥영경 2020-11-25 407
5427 2020.10.19.달날. 맑음 / 대안교육백서에서 옥영경 2020-11-22 415
5426 2020.10.18.해날. 맑음 옥영경 2020-11-22 396
5425 2020.10.17.흙날. 맑음 / 천천히 걸어간다만 옥영경 2020-11-22 340
5424 2020.10.16.쇠날. 뿌연 하늘 / 원정 일수행 옥영경 2020-11-22 334
» 2020.10.15.나무날. 맑음 / 좋은 취지라고 해서 옥영경 2020-11-22 347
XE Login

OpenID Login